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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엘 Oct 24. 2021

10 상위 0.1%입니다.

                       효견이네!

   

“상위 0.1%입니다.”     


오래전에 운동을 해 보려고 PT를 등록했었다.

그때 나를 지도했던 트레이너 분이 나에게 축하한다며 했던 말이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늘 몸이 약했다. 

게다가 결혼 후에 출산과 육아는 나를 더 약하게 만들었다.

이웃집 할머니 말에 의하면  생긴 것은 맨손으로 소도 때려잡게 생겼다는데 보기와는 달리 너무나 체력이 없어서 매사 지치고 힘이 들었다.

(그런데 솔직하게 그렇게 장부 같이는 안 생겼는데 키가 좀 크고 살이 쪘다고 그러셨던 거 같다.)


그래서 체력을 키우려고 헬스장에 등록도 하고 PT도 등록을 했었다.

그런데  대뜸 상위 0.1%란다.

아니 대뜸은 아니다. 인바디를 체크하고 난 뒤에 말을 한 것이니까.

0.1%라는 말에 잠깐 기분 좋은 착각을 했었다. 

대체로 좋은 것을 나타낼 때 흔하게 사용하는 상위라는 단어 아닌가?

“그런데  체육관에서 상위 0.1%는 뭐지? 

좋은 건가? 아닌가? 미모? 그건 아닌 거 같은데.. 나이인가? 아니면 체중? “ 

 에이 뭐야 ”

내심 이렇게 혼자 생각하고 있는데

트레이너 분이 툭하고 말을 던졌다.

회원님은  우리 체육관에 비슷한 나이 여자분 들 중에서 근육이 없는 순서로 일 등 했다고 

운동 안 하시면 조만간 병원에 실려 가신다고..     


“ 흥 그런데 거기에 상위라는 표현을 쓰는 건 뭐야? 사람 설레게....”      

그때 트레이너 분은 겁을 줘서라도 운동을 독려하고 싶으셨나 보다.

그런데 나 같이 위기의식이 없는 사람은 그 방법이 안 먹힌다.

피티를 받다가 근육통이 생기고 힘드니까 슬슬 그만두었다.

헬스장에 갈 수가 없는 이유는 정말 정말 창의적으로 수백 개는 떠올랐다.

의지박약인 나는 정말 억지로는 안 되는 사람이다.

매는 절대로 나에게 교육적인 힘이 없었다.

뭐든지 신이 나야 움직이는 나란 사람은 운동도 재미가 없으니까 

결국 이리저리 등록한 PT를 가족끼리 돌려막기 하다가 어영부영 

돈만 쓰고 헬스장에 다니는 것은 포기했었다.

다른 운동도 해봤지만 결국에는 힘이 들면 멈추었다.     


그러면서 보상심리인지 어디서나 수다의 주제는  식이조절과 운동이었지만 

주로 입 운동만 하다가 끝났지 실천을 하지는 않았다.

남편이 눈치를 주어도 나를 움직이게는 못했다.

이런 면에서는 나는 멘털이 참으로 강하고 위대하다 

눈치를 주면 웬만하면 움직일 법도 한데 절대로 안 하는 것을 보면 의지박약도 아니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은 의지력이 엄청나서 무슨 바위 같다.

나는 절대로 약자가 아니다. 피해의식을 가질 필요도 없다.

상처가 웬 말이냐? 내가 이렇게 강한데....


이랬던 나에게 우리 강아지 밤이의 실외 배변 습관은 나의 가장 무서운 트레이너가 되었다.

가족들이 각자의 일터로 학교로 나가면 나는 밤이를 데리고 나가야 했다.

하루에 두 번은 나가야 하는 산책이라서 

오전 산책은 나 밖에 할 사람이 없었다.

처음에는 알아서 밖에서 배변을 가리는 밤이가 신기하고 귀여워서 기쁘게 그리고 기꺼이 나갔다.

어린 밤이는 활동도 많지 않고 작고 가벼운 녀석을 데리고 다니는 것도 기분 좋은 산보 정도라서 

행복한 산책 시간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점점 자라기 시작하면서 힘도 세지고 활동범위는 점점 넓어졌고 속도도 빨라졌다. 

이제는 가벼운 산보가 아니라 산행이 되었다.

점점 산행이 아니라 강제 행군이 되어갔다.     

정말 미치게 힘들어서 나가기 싫은데도 

 밤이는 실외 배변만 하는 아이라 안 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아이를 키운 엄마로서 아이가 배변을 못하면 얼마나 괴로울지는 아는지라 죽을힘을 다해서 

산책을 나갔다.     

오전에 30분에서 1시간을 걷다 오면 진이 빠져서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우리 동네 특히 우리 집은 언덕 위에 있는 집이라서 정말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고

 숨이 턱에 차서 가쁘게 내 쉬면서 걸어야 했다.

내가 이러다가 죽지 싶어서 밤이에게 천천히 가자고 부탁을 해야 했다.

