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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싹지기 Apr 08. 2024

이 노래의 가사처럼 되면 안 된다는 내 마음속의 회상

김성호의 회상


나는 노래를 좀처럼 하지 않는다.


나는 노래를 좀처럼 부르지 않는다. 아니, 거의 부르지 않는다.

내가 노래를 잘 부르지 않는 이유는 어린 시절부터 노래를 소리 내어 부르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던 탓이 큰 것 같다. 그 당시에는 딱히 노래를 불러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던 것을 보면 남들은 대부분 가지고 있는 노래에 대한 욕구가 내게는 부족했던 것 같다. 노래를 잘 불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도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노래 듣는 것을 좋아하게 되고 그로부터 얼마간의 세월이 흐른 후에는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이 내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되었다. 대체로 이런 알아차림은 불현듯 다가온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뛰어난 가수들이 멋지게 부르는 노래들을 수도 없이 듣게 되는 그 시간 속에서 내게도 잘 부르는 노래의 아름다움에 대한 깨달음의 순간이 오게 된 것 같다.


아직도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행위에 대해서 큰 욕구를 느끼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 반대로 노래를 부르지 않는 습성 때문에 곤욕을 치른 적은 무수히 많았다. 80년대 중반의 대학시절, 잔디밭에서 둥글게 둘러앉아 막걸리 파티라도 할라치면 항상 마지막에는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는 순서로 이어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순서가 슬슬 다가오기 시작하면 화장실에라도 가는 척하면서 슬쩍 일어서 나왔다가 내 순서가 한참 지나가면 다시 슬그머니 자리에 끼어 앉거나 아니면 그대로 그 자리가 끝나기를 기다리기도 하면서 그 순간을 피했다. 그때는 이런저런 방법으로 매번 그 순간들을 넘겼던 것 같은데, 진짜 곤욕스러운 순간은 회사에 들어가서 회식을 할 때 찾아왔다.



노래방은 싫어!


90년대의 후반쯤에는 회식을 하고 나면 으레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는 자리로 이어지곤 했다. 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노래를 좋아하고 불러대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래도 회사에서의 회식이라는 것이 윗사람들이 많이 있는 자리였기에 내 마음대로 피하기는 어려웠다. 항상 속마음으로는 노래는 부르고 싶은 사람들만 부르면 되지 굳이 노래 부르기 싫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청해서 노래를 들어야 되는가 하는 원망만 가득했다. 그래도 어찌하리오. 하라면 해야지...


아직도 노래방에만 가면 왜 노래는 순서대로 시키는지 그 마음을 참 이해하기 어렵다. 그냥 부르고 싶은 사람들만 부르면 되지, 싫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노래를 시켜대는 그 마음은, 글쎄... 아직도 이해가 되질 않아. 몇 번을 고사하고서 짜증스러운 재촉이 나올 때쯤이면 나는 체념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번호를 눌렀다. 선곡을 하라고 노래책을 건네주면 몇 번이고 할 게 없다고 내려놓기를 반복한 후이다. 


그렇게 마지못해, 어수룩한 낮은 톤으로 한 곡을 어색하게 불러내고 나면 형식적으로 박수는 쳐준다. 때로는 '노래 잘하네. 근데 왜 안 하는 거야?'라고 진지하게 묻기도 한다. '노래 못 해요. 제 노래는 분위기만 깨잖아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냥 말없이 웃어주고 만다. 그 사람들이 말들은 그렇게 하지만, 나는 안다. 그게 형식적인 인사치레라는 것을. 내가 노래 부르고 나면 분위기는 항상 썰렁하게 가라앉곤 했다. 내가 부르는 노래는 대부분이 축 쳐지는 분위기의 잔잔한 노래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래는 원하는 사람들만 부르라고 했지 않냐고 속으로 외쳐보지만 이상하게도 다음 순서가 되면 또 노래를 시켰다. 참 곤욕스러운 시간들이 이어지곤 했다. 나중에 속으로 욕까지 터져 나온다. 

'제발 니들끼리 부르란 말이야. 부르고 싶은 사람들끼리 열심히 부르면 되지 왜 싫다는 사람에게까지 시키냐고... 씨바...'



그래도 가끔 노래를 부르고 싶은 순간이 있긴 하다, 다만, 혼자서 조용히...


그런 내게도 가끔 혼자서 멋들어지게 부르고 싶은 노래들의 유혹이 있긴 하다. 여러 사람 앞에서 말고 내 혼자서 조용히 부르고 싶은 노래. 사실 노래방에서 어쩔 수 없이 노래를 불러야 할 때 내가 선택하는 곡들은 대부분 김현식의 노래들이다. 김현식의 노래들은 내 취향에도 잘 맞아 감정이입도 쉽고, 더 중요한 이유는 워낙 귀에 닳도록 들어왔던 노래들이어서 그 노래의 느낌을 너무나 잘 안다는 것이다. 느낌을 잘 알면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해도 주위 사람들이 대강 들을 만은 하다. 


