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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엘 Oct 24. 2021

 11 강아지도 애를 쓴다.

 그래 이게 사는 거지 ! 더 사랑한다고 착각하면서 말이야

    

우리 집에 밤이를 데리고 온 후에 나는 분주했었다.

아이가 지낼  공간을 마련하려고  집을 정리해야 했고

 대소변을 아직은 못 가리는 꼬마 강아지 때문에 손에 늘 손걸레를 쥐고 있어야 했다.

아침과 저녁으로 아이의 밥과 물을 챙기고 장난감으로 놀아줘야 하고 

자기를 예뻐하라고 따라다니면 쓰다듬어줘야 하고 외출을 할 때도 긴 시간을 집을 비울 수가 없었다.

목욕을 해 줘야 하고 발을 닦아줘야 하고 병원에 데려가야 하고 털도 빗어줘야 하고 아이가 비명이라도

 지르면 혹시 어디가 다친것은 아닌지 노심초사해야 했다.     

외식이라도 할라치면 식당에 함께 들어갈수가 없어서  차에 기다리게 하고식당에 들어가도 마음이 편하지않아서 결국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가족 중 누군가는 밤이에게 가야 했었다.



딸아이 출근길에 따라나선 엘리베이터 문 앞에 꼬마 밤이

게다가 아침마다 출근하는 딸아이를 전철역까지 

바래다주곤 했는데 꼬마 강아지라서 혼자 놔두기

 뭣해서 늘 데리고 다녔고 녀석도 당연히 

앞장을  서곤했었다.

나는 매번 딸아이 출근길에 그 꼬마 강아지까지 챙기려니 부산스러워졌다.          

마트에 가도 밤이한테 필요한 물건까지 생각하느라 지갑과 머리가 둘 다 분주했었다.

녀석 때문에 일상이 번거로워졌고 훨씬 분주해졌다.      


밤이가 자라가면서  우리가 사용하는 침대며 소파를 점점 파고들었고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공간을 밤이에게 기꺼이 내어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하루에 두 번하는 산책은 생각보다 쉬운일은 아니었지만 너무나 기쁜 마음과 이쁜 마음에

충성 과다에 걸린 사람들처럼 잘 수행했었다.     



우리 가족은  밤이를 위해서  정말 기꺼이 그 일을 했고 단 한 번의 의심도 없이 

우리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밤이를 위해서 다 내주었다.


주위에서 밤이를 복 받은 강아지라고 불렀다.

이런 이야기도 싫지 않았다. 

주인 잘 만나서 배 부르고 등 따습게 사는 강아지로 살아가는 밤이를 보는 것이 또 우리의 기쁨이었다.

그 칭찬하나에 우리는 불편을 감수했고 우리의 공간과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밤이에게 아낌없이 내주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내가 착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만 밤이를 챙기고 수고하고 애쓴다고 생각을 했는데 언제부터인지모르게

 밤이가 우리를 챙기는 듯한 느낌을 받기 시작했었다.

설마...

밤이가 ?  

우리를 챙긴다고? 

언젠가 밤이때문에 상담을 받았던 어떤 훈련사분이 그랬었다.

우리는 사람 입장에서 우리는 사람, 밤이는 강아지라고 분류하지만 강아지 입장에서는

 다 같은 무리라고 보기에 자기가 우두머리라고 생각한다면 집의 공간이나 사람들을 챙길 것이라고...

그때는 그 이야기가 황당하기도 하고 좀 신빙성이 없는 야매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다.

흠.. 그런데 그래서였나? 


꼬꼬마 시절 밤이는 자기의 물그릇에 물이 없으면 정수기 밑에 가서 자기의 물그릇과 정수기를 번갈아 보면서 물이 먹고 싶으니 물을 달라는 신호를 하곤 했었다.

우리는 그저 꼬마 강아지의 영리함에 감탄하기에 급급해서 그 아이가 자기의 생존을 책임지는 우리를 일일이 챙기고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밤이


또 밥이 먹고 싶은데 그 시간을 넘겨서 잊은 듯하면 우리에게 우울하고 다급한 표정을 지어 보이곤 했었다.

우리 중에 누가 그것을 알아채고  '밥'이라는 단어를 말하면 그 단어를 말한 사람의 주위를 동그랗게 돌았다.

마치 ‘응 그거 맞아’라고 우리에게 동그라미를 그려서 정답임을 알려주듯이 말이다.    

그러면 또 순진한 우리들은 박수를 치면서 강아지의 영리함에 감탄을 했었다.

