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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soh Dec 25. 2020

도덕과 가치를 고민하는 정치

10대를 위한 정의란 무엇인가_마이클 샌델



작년에 마이클 센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호기롭게 들고 읽어보려고 했지만 절반 정도 읽다가 덮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정의에 대해서 자유롭게 풀어놓는 형식은 좋았지만 그때 당시 제가 읽기에는 어려웠던 책이었던 거죠. 배경지식이 부족할 땐 잘못 고른 책 한 권이 읽기에 좌절감을 맛보게도 하는 것 같습니다. 고이 내려놓고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어제 도착한 선물을 계기로 <10대를 위한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어보았습니다. 책은 아이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들어졌네요. 철학자에 대한 호기심을 드러낼만한 구성으로 잘 옮겨진 것 같습니다. 삽화도 들어가 있고, 성인 책에서 굵직한 부분을 잘 건져올려 엮어졌습니다. 큰 그림은 성인의 책과 흡사하나 디테일한 부분에선 생략된 부분이 있었지만, 초등 고학년에겐 흥미 유발, 질문 폭격이 예상이 되는 책이기도 하네요. 이 책의 제일 첫 장에서 마이클 센델 교수가 말합니다.


"생각을 일깨우고 끊임없이 괴롭힐 것이다."라고요.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께서는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시나요?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가면 책을 보는 학생보다 천장을 쳐다보고 있는 학생들이 많다고 해요. 책을 읽다가 생각할 거리가 있으면 고개를 뒤로 넘겨서 천장을 보며 생각을 하는 거죠.


저는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읽는 도중에 물음표가 생기면 그 자리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왜 멈추었는지 생각을 합니다. 생각했던 내용은 글로 남겨서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려고 노력하고, 의문이 들었던 부분은 남편에게 질문해서 그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남편 생각도 들어봅니다. 그렇다 보니 책 한 권을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에요.


책의 시작은 제레미 벤담의 공리주의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공리주의는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는 정치철학이죠.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다수가 행복하기 위해 소수의 의견이 묵살되는 것은 괜찮은 것일까요? 공리주의의 또 다른 학자인 존 스튜어트 밀은 제레미 벤담과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합니다. '공리주의에서도 고급 즐거움과 저급 즐거움을 구별할 수 있고, 가치의 크고 작음, 행복의 질은 따질 수 있는 것이다.'라고요. 그래서 밀을 '질적 공리주의자'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밀은 비록 고생을 하더라도 정신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의 행복이, 물질적인 것에만 빠져 기쁨을 누리는 사람의 행복보다 가치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제레미 벤담과 존 스튜어트 밀은 같은 공리주의 자이지만, 벤담은 한 가지 기준만 제시한 반면, 밀은 여러 가지 가치 있는 것들을 권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행복이 더 커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이 가치 있는 일을 판단할 때 개인의 권리를 중시했다는 점인데요. 정의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개인의 권리는 수많은 논쟁거리를 가져왔고, 이 부분은 미국의 자유지상주의 정치철학자 로버트 노직의 얘기와 연결되며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또 다른 생각으로 이끌고 갑니다.





"어떤 행동이 도덕적이냐 하는 것은 그 결과가 아니라 동기에 있어요. 중요한 것은 왜 그것을 했느냐 하는 동기예요. 단지 의무에 의한 행동이어야 해요. 그러니까 나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한 것을 얻기 위해서 행동한다면 그것은 도덕적으로 부족한 행동이에요. 도덕적으로 선하려면 도덕 그 자체를 위해서 행동해야 해요.(p.106)


칸트는 도덕은 어떤 행동을 시작한 동기에 달렸다고 보고 있어요. 결과가 아닌 오로지 동기만 따지는 거예요. 만약 어떤 이익이나 바람 때문에 행동했다면 도덕적 가치가 있다고 보지 않았으니까요.(p.108)





책을 읽는 동안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도덕이었습니다. 칸트가 주장하는 도덕은 잘못했을 때 시인했다고 해서 모두 도덕적인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칸트가 주장하는 도덕은 공교육에서 배웠던 '신호등을 잘 지키는 아이'보다 높은 수준의 동기에 달렸다고 하는데요. 처음부터 어떤 마음으로 시작했는지에 따라 도덕적 가치의 유무를 결정지었다고 합니다.


