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nk Floyd의 The Great Gig In The Sky
대학에 들어가서 교내방송국의 수습 PD로 교육을 받던 기간은 참 호된 훈련의 기간이었다. 육체적인 부분만 제외한다면 거의 군대 시절의 군기 주입 방식으로 도제 교육을 시키던 것이 그 교육의 실체였고, 그 이름조차도 '정신교육'이었다. 지금의 세상을 살아가는 시각으로 본다면 말도 안 되는 교육을, 그것도 대학의 가치를 선도한다는 대학방송국에서 행한 군대식의 군기교육을 386 세대인 우리들은 어쩌면 저항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였는 지도 모른다. 저항 없이 받아들인다 해도 그 시기는 참 고달팠다. 새벽에 일찍 집에서 나와서 학교로 향했던 어느 날엔가는 아침식사를 교내식당에서 할 수 있는 약간의 시간이 다행스럽게도 생겨서 식판을 받아 들고 첫 술을 뜨려던 순간, 콧날이 찡해오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아,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지...'
아침의 식당이 붐비지만 않았다면 자칫 내 눈에서 눈물을 떨굴 뻔했던 순간이었다. 찡한 콧날의 느낌이 눈물샘을 자극하려는 것을 애써 참으면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을 삼켰다.
그 고달팠던 한 학기 동안의 수습 시절을 마감하면서 처음 맞는 여름방학에는 창작 작품을 만들어 평가를 받아야 했다. 처음으로 방송 작품을 만든다는 것도 고역이었지만(물론 나는 그나마 고등학교 방송제의 경험이 있어서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다른 동기들에게는 쉽지 않게 넘겨야 할 첫 관문이었다. 물론 이 시기를 못 견디고 그만두는 경우도 있었다.), 이 관문을 통과하면 수습 시절의 피곤한 나날들을 마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내겐 고등학교 시절의 방송 프로그램 제작 경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대학에서의 첫 작품을 제작하려니 그 중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내가 만든 작품은 새내기의 눈으로 맞은, 대학에서 새로이 느낀 생경하고 자유로운 문화적 환경을 취재하는 것으로 소재를 잡았다. 덕분에 주변의 몇 개 대학을 다니면서 새내기가 생각하는 대학의 낭만스러운 문화들과 그들의 열정을 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모 대학의 지하 카페에서 느낀 문화적인 색깔과 묘한 정서를 표현하는 부분에서 내가 사용한 백그라운드 음악으로 인해 작품을 평가하는 시간에 선배들에게 쓴소리를 몇 마디 들어야 했다.
그때 사용해서 엄청난 지적의 대상이 되었던 음악이 Pink Floyd의 The Great Gig In The Sky였다. 인트로의 건반이 풍기는 그 묘한 분위기에 이어 절규하는 듯한 여성 보컬의 스캣을 들으면서 선배들이 입을 쩍 벌렸다. 작품 청취가 끝나자마자 선배들은 저마다 준비한 일갈을 일제히 터뜨렸다.
"니, 미친 거 아냐? 이걸 어디 BGM으로 쓸 생각을 하냐?"
"다 좋은데, 이 음악은 너무 정신분열증적이다. 방송 듣다가 사람들이 뒤집어지겠다."
"원래 이렇게 강한 음악은 BGM(백그라운드 뮤직)으로 쓰면 안 된다는 것도 몰랐냐? 그건 기본 아니야?"
아니, 대학 방송에서는 실험정신을 추구한다며???
사실 나도 긴가민가하면서도 이 상황을 잘 표현하는 음악은 이게 딱이겠다 싶어서 고심 끝에 채택을 했는데, '아니 선배님 이건 좀 너무 심한 것 아닌가요? 우리는 실험정신을 추구하는 대학방송인 아닌가요?' 이런 말들이 목구멍으로 올라왔지만 그 심했던 군기교육의 분위기 속에서 끝내 입 밖으로 내밀지는 못했던 말들.
