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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싹지기 Jun 17. 2024

창가, 아득한 세상과의 경계

City의 Am Fenster

외로운 순간에 창가에 서게 된다


회사에 다니던 시절, 답답하면 창가에 서서 바깥을 바라보던 버릇이 있었다. 

회사 생활의 대부분을 보내었던 양남의 창가에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어느 해의 사무실에서는 바다가 보이기도 했지만, 어느 해의 사무실에서는 그저 오랜 시간을 어린 묘목부터 보아왔던 나무 몇 그루가 성장하는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커다란 본사 건물에 와서 근무를 하던 시절에는 창가에 대한 그리움이 더 깊어졌다. 예전에 차장이라는 직책으로 서울 강남의 본사 건물에 근무하던 시절에는 창가로의 접근이 쉽지 않았다. 본사 건물의 창가는 부서장들의 책상이 대부분 창을 등지고 앉아 있어서 부서장 이상 간부들의 전유물이었다. 회사 생활을 오래 했어도 여전히 낯가림이 심했던 나는 그 당시의 부서장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친숙한 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낮 시간 동안에는 그의 책상 뒤로 갈 일이 별로 없었다. 물론 그의 창 뒤에는 삭막한 강남의 빌딩들 밖에 보일질 않았다. 


내가 그나마 그 창가에 접근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모두가 퇴근하고 혼자서 야근을 할 때쯤이지만 그렇다고 그 시간에 창가에 갈 일은 더더욱 없었다. 야근을 하느라 환하게 밝혀진 사무실에서 컴컴한 바깥 풍경을 보면 대부분의 도시에서 그렇듯 빌딩과 차량의 불빛들 밖에 보이질 않는다. 그것이 멋진 야경이든 아니든 내가 창가에서 바라던 풍경은 어둠 속에서 불빛만 반짝이던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언젠간 한번 호기심에 밤늦게 창가에 가까이 가보고 그 뒤로는 창으로 보이는 야경을 볼 일은 없었다. 서울의 창가는 너무 삭막하다.


내가 한참 뒤에 본사의 부서장이 되어서 창가의 자리를 차지하던 시절은 본사가 시골로 이전해서 창밖으로는 산들의 초록 실루엣들이 보였다. 그러니 창가를 쳐다보는 일이 많아졌다. 시간이 많아져서 그런 건 아니다. 외로움 때문일까... 부서장의 자리가 이렇게 외롭다고 느껴진 것은 그 시절에 처음 느낀 감정이었다. 오죽하면 나는 가끔 농담을 빌어서 부서원들에게 자주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 좌석 배치는 도대체 누가 한 걸까? 부장은 왜 창가에 혼자 섬처럼 처박아놓고 자네들끼리만 모여서 오손도손 일을 하도록 만든 걸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좌석 배치를 한 걸까?'


내가 창가에 서서 창밖을 자주 쳐다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외로움 때문이었다. 모두 다 일에 열중하고, 나도 내 일에 열중을 하는 시간 중에도 가끔 책상 너머로 직원들이 자기네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을 멀리서 듣다 보면 속으로 괜히 심술이 일곤 했다. '내 자리만 섬처럼 띄워서 멀리 보내놓고 지네들끼리 재미있네...'


물론 창밖을 자주 쳐다보는 다른 이유도 있다. 그 시절의 본사 사무실 창밖은 조금만 멀리 보면 온통 초록색이다. 노안이 오기 시작한 나이에 접어들면 PC 화면을 오래 쳐다보면 눈이 멍해진다. 피로감이 자주 찾아온다. 그래서 억지로 눈을 쉬어주기 위해서라도 초록색이 있는 창밖을 자주 쳐다보려고 노력했다. 물론 그 노력조차도 바쁜 일정 때문에 잊어버리게 되는 경우가 더 많았지만...


