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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엘 Oct 24. 2021

09 무엇이 중헌디?

       밤이는 맞고 혈통의 진위성은 틀리다.

밤이가 개린기( 강아지 어린이를 줄임말)를 지나서 개춘기(강아지 사춘기)가 될 무렵부터 

밤이 혈통의 진위성에 대해서 우리 가족들 사이에서 종종 화두가 되었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가족이란 주로 떨어져 사는  큰 아들과 밤이를 입양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딸을 지칭하는 것이다.     

가끔 만나는 아들은 밤이의 혈통에 대해서  화두를 던지곤 했었다.

“밤이는 진짜 정통 시바일까 아니면 가짜 시바일까?

 그러면 공방은 시작되었다.     


밤이의 입양을 결정한 딸은 

“밤이가 시바가 아니면 어떤 강아지가 시바겠어? 말도 안 돼”

라고  딱 잘라 말하곤 했었다.     

하지만 딸내미가 발끈하는 게 재미가 있어서인지 아니면 진짜 밤이의 정통성이 궁금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들은 조용하다가도 한 번씩 가족 단톡방에 밤이가 진짜 정통 시바견일까 하는 의문을 올려놓았다.

 ‘카톡’ 

‘카톡’     

“시바라고 하긴 엔 밤이는 너무나 커, 재 진짜 시바가 아닐 가능성이 많아 짝퉁 시바 같아” 

이렇게 던져진 아들의 톡에 딸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우리 밤에는 어릴 때부터 의사 선생님이 키가 클 거라고 했어. 

어떻게 우리 밤이가 시바가 아닐 거라고 생각을 할 수가 있지? 딱 봐도 시바인데.”.          


그래도 아들 녀석은 계속 이모티콘을 섞어가면서 톡을 올려놓았다.

“밤이는 생김새도 뭔가 시바랑 진돗개랑 섞인 것 같지 않아? 아니다 웰시코기랑 섞였나?"

“밤이를 이제는 진시바라고 부르자 , 아니다 시돗개가 좋겠네...”

진돗개와 시바의 합성어를 그렇게 만들어서 부르기도 했고,

“아니다 웰시바라고 해야겠다. 웰시코기처럼 다리는 짧고 허리는 긴 걸 보니 

웰시코기랑 섞인 것 같지 않아?”    

“어깨는 또 왜 이렇게 두툼해?”

“재 시바가 아니고 너구리 아닐까? 얼굴이 강아지가 아니라 너구리랑 똑같아”  

이러면서 밤이의 품종의 정통성에 대해서 농담 반 진담 반을  계속 화두에 올렸다.     


사실 혈통에 대한 시비의 발단은 품종견들이 입양하는 데 있어서 혈통서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런 것들이 분양하는데 높은 비용을 요구하기 때문에 당연히 혈통이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가

종종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는 기사가 뜨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꽤나 알려진 펫 샾에서 분양을 받았기에  

당연히 밤이는 정통 시바견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고 장난하듯이 툭툭 던진 아들의 이야기에 혹시 밤이도

 진짜 시바견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었다.     


아들이 농담으로 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기에 한편으로는 웃기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나도 혈통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놈의 강아지 혈통이 뭐라고 ...’ 

‘이럴 줄 알았으면 혈통서를 받아 놓을 것을’      

우리는 밤이를 입양할 당시에는 그게 중요하지 않을 거 같아서 혈통서를 받지 않았다.

혈통서라도 받아놨으면 이런 시비가 있을 때 탁하니 내놓으면 되는데 그게 없으니 

우리 밤이가 진짜 시바라는 것을 증명해 줄 근거가 없었다.     

 나중에 다시 혈통서를 받으려고 하니 입양한 지 한 달이 넘은 아이들은 혈통서를 주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어느 날 계속 밤이의 혈통에 대해서 화두를 삼아 톡을 올리는 아들에게

딸내미가 정색을 하면서 말을 했었다.


“아니 밤이가 시돗개던지 진시바던지 웰시바던지... 어차피 우리가 키울 건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시끄럽다고, 가짜 시바면  파양 할 거야?

내버려 둬 예쁘면 되니까”

현실 남매의 논쟁은 유아 무야 여기서 정리가 되었다.     


하지만 정작 나는 밤이가 혹시 진짜 시바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겼고 

그런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여전히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리고 밤이의 외모를 조목조목 뜯어보기도 하고 산책하다가 다른 시바를 만나면 그 아이와 밤이를 속으로 

비교평가하곤 했었다.



‘우리 밤이는 꼬리가 저렇게 동그랗게 말려 있잖아?

 그리고 가슴털이 저렇게 예쁘게 나 있고 ’등등..

속으로 우리 밤이가 진짜라는 것을 증명해 줄 여러 가지 

증거들을 은밀하게 찾고는 아쉬움과 자랑스러움이 교차를 해댔다.     