'밤이는 정말 재미있는 강아지라고 역시 선생님네 집에서 사는  강아지라서 다르다고

 정답을  맞히면 동그라미를 그려준다고..'    

꿈에도 밤이에게 우리가 챙김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속도 없이 강아지의 애교라고만 생각했고 그 모습에  녹아났었다.


이런 걸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고 하나?

오직 내가 생각하는 대로만 상황을 해석하려는 우매한 태도 

우리는 당연히 '우리만 강아지를 챙기고 있다.'에 꽂혀서 밤이가 우리를 챙기고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하지않았다.


그런데 점점   일방적이던 전지적 작가 시점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것은 

남편이 밤이를 따라서 주방으로 나오면서 장난스럽게 이야기를 했었던 바로 그때부터였었다.

내가 식사 준비가 끝나면 항상 “여보 저녁 !”라고 주방에서 소리치곤 했는데, 

그때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을 하고는 밤이는 남편에게로 와서  남편을 코로 쿡 찌르고

 식사 시간을 알려주듯이 기다린다고 했다.

그래서 남편이 자리에서 일어나면 앞장서서 주방으로 안내를 한다는 것이었다.

이제보니 밤이는 식사시간이 되면 여지없이 남편에게 갔고.. 가족들 식사시간을 챙기고 있었다.

설마가 진짜가 되기 시작하는 어떤 지점이었다.

그제서야 모든것이 거꾸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밤이를 혼자 둘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데려갔다고 생각한 딸이의 출근길도,

우리가 밤이를 산책시키려고 나간 산책길에서    

먼저 앞서가다가도 돌아서서 우리가 잘 오고 있는지 기다리고 앞서가다가 돌아서서 기다리던 때도,




서핑 보드 위에 올라간 밤이

바닷가에 데리고 가면 모래 파기를 하다가 파도를 보면 쏜살같이 도망을 치던 녀석이 서핑을 배우는 딸아이가 부르니까, 있는대로 손톱에 힘을 주고 잔뜩 겁에 질려서 눈을 떼굴떼굴 굴리면서도  바다 위에 떠있는 보드 위로  한달음에 따라 올라갔을때도,


남편이 일이 있어서 늦게 퇴근하는 날이면 

부동자세로 하염없이 현관문 앞에서 

기다리던 것도 ,


요즘은 코로나로 인해서 마트나 배달이 많아진 후에

벨이 울리면 우리 가족중 누구보다  빨리 현관으로 뛰어나가서 벨을 누른 사람의 신원을 파악하는 것도,


 가끔 집에 수리를 하거나 홈케어를 하시는 분들이 올 때는 밤이가 그분들에게 위험할 것 같아서

 베란다에 가둬두곤 했었는데 

(사실 방문하시는 분들 중에는 강아지를 무서워하시는 분이 상당히 많고 안전상 낯선 사람들의 방문에는 어쩔 수가 없다.)

그분들이 가고 나면 그때 밤이는 바람처럼 나와서 코를 바닥에 대고 마치 이 집안에 들어온 낯선 사람들이 대체 누군지 알아내려고 하는 탐정 같은 모양새로 냄새를 맡을때도,



또 어떨 땐 우리 중 누가 아프면 아이는 우울한 얼굴을 하고 그 사람 옆을 지킬때도,

또 어떨 땐 우리가 다투면 뭔가 더 약자라고 느껴지는  사람의 곁에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때까지 우울한 얼굴로 하염없이 턱을 바닥에 대고 기다리있을때도,



 밤이가 우리를 챙기고 있었고 이 일은  내가 눈치채기 훨씬 전부터 시작된 일이었고

심지어 모든 순간에 밤이는 우리를 챙기려고 애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우리들만 일방적으로 밤이를 챙기느라 애쓴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 녀석은 우리 집 모든 공간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이 공간을 다 책임지고 관리하자니 

참 지치는구나 생각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우리는 저 하나 챙기는 것도 분주하다 힘들다 했는데 밤이는 우리 가족 네 명을 다 챙기느라 훨씬

 많이 애쓰고 힘들었겠구나 싶었다.

 시점이 바뀌고서 다시 보니 뭔가 탁 풀리는 느낌이 들면서 ,웃기지만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래! 이게 사는거지 뭐, 서로 더 애쓰고 더 사랑한다고 착각하면서 말이야.


밤이야 이제 그만 챙기렴! 그냥 똥똥이 물개처럼 편하게 살아라. 

네 행복이 우리의 행복이니까 말이야. 하지만 챙기는 게 네 행복이면 계속 챙겨라 .

엄마도  니가 챙겨주는거 좋으니까 말이다.

밤이와  동상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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