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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엘 Oct 24. 2021

12 밤이야 네 정체가 뭐니?

                              사람이야? 강아지야

우리 집으로 입양을 온 밤이에게 많은 것을 가르쳤다.

강아지들끼리 살았다면 자연스럽게 강아지다운 삶을 살았을 테지만

 이제 밤이는 사람인 우리와 살아야 하니 

생활에 적응을 하기 위해서 많은 일들을 새롭게 배워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다.


우리는  손도 없는 밤이에게 손! 이라면서 앞발을 달라고 가르쳤고,

시도 때도 없이 앉아와 기다려를 시키기도 했다.

엎드려. 뒤로 돌아. 뛰어. 먹어. 등등 많은 것을 밤이는 배워나갔다.


밤이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곧잘 해냈다.

우리가 훈련시키는 단어도 곧잘 알아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지 밤이는 우리가 가르치지 않았지만 우리가 자주 올리는 단어들을 알아들었고

우리가 하는 행동을 훈련이 없이 따라 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서 우리들이 식사 중에 무심코 던진 '맛있다'라는 단어 같은 거였다.

언젠가부터 맛있다는 말을 하게 되면 이 단어가 나옴과 동시에 밤이가 움직였고

 자기에게도 음식을 나눠 달라고  생떼를 부리기 시작했다.


단어만 그런 게 아니라

밤이는 어느 날부터인지  우리가 하는 많은 것들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이게 미러링인가? 

우리의 침대로 올라와서 자기 시작했고

식탁의자로 서슴없이 뛰어 올라와서 의자에 앉아서 식탁 위를 노리기도 했었다. 

내가 앉아서 TV를 보던 자리에 마치 나처럼 앉아서 TV를 보고 있거나 

우리가 즐겨 앉는 안락의자에 올라가서 낮잠을 자거나 굳이 요가 매트 위에서 스트레칭을 하거나

 차를 타고 갈 때는 꼭 뒷좌석에서 앞 좌석 팔걸이에 발을 딛고서 드라이브를 즐기곤 했다.

요가 매트 위에서 스트레칭하는 밤이



 우리 가족끼리 가끔 그런 말을 했었다.

" 밤이가 조만간 한국말로 우리랑 수다를 떨 것 같지 않아?"

그랬다. 아이는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눈여겨보다가 이해하고 그대로 따라 했었다.

그러면서 밤이는 점점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우리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산책길에서의 밤이는  절대 사람이 아님을 깨닫게 해 주었다.

그리고 마치 문명의 이기를 한 번도 누려 본 적 없는 강아지처럼 굴었다.

일단 산책 나온 다른 강아지를 멀리서 보면 일단 몸을 낮추고 사냥 자세를 취했었다.

어떤 견주분들은 밤이가 예의를 갖추는 것이라고 오해를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1초 안에 그 오해는 이해로 바뀌었다.

다가온 강아지에게 화를 내면서 짖어서 좇아 버리기 일쑤니까 말이다.


게다가 움직임을 알아내는 동체시력이 뛰어난 밤이는  움직이고 있는 생명체를 발견하면 

여지없이 늑대의 후손임을 드러내곤 했었다. 

나무 위를 돌아다니는  청설모 에게도 

조용한 풀숲에 있는 메뚜기며 개구리며 심지어 쥐까지도 쫓아가곤 했었다.


그중에도 특별히 청설모에게는 늘 화가 나있었다.

밤이를 내려다보는 청설모

발을 구르거나 쫓아가고 싶어서 나무에 발을 기대고  낑낑대는 소리를 냈다.

마치 목줄만 아니면 당장에라도 나무 위로 기어올라가서 멱살을 잡을 태세였다.

 청설모 역시도 그런 밤이를 약 올리기라도 하듯이 나뭇가지를 떨어뜨리거나 아니면

 땅에 내려왔다가 밤이가 보면 달아나기 일쑤였다.