그런데, 감정이입이 잘 되어서 참 잘 부를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불러보면 힘든 노래들이 있다. 내겐 김광석의 노래들이 대부분 그런 노래들이다. 음이 대체로 높은 편이어서 낮은음이 익숙한 내가 부르면 느낌이 잘 살지 않는 곡이다. 또 다른 이유로 막상 불러보면 힘들었던 노래 중의 하나가 김성호의 '회상'이다. 가끔 이 노래의 멜로디와 가사가 머릿속에서 떠오르다 못해 입으로까지 전달이 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왜 이 노래를 부르고 싶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아마도 예전에 긴 연애를 하던 시절에 힘들었던 짧은 순간이 있었는데 그 기억 때문인 것 같다. 가끔 그 기억이 나곤 한다. 그래서 감정이입이 잘 되는데, 막상 노래를 부르면 생각보다 잘 부르기가 쉽지 않다. 내 성격이 경쾌하고 날렵한 느낌에 둔감한 탓이다. 감정이입이 잘 되는 것은 힘들었던 그 순간에 내가 가졌던 마음이 이 노래에서 이야기하는 가사처럼 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던 기억 때문이다. 그 기억은 평생 잊히지 않을 것처럼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때를 잘못 넘겼으면 아마 나도 이 노래 가사를 평생 읊조리면서 눈물을 흘리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 시절을 잘 넘겼던 것 같다. 지금이 너무 좋아서인가, 이 노래의 가사처럼 되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하면 아직도 아찔한 느낌이다. 




어느 날 TV의 다큐멘터리에서 김성호의 '회상'을 다시 접했다. 사실 내겐 얼굴 없는 가수였던 김성호의 모습을 보면서 약간은 의외라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일하던 공기업의 사무실에서 가끔 볼 수 있을 법한 스타일의 중년이 된 모습을 보면서, 약간 혼란을 느꼈다. 그동안 목소리로만 상상하던 얼굴과는 다른 이미지였고, 작곡가로서의 그를 상상하면 나름대로 매칭이 되는 듯 하지만 대학 시절 밴드를 했던 이의 느낌은 남아 있지를 않다. 아마도 중년의 시절을 차분하게 보내면서 이렇게 점잖은 어른의 모습이 얼굴에 굳어지지 않았을까 그런 추측을 혼자서 해본다.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상상했던 이미지와는 다르지만 참 편안한 얼굴이어서 좋다. 만약 회사 사무실에서 만났다면 예전에 내가 좋아하던 점잖고 차분하게,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스타일로 일을 하면서 주위 사람들을 편안하게 대해주던 선비형의 상사 중의 한 분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되는 스타일이다. 



바람이 몹시 불던 날이었지
그녀는 조그만 손을 흔들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나의 눈을 보았지 후후
하지만 붙잡을 수는 없었어
지금은 후회를 하고 있지만
멀어져 가는 뒷모습 보면서
두려움도 느꼈지 후후
나는 가슴 아팠어

때로는 눈물도 흘렸지
이제는 혼자라고 느낄 때
보고 싶은 마음 한이 없지만
찢어진 사진 한 장 남질 않았네
그녀는 울면서 갔지만
내 맘도 편하지는 않았어
그때는 너무나 어렸었기에
그녀의 소중함을 알지 못했네

그렇게 나쁘진 않았어
그녀와 함께 했던 시간들은
한두 번 원망도 했었지만
좋은 사람이었어 후후
하지만 꼭 그렇진 않아
너무 내 맘을 아프게 했지
서로 말없이 걷기도 했지만
좋은 기억이었어 후후
너무 아쉬웠었어


가슴 아픈 가사다. 지금은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분이 어떻게 저런 가사를 생각하는 시절을 보냈을까 하는 상상을 혼자 웃으면서 해보기도 한다. 아마도 그런 시절이 있었을 수도, 혹은 그런 상상들을 하는 날들을 보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가사처럼 이렇게 되면 엄청나게 마음도 찢어질 것 같았다. 

나는 어려운 순간을 잘 넘겼지만, 다른 이들도 절대로 저렇게 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김성호의 회상 (1989, 1집)  from KBS 전주 '백투 더뮤직'
김성호의 회상(1989) from KBS '콘서트 7080' (2007.11.10)
배철수와 김성호의 인터뷰 from KBS '콘서트 7080' (2007.11.10)



김성호의 '당신은 천사와 커피를 마셔본 적이 있습니까' (1994, 3집) from KBS '콘서트 7080' (2007.11.10)


김성호의 '웃는 여잔 다 이뻐' (1989, 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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