하지만 어리고 건강한 녀석은 발이 네 개나 있어서인지 언덕길이나 평지나  지친 기색이 전혀 없이 

쌩쌩하게 일관된 속도로 걸었다.

속에서 욕지기가 올라올 때도 있었다.

‘내가 이 무슨 고생이람 무슨 생고생이람...’

머릿속을 하얗게 불태우다가 밤이가 똥과 오줌을 정리하면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이제 집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아이를 재촉하지만 

아이는 들어갈 생각이 전혀 없이 더우면 시원한 그늘에 앉아서 행인들을 구경하였고 

추우면 아이는 마냥 신이 나서 계속 행군을 했다.     


그럴 때면 속으로 나는 생각을 했다.

이 정도면  사람이 강아지를 학대하는 것이 아니라 강아지가 사람을 학대하는 거라고...

난 추위 알레르기까지 있는 사람인데 말이다.

정말 배려심 없는 강아지 같으니라고!

주인 말 좀 들어라! 이 녀석아!

속으로 악다구니를 쓰지만 겉으로 내색을 할 수가 없었다.

잘못하면 나만 학대범이 되니까 사람이 참아야지.               


반면에 나와 다르게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은 밤이에게 최적의 파트너였다.

걷고 뛰고 기본 한 시간은  산책을 하고 돌아왔다.

퇴근 후에 남편은 이런 시간을 너무나 좋아라 했고 

다음 날 나는 이렇게 조련된 아이를 산책시키는 게 더 부담이 되었다.

더 많이 걷고 더 많이 오르락 내리락을 했다. 아침에 산책을 하면서 어제저녁 산책코스를 알 수가 있었다.

 밤이는 내비게이션이었다.

한번 간 길은 잘도 기억하고 다시 가곤 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면 아침에 나는 속에서 못내 못마땅했다. 

‘왜 이렇게 여기저기를 다닌 거야?’ 라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나는 살기 위해서라도  밤이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주인 말보다는 자기의 고집이 우선인 시바견이지만 

우리 밤이는 그 어떠한 장애에도 식탐 앞에서는 무너져 내렸다.     

그러니 나도 갈수록 요령이 생겨서 산책을 갈 때 아예 간식을 두둑이 챙겨서 

내가 그만 걷고 싶을 땐 간식이라면 자기의 고집도 포기하는  

밤이에게 헨델과 그레텔처럼 간식을 즈려 밟고 오게 해서 집으로 데려왔다.     

그래야 내가 에너지를 다 써서 길에서 주저앉기 전에 무사히 귀가를 하기 때문이다.     


이랬던  밤이도  한 두 해를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산책 스타일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무작정 걷기보다는

풀냄새나 흙냄새나 다른 강아지들의 오줌 냄새를 맡거나 

시원한 그늘에 앉아서 바람을 쐬며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을 하는 것을 

즐기기 시작했고 쉬기도 하고 걷기도 하고 공원에서 앉아있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면서 밤이가 살이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밤이가 그러는 게 나는 내심 반가웠다.     

그런 나와는 대조적으로 남편은  

밤이가 많이 걷지 않는 날은 실망스럽게 들어오곤 했다.

“안 걸어 정말 안 걸어” 이러면서 말이다.

나는 속으로 썩소를 지으면서 가만히 있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이의 산책은 어김없이 오전에 40분 이상은 밖에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정말 정신없이 매일 아침이면 선크림도 바를 틈이 없이 

 녀석을 데리고 산책을 가는 게 나의 오전의 일상이 되었다.

그런 나의 오전의 일상이 2년이 되고 3년이 되고 4년이 되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동네를 산책하고 있는데

동네 아는 어르신 한 분이 지나다가 나를 보고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

“우리 밤이가 효견이네 , 누가 저래 걷기를 시키노?

혼자서는  저래 못 걷는다 ”.     

처음에는 효견이라는 단어에 

어르신이 참 창의적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맞아요”라고 대답을 하고 

지나쳤는데 효견이라는 단어가 묘하게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 많은 시간을 나 혼자서는 무슨 재미로 걸었겠는가?      

나는 아이를 산책시킨다고 생각했던 시간이었는데  어르신 말대로 

밤이가 나에게 걷기 운동을 시키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결과적으로 밤이는 나에게 당근 같은 트레이너가 되어 주었다..

실외 배변을 하는 밤이 때문에 부득이하게 책임감으로 시작된 산책인데

결과적으로 걷기 운동을 하게 되었고 이것은 내 심장을 튼튼하게 만들었나 보다.

언덕을 오를 때 가뿐 숨을 내 쉬며 가슴의 통증을 느끼던 내가

이제는 수월하게 걷게 되었다.     

자식을 키울 때 하는 말이 내가 자식을 키우는 줄 알았는데 자식이 나를 

부모로 키운다는 말이 있다.

모든 일에는 이런 양면성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만 손해보고 애쓰고 있다는 생각 했는데 그  속에서 내가 주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겨보게 되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나는 밤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간다.

아니 마북동 효견  밤이가 주인을 운동시키러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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