하여튼 정상적인 상황 하에서는 듣기가 좀 그런 음악임엔 틀림없다. 나도 주위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는 편해지기 힘들 것 같아서 주변에 다른 사람이 있을 때는 거의 재생을 하지 않는 걸 보면, 나도 그건 인정...
'하지만, 이 멋진 음악을 정신분열증적이라뇨?'
'세상사를 하소연하는 처절한 절규가 얼마나 카리스마 넘칩니까요? 저는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걸요.'
지금도 가슴이 답답하고 음악으로부터의 공감을 느끼고 싶을 때는 가끔 이 곡을 듣는다. 절규하는 듯한 느낌, 가슴속을 털어내고픈 절절한 외침 같은 것이 느껴지면 나도 위안을 받는다. 가끔은 에드바르트 뭉크의 대표작인 '절규'를 연상하기도 한다. 그러면,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고 답답한 가슴이 조금은 풀어진다.
이 곡은 Pink Floyd가 1973년에 발매한 명작 앨범 The Dark Side Of The Moon'에 수록한 곡이다. 이 앨범에는 다른 유명하고 멋진 곡들이 많아서 The Wall 앨범과 함께 그들의 명작이기도 하면서 가장 대중적으로 유명한 앨범이다. 이 앨범을 꺼내서 다른 곡을 들을 때에도 이 곡은 꼭 놓치지 않고 챙겨 듣는 편이다.
그러다 그들의 1988년 라이브를 담은 영상 'Delicate Sound of Thunder'를 보게 되었다. 영상으로 공개된 핑크 플로이드의 공연 영상 중에서는 한동안은 가장 평이 좋았던 작품이었다. 물론 그들의 공연 영상은 이후에도 멋진 것들이 많이 나와서 지금은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다. 그들의 공연은 항상 뛰어난 무대 연출을 보여주고 있고, 공연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연주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공연 실황에는 'The Great Gig In The Sky'의 연주가 워낙 탄탄해서 다른 어떤 곡보다도 이 곡에서 여러 번 반복해서 보게 된다.
예전에는 VHS로 이 공연 실황의 영상을 가지고 있어서 그걸 즐겨 봤었다. VHS급 영상의 화질이라는 것이 사실 그것밖에 없을 때는 그것도 감지덕지였지만 소리든 영상이든 간에 한번 업그레이드된 감각은 무섭게 그것에 적응을 해버린다. DVD가 한창 유행이던 시기에서 블루레이가 유행하던 시기를 거치는 동안 왜 이 영상은 DVD나 블루레이로는 발매가 되지 않을까 궁금해하면서 수시로 AMAZON 같은 외국의 음반 사이트들을 검색하곤 했었다. 그러다 어느 날엔가 드디어 발견했다, DVD를… 야호! 만세를 부르면서 장바구니에 넣고 몇 주를 기다려 해외우편물로 온 DVD를 즐겁게 받아 들고 시청을 했다. 아뿔싸, DVD는 허울만 좋았고, 내용은 VHS의 포장 바꾸기에 불과했다. 보존력 내지는 편의성만 높아졌을 뿐 화질은 그냥 VHS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었다. VHS를 코딩만 해서 DVD로 제작한 것임에 틀림없다.
최근에 유튜브에 화질이 더 좋은 영상이 올라왔다. 이런 아이러니라니… 돈 주고 사는 제품보다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의 화질이 더 좋은 반전이 생겨나는 세상이 되었다. 어쨌든 'Delicate Sonf Od Thunder'의 공연 실황도 이젠 깨끗한 화질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 기분이 남다르다.
