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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싹지기 Apr 15. 2024

감정의 심연을 걷게 하는 아름다움

Franck의 Violin Sonata A Major

나도 콜 포비아를 겪은 적이 있다.


'콜 포비아'가 요즘 MZ 세대들에게 나타나는 트렌드 중의 하나라고 한다. 어느 조사를 보니 MZ 세대에게는 대략 3명 중의 1명 꼴로 콜 포비아의 경험이 있다고 한다. 굳이 MZ 세대가 아니어도 예전부터 누군가는 이런 어려움을 가진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세대에게 이런 현상이 증가세를 보여서 하나의 트렌드로 정착이 된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추정해 보면 문자, 메시지, 전화가 필요 없는 어플들로 인한 전화 통화의 필요성이 감소되다 보니 전화 통화의 경험이 적어지고 자연히 이에 대한 대처 능력도 떨어지기 때문이랄 수도 있다. 성격이 내향적일수록 대화보다는 텍스트에 의존하는 경향이 더 크다. 또 한 가지, 전화 통화로 인한 부정적인 경험을 한 기억 때문에 심리적으로 전화 통화를 회피하는 현상도 생길 수 있다. 부정적인 전화 통화의 경험은 주로 업무적인 상황에서 더 빈번하게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원인은 요즘 세대들이 예전보다 대인 관계의 빈도가 줄어든 것이 아닐까. 학업에만 집중해야 하는 성장기의 환경 그리고 그 압박감으로 인해 예전보다 사람들이 함께 활동하면서 대인 관계를 형성하는 동아리 같은 공동체의 감소는 대인 관계의 감소를 가져온다. 이렇게  요즘 세대들이 예전과 다른 환경을 가지고 있는 부분에서 콜 포비아가 늘어나는 원인을 몇 가지 추정해 볼 수 있다. 


나에게도 한때 '콜 포비아'를 겪은 시기가 있었다. 나의 경우는 부정적인 전화 통화를 자주 해야 하는 업무적인 환경에서 비롯된 일시적인 경험이다. 직장 생활을 벗어난 지금은 예전에 비해 전화 통화가 확연하게 줄어든 탓에 오히려 전화벨이 울리면 반가워하지만, 한때는 전화벨이 울리면 깜짝깜짝 놀라곤 하는 시기도 있었다. 물론 나의 콜 포비아는 선천적으로 극강의 내향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내 성격에도 원인이 있다. 내향적인 성향을 가진 이들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전화 통화보다는 메일이나 메시지를 더 선호한다. 업무적인 대화가 필요하더라도 우선은 그 내용을 메시지나 메일 같은 텍스트로 먼저 정리를 해서 보내놓는다. 전화나 직접 대면을 통화 대화는 대화를 통해서 풀어나가는 것이 더 효율적인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전화 통화를 즐길 때도 있긴 했다. 사내 복지 업무를 담당하고 그 일을 즐기고 있던 때엔, 각종 문의나 요청을 위해서 전화를 걸어오는 직원들의 전화가 반가웠다. 그 전화에 응대를 해주고 설명을 해주는 것이 기분이 좋은 일이었기에 책상 위의 전화벨이 울리면 기쁜 마음으로 전화를 받고 긴 설명을 해주기도 했다. 물론 상대방의 만족스러운 반응을 끝으로 꽤 긍정적인 전화 통화의 경험들이 남겨지니 이어지는 전화가 은근 기대가 되기도 했다. 물론 그 일을 할 때에는 직원들의 반응이나 평가도 꽤 좋았고, 당연히 나의 자존감도 높아지는 경험을 했다. 일에 대한 만족감 내지는 자신감도 더욱 커지는 효과도 있다. 


전화 통화가 힘들었던 시기는 전화를 걸어온 상대방의 요구에 속 시원한 답을 주지 못하는 일을 하던 시기였다. 내가 다니던 회사의 가까이에 거주하는 지역주민들은 회사에 불만이 많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회사의 지원에 대한 기대감이 많은 편이다. 그 불만이나 기대감은 대부분 전화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자만감(자존감이 아니다.)이 넘치는 이들은 직접 대면을 통해서 고성이나 삿대질로 불만을 토로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고 불만을 토로할 수 있는 전화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감정노동자의 대표격인 텔레마케터에게 던져지는 불만이나 기대감 만큼 빈도는 잦지 않지만, 강도 만큼음 꽤 센 편이었다. 그리고, 그 불만이나 기대감은 회사에서 웬만한 지위를 가져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어서 언제나 그 자체로 스트레스로 남는다. 



휴대폰 벨소리가 들리는 환청


그런 순간들이 계속 누적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휴대폰의 벨이 울리면 깜짝깜짝 놀라게 되었다. 그 시기 나의 휴대폰에 저장된 벨소리는 정경화가 연주한 CD에서 리핑한 Franck의 Violin Sonata의 4악장 첫 부분이었다. 휴대폰의 벨소리는 자신이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소리이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던 곡 몇 곡을 CD에서 리핑해서 벨소리로 저장해놓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이 곡이었다. 


이 곡을 벨소리로 지정해 놓고 쓰던 초기, 사무실 책상 위에 둔 내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자 한 여직원이 물었다. 

"그 벨소리 좋네요. 혹시, 그 곡 제목이 뭐예요?"

가끔 음악을 들고 와서 제목을 알고 싶다고 하던, 음악감상 동아리에 같이 참여하던 여직원이었다. 

"프랑크라는 작곡가의 바이올린 소나타예요. 좋죠?"

mp3로 리핑해 둔 정경화의 연주 전 곡을 그 여직원에게 카톡으로 보내주었다. 