창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순간의 멜로디


본사 사무실의 창은 참 크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외벽 자체가 창으로 되어 있는 건물이다. 그래서 창밖이 훤히 보인다. 가끔은 저 창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사무실 건물이 클수록 누군가에게는 웅장해 보이기도 하겠지만 그런 사무실에는 정작 갈 곳도, 쉴 곳도 마땅치 않다. 휴게실이 있어도 그건 그림의 떡이다. 바깥과 경계가 완전하게 구분되는 하나의 창살 없는 감옥 같은 곳이기도 하다. 적어도 자유롭고 싶은 마음에는 그런 생각이 가득하게 만드는 곳이다. 


창틀에 차 한 잔 올려놓는다는 것은 그 경계를 허물고 싶은 욕망의 표현이기도 하다. 핑계는 PC에 지친 눈의 피로를 잠시 푼다는 것이지만 그렇게라도 마음의 휴식을 얻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때 자주 머리에 떠오르던 멜로디가 있었다. 그게 바로 City의 Am Fenster이다. 


마치 허공에 붕 떠 있는 듯 어쿠스틱 기타 소리가 머릿속에서 투명하게 울린다. 그 울림 위에 애잔한 바이올린이 더해진다. 아, 바깥세상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처럼 투명한 기타의 울림 사이로 파고드는 바이올린의 느린 선율까지 떠올리면 마음엔 회색빛이 더해진다. 마치 꿈속을 헤매는 듯이 바이올린은 몽환적으로 변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다시 현실로 다가온다. 창 밖을 가리는 블라인드를 여는 소리, 아마도 커튼을 젖히는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세상으로 향한 풍경을 가리는 그 무언가를 열어젖힌다. 


그리고, 노래가 이어진다. 


Am Fenster (창가에서)


Einmal wissen dieses bleibt für immer

ist nicht Rausch der schon die Nacht verklagt

ist nicht Farbenschmelz noch Kerzenschimmer

Von dem Grau des Morgens längst verjagt

이것이 영원히 남아있을 거라는 걸 한번 아는 일은

이미 밤을 잊게 만든 마약과 같은 것도 아니네

그건 색채의 (아름다운) 혼합과 같은 것도 아니며

새벽의 어스름에 오래전에 쫓겨난 흔들리는 촛불도 아니네


Einmal fassen tief im Blute fühlen

Dies ist mein und es ist nur durch Dich

Nicht die Stirne mehr am Fenster kühlenDran ein Nebel schwer vorüber strich

핏속 깊숙이 느껴지는 것을 한번 만져보는 일

이건 나의 것 그리고 단지 너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일

그건 이마를 창에 대고 식히는 느낌도 아니네

안개가 무겁게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


Einmal fassen tief im Blute fühlen

Dies ist mein und es ist nur durch Dich

Klagt ein Vogel ach auch mein Gefieder

Näßt der Regen flieg ich durch die Welt

핏속 깊숙이 느껴지는 것을 한번 만져보는 일

이건 나의 것 그리고 단지 너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일. 

새가 탄식하고 나의 날개도 탄식하네

이슬비가 내리고 나는 세상을 날아가네




독일의 프로그레시브 록을 대표하는 City의 Am Fenster


City는 독일의 동베를린에서 1972년에서 결성된 록 밴드이다. 그들의 대표곡은 바로 이 곡, Am Fenster이다. Am Fenster는 1978년 그들의 데뷔 앨범에 수록되었고, 2000년에 21세기 독일을 대표하는 록음악으로 선정되기도 할 정도로 큰 히트를 쳤다. 예전에 김미숙 씨가 FM의 오전 방송을 진행할 때에 자주 선곡이 되던 곡이기도 하다. 곡은 17분 정도로 길게 진행이 되지만 Traum - Tagtraum - Am Fenster의 3부작으로 구성이 되어 있어서 17분이 금방 지나가 버린다. 가끔은 이 곡이 30분 이상의 더 큰 곡으로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들게 할 정도이다.


전곡 듣기

Original Version 1978


여러 가지 라이브 버전을 듣기

라이브 버전은 길이를 달리하면서 최근까지 꾸준히 연주되고 있다.


Live 1978


Berlin, Waldbühne 1996


Live 2014


Live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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