그러면 밤이는 더 날뛰었다.


산책할 때 만나는 새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밤이는 새들과도 사냥을 하려는 건지 아니면 놀자는 건지  뭔가를 주어 먹는 까치나 비둘기들을

사냥하듯이 쫓아가곤 했었다.

당연히 새들은  밤이를 따돌리고 날아올랐다. 그러면 나는 속으로 

 ‘밤이야 아서라’

‘새는 새요 밤이야 너는 날지 못하는 땅 위의 강아지다 ’라고 말을 해주었다.


나에게 새나 나비나 청설모는 그냥 자연 속에 풍경 같은 아이들인데  밤이는  신경을 쓰면서 

꼭 새들을 쫓아가곤 해야 직성이 풀려 보였다.

이런 아이들에게 사냥개의 면모를 뽐내고 싶어서 쫓아가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 야생이 그리운 것일까?


이른 아침에 나와서 아침 세수를 하는 들고양이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왜 그렇게 밤이는 고양이 냄새에 열광을 하는지 나는 알다가도 모르겠지만 

한번 고양이 냄새에 꽂히면 중독에 빠진 강아지처럼  정말 뺑뺑이가 시작되어

같은 곳을 맴을 돌면서 고양이 찾기에 몰두했다.


그 녀석들도 밤이를 보면 처음에는 엄청 경계를 하지만 곧 뭔가를 알아챘다.

밤이가 리드 줄에 묶여 있고 주인에 의해서 조절된다는 것을 말이다.

처음에는 등을 동그랗게 말고 하악질을 해대다가 밤이가 어느 정도 거리 이상 움직이지 못하는 신세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 앉은자리에서 하품을 하거나 밤이를 노려보기 일쑤였고 

밤이만 애가 타서 발을 동동 구르지 그 녀석들을 하나도 아쉬울 것 없다는 표정이었다.          

냉소적이고 대장격인 선임 들 고양이들은 어찌 보면 밤이 보다 더 날카롭고 기운이 뭔가 강했다.

처음에는  밤이도  마치 그 아이들을 사냥이라도 할 듯한 기세로 떠들썩하게 짖지만

막상 그 아이들이 등을 말아서 털을 세우고 아르르 소리를 내면 못 이기는 척 돌아서곤 했다.


밤이가 어쩌다 목줄이 풀려 버렸을 때 

신이 난 밤이는 마치 “빨리 와, 지금 고양이들에게 가자 응? 가자”

이렇게 말을 하듯이 마치 나에게 따라오라는 듯 뒤를 돌아보면서 리드 줄이 풀린 채로 뛰어가고 있었다.

진짜 고양이를 잡으러 가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찔했었다.

하지만  밤이는 내가 자기를 따라가지 않으면 혼자서는 가지 않았다.

오히려 밤이는 가던 길을 멈추고 나에게로 다시 돌아왔고 또 목줄을 맸다. 

우리 밤이의 그 표정은 너무나 신이 나서 미안하기까지 하지만 어쩔 수가 없는 밤이의 현실이었다


내가 관찰한 우리 밤이는

사람과 같이 살고 있어서 자기가 사람인 줄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행동을 자연스럽게 따라 하는 듯하다. 그래서 우리도 우리 강아지가 털 달린 

사람인양 착각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산책길에 나온 밤이는 사냥개로써 본능이 되살아나서 영락없이 강아지가 된다.  

동물친구들도 쫓아가고 싶고 여기저기 싸돌아 다니고도 싶은 늑대의 후손 말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몸도 마음도 목줄에 매여있어서 

 자발적으로는 야생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상태가 밤이의 현실이었다.


밤이의정체성은 뭘까?

사람 같은 강아지? 아니면 강아지 같은 사람?


밤이야! 나는 네가 강아지 탈을 쓴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너 사람인 줄 착각하는 영락없이 귀여운 강아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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