전화벨이 울리면 행복하던 시기의 기억이다. 물론 이 곡으로 만든 벨소리만큼이나 전화 통화에 대한 기억도 우아하고 즐거웠던 시기였다.


몇 년 후, 주민 지원을 담당하던 부서의 부서장이 되었던 시절, 전화벨이 울리면 신경이 곤두서던 시절이었다. 휴대폰의 벨이 울리고 발신번호를 확인해 보면 모르는 번호가 뜬다. 입에서 한숨이 푹 새어 나온다.

'에고~, 이번엔 누굴꼬?'

떨리는 가슴으로 전화를 받는다. 

상대편에서 터져 나오는 불만, 한숨, 토로, 격정 그리고 가끔은 욕설...


처음에는 그냥 무심하게 이 벨소리를 그대로 두고 들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엔가 라디오에서 이 곡이 흘러나오는 것을 무심하게 듣고 있다가 4악장으로 넘어가는 순간에 휴대폰이 울리는 줄 알고 깜짝 놀라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아이고, 이러다가 이 좋은 음악에 트라우마가 생길 수도 있겠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휴대폰의 벨소리를 저장을 해 둔 다른 곡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래서 그 이후 수년 동안은 Claude Ciari의 'Treize Jours En France'를 벨소리로 사용했다. 

물론 지금은 다시 Franck의 곡으로 바꾸었다. 이 벨소리에 대한 트라우마가 완전히 사라지고 그 벨소리가 그리워지는 순간이 다시 찾아왔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젠 이 벨소리가 들리면 반가운 마음이 든다. 요즘은 너무 전화가 오지 않는 것이 탈이다. 


Franck의 바이올린 소나타 A 장조, 내겐 그런 사연이 있는 곡이다. 가끔은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했던 기억이 있긴 하지만, 지금은 어느 순간에 들어도 다시 반가워지는 그런 곡이다. 



César Franck (1822-1890)는 벨기에의 독일 가정에서 태어난 프랑스의 낭만주의 작곡가이다.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와 오르간의 천재로 알려져 있다. 13세에 음악공부를 위해 프랑스로 갔고, 15세에 파리음악원에 입학했다. 1844년에는 프랑스 국적을 얻고 평생 파리에서 성당 오르간 주자와 파리음악원 교수로 살았다. 교향곡, 교향시, 교회음악, 챔버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남겼다. 

바이올린 소나타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1886년에 작곡되었다. 자신의 결혼 기념 행사에서 연주한 바 있는 폴란드의 명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외젠 이자이(Eugène Ysaÿe, 1858-1931)가 결혼을 하게 되자 우아하고 로맨틱한 바이올린 소나타를 작곡해서 그에게 결혼 선물로 헌정을 했고 이자이가 초연을 했다.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균형과 조화를 잘 보여주는 곡으로, 낭만주의 음악의 명작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프랑크 스스로도 이 곡을 작곡하고 난 후에 스스로 찬탄을 했다고 한다. 그의 교향곡 D단조와 함께 가장 널리 연주되는 곡이고, 프랑크 고유의 독특하고도 풍부한 화성 언어와 주제 순환, 그리고 빈 고전주의 전통이 조화로운 명곡이다.

이 곡은 A장조로 쓰여져 있으며, 총 네 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악장: Allegretto ben moderato 
부드럽고 섬세한 분위기로 조심스럽게 시작되는 피아노 반주에 바이올린이 차분하게 답을 하며 서정적으로 등장하면서 몽환적인 주제를 알린다. 시적인 알레그레토 모드로 은은하게 다가온다. 1주제는 바이올린이, 2주제는 피아노가 연주하면서 전체 곡에서 반복이 된다.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서로 대화를 하듯이 진행을 한다. 

(연애의 시작)


2악장: Allegro 
이 악장에서는 격렬하고 역동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 바이올린은 화려하고 기교적인 연주를 보여주며, 피아노는 강렬하고 리듬적인 반주를 한다. 소나타 형식(sonata form)을 따르며, 두 개의 대조적인 주제가 발전과 재현을 거친다. 

(뜨겁고 격렬한 사랑)

3악장: Recitativo-Fantasia: Ben moderato 
이 악장은 자유롭고 독창적인 형식으로 쓰여져 있으며, 바이올린이 레치타티보(recitativo)와 판타지아(fantasia)를 번갈아가면서 연주한다. 레치타티보는 말하는 듯한 표현으로, 바이올린이 감정을 토로하고, 판타지아는 상상력이 풍부한 표현으로, 바이올린이 자유롭게 변주하고 장식한다. 피아노는 바이올린을 따라가며, 때로는 조용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반응한다. 

(갈등하는 연인의 내면과 사랑의 속삭임)

4악장: Allegretto poco mosso 
사랑스럽고 낙관적인 주제로 캐논식으로 시작된다.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동일한 주제를 한 박자씩 차이나게 연주한다. 이 주제는 1악장의 주제와 유사하며, 순환형식을 완성한다. 빠르고 경쾌한 분위기로 진행되며,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화합하고 화려하게 마무리한다. 

(마침내 결혼에 이르는 해피엔딩)



Kyung-Wha Chung with Kevin Kenner from the matinée recital, Verbier Festival 2016 (2016. 07. 24)


Leonid Kogan with Naum Walter, Recorded live at the Grand Hall of the Moscow (1967. 12. 15)



Gidon Kremer with Martha Argerich, Live in Moscow (1989)



Renaud Capuçon with Khatia Buniatishvili (201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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