책 속에서 소개된 장면은 미국에서 열렸던 전국 철자 알아맞히기 대회 우승자가 '저는 철자를 잘못 말했어요. 심판이 잘못 듣고 맞았다고 하신 거예요. 저는 1등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었는데요. 그때 당시 신문에까지 보도가 되며 이 소년의 정직하고 용기 있는 행동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칸트의 주장으로 보자면 이 소년은 절대로 도덕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거죠.


이 소년은 '추접한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아서' 실수를 고백했는데요. 칸트의 주장대로라면 도덕적인 행동이 아니었던 겁니다.


"사실을 고백한 이유가 단지 죄의식을 피하기 위해서였다면, 실수가 발각되었을 때 비난받는 것이 무서워서 그랬다면 그 행동은 도덕적이라고 할 수 없어요. 하지만 단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이 옳은 행동이기 때문에 진실을 말했다면, 도덕적으로 가치 있는 행동이 되지요. 중요한 것은 동기예요. 그것도 아주 순수한 의무를 따른 동기 말이에요."(p.107)


칸트의 주장을 보며 제가 했던 행동들 중에 순수한 의무를 따른 동기가 단 한 번이라도 있었는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부끄러운 순간들이 떠올라서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이처럼 사회적 현상들을 토대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토론이 이어집니다. 결론이 있을까 싶었는데, 마이클 센델 교수는 친절한 분이십니다. 마무리는 아래 문장으로 정리했습니다.


도덕과 가치를 고민하는 정치로 이끌어야 해요. 흔히 법과 정치는 도덕적, 종교적 논쟁에 휘말리지 말아야 한다고 하지만, 법과 정치가 도덕적, 종교적 중립을 지키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에요. 따라서 서로 다른 입장을 가졌더라도 경청하고 상호 존중하여 합의에 다다르는 정치를 만들어야 해요.


정치는 도덕적, 종교적 신념을 피하기보다는 때로는 그것에 도전하고 경쟁하면서, 이해하고 학습하며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억하세요! 도덕과 가치를 고민하는 정치야말로 시민들에게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나아가는 데 희망을 주는 일이라는 사실을요. (p.213)


도덕과 가치에 대해 전적으로 고민하기 위해 칸트의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책이 정말 어렵다는 풍문이 자자해서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지만 보다 정의로운 시민이 되기 위해서 읽어보려고 합니다.


수업 시간에 사회 현상을 두고 수많은 철학자들과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이 훗날 사회를 이끌고 갈 때 성심으로 인간에 대한 고민을 하며 발전시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짐작해봅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무엇보다 우리나라 공교육이 현재의 주입식 교육에서 제발 좀 벗어나서 마이클 센델 교수의 강의처럼 토론과 경험을 하며 배우고 익힐 수 있는 방식으로 변경이 되면 좋겠다 생각해 봅니다.


'엄마, 우리 학교는 이렇게 안 하는데 좋겠다. 우리도 이렇게 공부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게 말이야.'


http://aladin.kr/p/nbKff


2010년 이후, 한국에 '정의'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27세에 최연소 하버드대학교 교수가 되었고 29세에 자유주의 이론의 대가인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1982년)를 발표하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1980년부터 30년간 하버드대학교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그의 수업은 현재까지 20여 년 동안 학생들 사이에서 최고의 명강의로 손꼽힌다. 존 롤스 이후 정의 분야의 세계적 학자로 인정받는 그는 명실공히 이 시대의 최고 석학이자 철학계의 록스타이다.

저서로는 <정의의 한계>, <민주주의의 불만>, <정치와 도덕을 말하다>, <정의란 무엇인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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