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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싹지기 May 27. 2024

조용한 전원의 분위기를 느끼던 어느 날의 출근길에서

Beethoven의 교향곡 6번 'Pastorale(전원)'

조용한 전원의 풍경을 보면 떠오르는 멜로디


요즘은 모임이 있거나 자재를 사러 가는, 그런 특별한 일이 없으면 시내 쪽으로 나갈 일이 없다. 오늘은 정기헌혈을 하는 날이어서 오전 시간을 경주 구도심에 생긴 '헌혈의 집'에서 보냈다. 거의 2주 간격으로 혈소판혈장을 함께 뽑는 성분헌혈을 계속하고 있는데, 성분헌혈에 걸리는 시간은 거의 한 시간이 넘는다. 혈액이 잘 나오는 편이 아닌 나인지라, 한 시간 내내 열심히 주먹을 쥐었다 펴는 동작을 반복해야 한다. 그러면 헌혈을 마치는 순간에는 손이 뻐근하다. 오늘로 79번째, 내 삶의 시간에 비해서는 아직 많이 적은 느낌이다. 그나마도 내달부터는 올해의 건강검진도 하고, 오랫동안 미루어온 치아 치료도 해야 되는 탓에 두어 달 쉬어 가야 할 것 같다. 이제 버릇이 되다시피 한 헌혈이다 보니 잠시 쉬어야 한다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을 안고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첨성대 옆으로 펼쳐진 경치를 눈으로 훑으면서 돌아왔다. 6월을 며칠 안 남겨두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5월인데 날이 제법 따끈하다. 바람이라도 안 불어주고 있으면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흐를 정도의 기온이다. 왼쪽으로 멀리 보이는 분황사의 넓은 폐사지를 잠시 보다가 예전의 어느 날 아침의 출근 풍경을 떠올렸다. 그때는 이 정도로 덥지는 않았다는 생각도 문득 스쳐 지나간다.


돌아와서 그때의 사진을 찾아보니 2013년이었다. 벌써 11년이 훌쩍 지났는데, 그때의 나는 양남의 바닷가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을 하던 때였다. 저녁시간에 회식이라도 하든지 아니면 업무상의 술자리를 하게 되면 차를 두고 버스를 타고 다니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분황사 근처 유채밭의 아침 풍경 (2013. 4. 19.)


그날 아침의 출근길, 분황사 앞의 버스정류장에서 양남으로 가는 150번 버스를 기다리다가 문득 분황사 앞으로 넓게 펼쳐진 유채밭과 황룡사지,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남산이 만들어내는 풍경에 빠져 들었다. 이른 아침의 경주는 너무나 평화롭고 안온하다. 전날 마신 술의 여파로 몸은 살짝 가라앉은 느낌이지만, 이 작은 풍경이 삶의 또 하나의 기쁨이 되는 순간이다. 출근을 잠시 미루고 이곳을 좀 거닐다가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건 먼 훗날의 일로 미룬다. 


갑자기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이 듣고 싶어졌다. 오늘 하루 별일 없이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전원교향곡이라도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멜로디를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버스에 몸을 실었다. 출근시간에 양남으로 가는 버스는 항상 만원이다. 장거리를 가는 버스이니 서서 가는 이는 잠깐 있긴 하지만, 그래도 먼 길을 가는 이는 거의 좌석을 겨우 채울 정도로 딱 맞아진다. 오늘 하루도 전원교향곡이 안겨주는 그 평화로움처럼 그냥 단조롭게 지나갔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던 시절의 기억이 새롭다. 그렇게 바라던 삶을 지금 살고 있는데, 이번에는 너무 단조로워서 가끔은 아쉬움을 느낀다. 그래도 비교한다면 아직은 단조로운 삶이 더 평안하게 느껴진다. 


베토벤 자신이 직접 이름을 붙인 묘사적인 음악


베토벤은 교향곡 제6번 F장조 작품 68(흔히, 전원교향곡이라고 한다.)을 38살에 작곡했다. 귓병을 앓으면서 가지게 된 정신적인 고통으로 사람들과의 만남이 별로 반갑지 않던 시절이다. 사람과 만나지 않으면 자연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간다. 그에 대한 느낌을 담은 것이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이다. 


'전원'이라는 표제는 베토벤 자신이 직접 붙였는데, 이 곡은 전원에 대한 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표현이라고 말한다. 표제를 직접 붙일 만큼 묘사적인 음악이어서 후에 낭판주의 작곡가들의 표제음악에 영향을 미쳤다. 악장 구성은 4악장의 기본을 넘어서서 폭풍우를 묘사하는 악장 하나를 마지막 악장 전에 넣어서 모두 5개의 악장으로 만들었다. 아울러, 3, 4, 5악장은 쉬지 않고 연주를 한다. 


1악장 : Allegro ma non troppo
Awakening of joyful feelings upon arrival in the country / 전원에 도착했을 때의 상쾌한 기분
2악장 : Andante molto mosso
Scene by the brook / 시냇가의 정경
3악장 : Allegro
Merry gathering of country folk / 시골 사람의 즐거운 모임
4악장 : Allegro
Thunderstrom / 뇌우
5악장 : Allegretto
Shepherd's song - Happy and thankful feeling after the storm / 목동의 노래 - 폭풍우가 지난 뒤의 감사와 기쁨




칼 뵘이 지휘하던 비엔나필의 연주를 담은 전원교향악의 명반



함께 들어봅시다.


Karl Bohm & Wiener Philharmoniker (1971. 5.)
Leonard Bernstein & Vienna Philharmonic (1976.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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