딸아이의 말대로 밤이가 진짜든 가짜든 이제 파양 할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이러는지 내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단순히 ‘내가 속은 건가? ’라는 생각 때문에 기분이 나쁜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아이의 정통성 진위여부에 따라서 밤이가 달라 보이는 내 마음의 잣대가 더 문제였다.


밤이가 진짜인 듯싶으면 더 예뻐 보이고 가짜라는 생각이 들면 이상하게 

명품 짝퉁 가방 같이 뭔지 모르게 이상하게 보였다.

밤이는 이미 밤이 자체인데 말이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으로 간사하다는 것을 알았다.

내실보다는 외모를 취하는 인간인지라 어쩔 수가 없나 보다.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럽고 나에게 행복을 주었던 밤이라는 존재가 은밀한 평가가 시작되면서

 밤이만 보면 뭉게구름처럼 내 마음에 가득 피어오르던 핑크빛 감정은 

점점 회색빛으로 물들어서 바스러져갔다.     

이것이 나를 슬프게 했다.

하지만 

밤이는 내 은밀한 의심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을 이미 잠식해가기 시작했고 

그 무섭다는 밥 정은 내 마음에 일렁이던 모든 갈등이 사라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면서 밤이는 누구보다 사랑받는 우리 가족이 되었고 이것이 밤이의 정체성이 되었다. 

시바의 혈통보다 더 확실한 밤이의 신분이었다.

이런 사실이야말로 우리 강아지가 품종견이든 믹스견이든 유기견이든 나의 반려견이 너무나 

자랑스러운 이유가 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갈등이 사라지고 우리 가족이 된 밤이에게는 다른 많은 애칭이 생겼다.

혈통이나 품종에 대한 별명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끼리 애칭을 부르듯이  

밤이의 사랑스러운 특징들을 담아 부르는 그런 이름들이 생겼다.     


그중에 몇 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돼지 밤. 거숨 김밤 선생. 젤리 밤 . 김민들레. 딱시바. 오구나의사랑.      

식탐이 많고 포동포동 살이 올라서 턱살이 두 개 접히고 몸은 동그랗고 게다가 털은 까매서 

마치 제주도 흑돼지를 닮은  밤이를 부를 때 우리는 돼지 밤이라고 불렀다.

15kg까지 클 거라는 의사 선생님 말이 무색하게 우리 밤이는 중성화 수술 이후에 17kg가 넘었다.

건강에 유의해야 하지만 살이 쪄서 배가 축 처져서 상대적으로 다리가 짧아

보이는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서 부르는 애칭이었다.     

우리 돼지밤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는 것을 너무나 사랑하는 강아지이다.

먹는 것 앞에서는 정말 모든 이성의 줄을 놓는 듯하다.

우리 밤이가 응급실을 가는 거의 모든 이유는 잘못된 것을 먹었을 때였다.     


이런 돼지 밤이가 거친 숨을 몰아쉬는 때가 종종 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우리가 해 주거나 너무나 기분이 좋을 때 밤이는 거친 숨을 몰아 쉰다.

그래서 우리는 아호를‘ 거숨’이라고 붙여서 부르곤 했었다.

그리고 만들어진 애칭이 ‘거숨 김밤 선생’이라는 애칭이다.

거숨 김밤 선생은 자기 식사시간이 아니고 우리 식사시간에도 거친 숨을 몰아쉰다. 

그리고 기다리던 사람이 집에 돌아왔을 때 그리고  놀고 싶을 때 그리고 산책을 나갈 때 

우리가 자기의 요구를 우리가 알아줄 때 종종 거친 숨을 몰아쉰다.

왜냐하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이 거숨 선생이 몸무게를 드디어 17kg를 넘어서 17.3kg가 되었을 때 우리는 

‘ㅇㅇ 173’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우리 동네 카페 이름인데 공교롭게도 체중계의 숫자가 정확하게 17.3을 찍었을 때 붙여준 애칭이었다.     


이 거숨 선생이 종종 몸을 옆으로 뉘이고 자는데 그 모습이 까만 젤리 같아서 ‘젤리 밤’이라고도 부른다.     

딱 봐도 시바 같다고 ‘딱 시바’


털갈이 시기에는 털이 민들레 씨처럼 폴폴 날리고 다녀서 ‘김 민들레’     

하기 싫은 것을 강제로 시키면 나름 화를 내면서 와랑 짖어대서 ‘김와랑이 ’     

그냥 밤이만 보아도 좋은 나는 밤이를 볼 때마다 부르는 ‘오구 나의 사랑이’

정말 정말 수도 없이 만들어지는 애칭과 별칭들로 이름 부자가 되어버린 우리 김밤이다.     

우리 거숨 김 밤 선생은 소파의 반을 차지하고 누워서 잠을 늘어지게 자고 있다.

이 아이가 없는 시간은 상상을 할 수도 없다.

소파 위에서 잠을 자는 밤이

왜냐면 이미 이 아이는 우리 가족에게 찐 가족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밤이는 맞고 밤이의 혈통의 진위성은 틀리다.

이것이 지금 나의 선택이다.

그리고 이 선택은 나에게 다시 행복을 찾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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