베르디의 레퀴엠처럼 클래식 음악으로 표현되는 장송곡이 주는 장엄함과 자유분방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Rock적인 장송곡의 느낌은 형식은 다르지만 우리가 기대하는 바는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이 곡이 장송곡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인생, 결국은 피할 수 없는 죽음으로 이어지는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결국에 그려진 것은 아마도 처음의 의도와는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진행이 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완성된 작품에서 그려진 것은 절규를 하는 삶의 치열한 모습인 듯도 하다가, 죽음에 대한 비장한 느낌을 극도의 찬사와 같은 감정으로 공감을 하기 위한 절규로 느껴지게도 한다.
곡의 이해를 위해서 도입부에 나오는 대사를 들어보자.
And I am not frightened of dying
그래, 난 죽어가는 것이 두렵지 않다.
Any time will do, I don't mind
언제라도 죽을 수 있을 것이야, 꺼리지 않는다.
Why should I be frightened of dying?
왜 내가 죽음이라는 것에 겁에 질려야 하는가?
There's no reason for it, you've gotta go sometime
그럴 이유가 없다. 누구든 언젠가 떠나야 한다.
never said I was afraid of dying
단언컨대 난 죽음을 두려워한 적이 없었다."
이 곡의 앨범 제작에 참여한 여성 보컬리스트는 Clare H. Torry이다. 그녀는 1947년생의 영국 여성 보컬리스트이고, 즉흥적이고 가사가 없는 말하자면 스캣 스타일의 곡을 불렀던 적이 있다. 처음 이 곡은 키보드주자 Rick Wright가 건반 코드 전개를 통해서 선을 보였고 그게 마음에 든 멤버들이 앨범 수록곡으로 발전시켜 보자고 제의해서 시작이 되었다. 그다음엔 가사가 없는 스캣송으로 해볼 생각으로 여성의 목소리를 사용하기로 했고, Alan Parsons가 Clare Torry를 추천했다. 그녀가 앨범 녹음에 참여하게 되면서 듣게 된 설명은 가사가 없다는 것, 죽음에 관한 노래라는 것 밖이었다.
사실 그녀는 이 곡을 녹음하면서 가사가 없으니 자신의 방식대로 Oh, Baby 같은 추임새를 넣으려고 했지만 멤버들이 음으로만 목소리 연주를 해줄 것을 요청했고 그 요청에 부응해서 녹음이 진행이 되었다. 멤버들의 의도는 여성 보컬 파트를 하나의 악기음처럼 해보려는 실험적인 의도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해서 한 차례 녹음을 한 후에 멤버들은 그녀의 목소리에 만족을 했지만 당장은 그에 대한 표현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이 원테이크로 녹음한 목소리 연주가 채택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심증을 받으면서 스튜디오를 떠났고, 후에 앨범이 발매되고 난 후에야 그녀는 자신이 녹음한 목소리가 이 곡에 사용되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가 받은 세션료는 얼마 되지 않았다. 후에 그녀는 그들과 음반사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해서 자신의 공동 작사에 대한 로열티를 요구했고 그에 대한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 소송을 통한 합의의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이후 발매된 이 앨범에는 그녀가 공동 작사가임을 밝히고 있다.
Clare Torry가 참여한 1990년의 Knebworth Live
이름을 알 수 없는 여성의 커버 공연
Alan Parsons가 들려주는 이 곡의 원본 테이프
앨범에 수록된 버전
Sam Brown이 백보컬로 참여해 이 곡을 부르는 1994년의 'Pulse' Live
세 명의 여성 백보컬이 조화를 이루는 1988년의 'Delicate Sound Of Tunder' Live
이 공연에서는 'The Great Gig In The Sky'를 세 명의 여성 백보컬리스트의 목소리로 공연하는데 영상을 통해 공연에 빠져들게 하는 흡인력이 느껴질 만큼 느낌이 강렬하다.
- 백보컬리스트(노래하는 순서대로) : Rachel Fury, Durga McBroom, Margaret Taylor
두 명의 여성 백보컬이 부르는 1989년의 베니스 Live 버전
보너스 : 1988년 'Delicate Sound Of Tunder' Live 전체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