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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엘 Oct 24. 2021

 14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한 번의 상생의 노력


밤이는 8개월령에 첫 생리를 했다.

강아지는 사람보다 모든 게 빠르니까 우리에게는 아직 어려 보여도 

강아지는 첫 생리를 시작했다.

집안 여기저기에 생리혈이 묻었고 그건 당연히 일거리였다.

물론 시바는 야무진 편이어서 자기가 뒤처리를 하는 편이었지만 

그래도 생리혈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는 없기에 여기저기에 묻었다.

그래서 하우스에 갇혀 지내곤 했었다.     


기저귀를 차는 아이들도 있지만 밤이 녀석은 기저귀를 채우면 다 뜯어서

 찢어 버리기 일쑤였기에 입힐 수가 없었다.

시바견의 특성인지 아니면 밤이의 성격 탓인지 아이는 자라면서 하네스며 옷을 점점 거부하기 시작했고

몸에 뭔가 걸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생리혈도 문제였지만 더 문제는 예민해지는 게 더 문제였다.

원래도 견종의 특성상  예민한 시바견인데  우리 밤이는 그중에서도 초예민견 이어서

정말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우리는 뭣모르고 아이를 만졌다가 정말 응급실을 가야 하는 상황도 생기곤 했었다.     

이 물림 사고는 어릴 적에 깨물거리는 정도와는 상황이 달랐다.

정말 사고로 까지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아이를 중성화를 안 시키고 있었다.

그 수술로 밤이가 혹시나 잘못되면 어쩔까 싶은  두려움이 있었고 생리가 끝나면 

그래도 순해지는 것 같은 착각을 하면서 수술을 한 해 두 해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갈수록 일 년에 두 차례 있는 생리는 우리 가족을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했다.

아이의 예민함은 갈수록 더해졌고 물림 사고는 여지없이 일어났다. 

이제는 밤이가 사랑스러운 강아지가 아니라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상담과 강아지 훈련을 위해서 여기저기 훈련소를 알아보기도 했고 

상담을 받을수록 절망적인 마음 한편에는 ‘안락사’라는 끔찍한 단어를 떠올리기까지 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너무나 마음이 슬퍼서 울고 다녔다.


여러 상담 끝에 중성화 수술을 먼저 하라는 수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수술을 결정하였다.

 어릴 적에 했더라면 훨씬 쉬웠을 수술을  몸이 많이 커져서 더 위험한 상태로 수술을 하기로

 결정을 하고 동물병원엘 데리고 갔다.

그 병원에서는 아이가 수술 전에 스트레스를 받는 다고 보호자가 옆에 있을 것을 권고했다.     

그래서 수술 들어가기 전에 수액을 맞을 때 내가 옆에 있어주었다.

아이는 필사적으로 나에게 얼굴로 말을 했다.

'여기서 나가자고 빨리 가자고 자기 데리고 나가 달라고' 

밤이는 필사적으로 나에게 사정을 했다. 

하지만 마음만 아프고 녀석이 원하는 것을 해줄 수는 없었다.

밤이는 내가 옆에 있으니까 조금이라도 스트레스가 줄었는지 모르겠지만 밤이를 지켜보는 

나는 완전 진이 빠졌다.

 수술은 금방 끝이 났지만 아직 마취도 풀리지 않는 녀석은 그 병원을 탈출하려는 듯

 비틀거리면서 문을 찾고 있었다.     

밤이를 차로 태워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너무나 눈물이 났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수술한 것도 마음이 아프고 수술 자체가 주는 그 두려움과 긴장 때문인지 

또 마음이 매여서 눈물이 났다.

유난히 병원을 무서워하는 내가 동물병원이라고 예외는 아닌가 보다.

그냥 너무나 안쓰럽고 또 안쓰러워서 눈물이 났다. 

 녀석을 키우는 문제에 있어서 또 한 번의 거센 갈등이 일었다.


이러면서까지 밤이는 우리와 동거를 해야 했는가?

누구를 위한 동거일까?

너무나 마음이 불편하고 막연한 답답함과 슬픔이 올라왔다.     


털이 많이 날리기로 유명한 시바견이다.

그리고 생리혈도 사실 번거롭고 불편한 일이었다.

그래도 이런 일들은 우리가 감내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예민함과 공격성은 우리가 감내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이것은 밤이가 우리와 같이  살기 위해서 해결을 해야 하는 문제였다.

그것이 중성화 수술이라면 밤이가 감내해야 하는 일이었다.

나에게도 밤이의 중성화는 서글프고 두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너무나  마음이 아파도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길이었다.


수의사 선생님은 아이의 건강에도 훨씬 이롭다고 말을 해 주어서 그나마 

속상함이 덜해졌지만 수술의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정말 힘이 들었다.     

수술 들어가기 전에도 그리고 후에도 내가 지켜야만 했고 

집에 와서도 통증으로 경련을 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중성화는 또 하나의 상생의 필요한 과정이었다.

두 번의 고비를 넘기고 밤이는 다시 우리 가족이 되었다.     

많이 회복되고 나온 산책

밤이를 입양해서 키우면서 많은 고민을 던져주기도 했었다.고민만 던져 준것은 아니었다.

우리 가족에게 너무나 많은 웃음과 추억과 

이야기를 주었다.


공격성과 예민함은 두려움과 근심이 되기도 했고 여러가지로 많은 것을 감수하게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이 주는 사랑스러움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힘은 다시 한번 같이 가려는 노력을 하게 했다.

왜냐하면

이 사랑스러운 힘을 가진 아이와 함께 한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동행임을 알기때문이었다.

     

중성화를 마친 우리 밤이는 일 년에 두 차례 있는 예민함이 사라졌고 한결 부드러워졌다.

우리도  이제는 어떻게  아이를 

대해야 하는지도 점점 알게 되었다.  


반려견을 키운다는 것은 들에서 자라는 잡초처럼 마구잡이로 키우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식으로 보듬고 살아야 하는 생명체이며 이해가 동반되어서 돌봐줘야 하는 약자라는 것을

또한 알게되었다.    


우리도 녀석도 서로 상생을 위해 또 한번의 파도를 넘으면서 더 깊은 유대감과 교감이 생겼다.   


 우리 늦둥이 강아지는 사교육을 시키려고 선생님을 알아보고 있다.

우리 가족이 되었다는 것은 이제 사람들의 세계 속에서 우리 밤이가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기에 

이 사회 속에서 적응하기 위한 에티켓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반려견이지만 다른 이웃들의 안전과 청결함을 해치면 안 되기에 

노력해야 함을 느낀다.

반려는 우리 밤이하고만이 아니라 내가 속해 있는 사회 내 이웃과도 반려는 지속되어야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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