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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soh Feb 07. 2020

소박한 집밥

헬린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_헬렌 니어링, 공경희옮김, 디자인하우스



이 책은 육신에 영양을 공급하기 위해 식사할 뿐 미식에 빠지지 않는 검소하고 절제하는 사람들을 위해 썼다.(p.27)


Tv프로그램의 먹방 프로그램은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르다. 시청 효과만으로 이미 배가 불러오기 때문에 굳이 밥을 지어야겠다는 욕구까진 일으키지 못한다. 밥상 차림의 권태기는 어쩌면 이렇게 자주도 출몰하는지 이번에도 어김없이 찾아든 그 녀석을 몰아내기 위한 방편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하루 삼시세끼 다 차려먹지는 못하더라도 하루 한 끼의 상차림에는 정성을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불행하게도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오히려 식욕을 잃어갔다. 자주 구토를 일으킬 뻔했고, 책장을 수차례 덮었으며 결국에는 육식에 대한 거부감마저 갖게 되었다.


우리는 살아 있는 조직으로 구성된, 산 음식을 먹어야 한다. 살아 있는 음식이라 할지라도 몸에 들어간 음식은 그 자체로 생명을 줄 수 없다. 인체와 인체의 활력이 음식에 작용해야 한다. 시체에 투입된 음식은 활력 있는 변화를 이루어내지 못한다. 음식은 시신과 함께 차츰 부패할 것이다. 음식을 흡수해서 소비시키는 것이야말로 신비한 생명력 혹은 활력이다. 죽은 세포가 살아 있는 몸에 어떻게 영양을 줄 수 있겠는가. 음식물 속의 살아 있는 조직과 인체의 조직 세포가 서로 에너지를 교환하면 건 가을 주는 힘이 생성된다.(p.54~p.55)

인간은 다른 동물이 먹는 양을 다 합한 것보다 많은 고기를 게걸스레 소비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가장 큰 파괴자이며, 필요 이상으로 남용한다. <자연사, 조르주 루이 레클레르 드 뷔퐁>(p.67)

자연은 썩은 시체가 아닌 풍부한 영양을 주는 먹을거리를 충분히 인간에게 제공해주고 있다. 썩고 있는 시체를 먹는 것은 정결한 사람이라면 혐오할 만한 불쾌한 식사법이다. 물론 오래전부터 그것이 관습으로 자리 잡아, 사람들의 배 속을 죽은 동물의 무덤으로 만드는 기괴한 짓이 몸에 배긴 했지만.

먼저 제 입을 핏덩이로 더럽히고, 제 혀를 도축된 것의 살에 닿게 하다니 대체 인간은 어떤 감정이나 마음, 이성을 가졌는지 의아하다. 움직이고, 지각하고, 목소리를 가진 것들을 죽여 그 시체 덩이를 식탁에 펼쳐놓고 그걸 맛 좋은 식사라고 말하는 인간이 아닌가? <육식에 대하여_플라타 르크>
(P.68~p.69)

책을 읽는 내내 손톱으로 칠판을 긁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잡식 주의자다. 가리는 것 없이 뭐든 잘 먹는다. 그동안 나는 내 뱃속으로 무엇을 집어넣었던 것인가. 심한 자괴감이 밀려들었다. 인간이 ‘시체를 입속으로 집어넣고 있다’는 표현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이 구절을 접한 나는 고기를 구워 놓고도 먹지를 못하고 외식을 해도 육류를 자제하니 연지와 연지 아빠의 걱정이 커져갔다.

'엄마, 음식별로 영양분이 다 다른데 고기도 좀 먹자, 응?'
'그냥 먹어. 그러다 큰일 난다.'
'미안, 미안해요. 도저히 안 넘어간다. 미안~'

거듭 사과를 하고 두 사람은 맛있게 먹기를 염원하지만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나를 보며 되려 두 사람의 식사마저 즐겁지 못하게 만들었다.  성인의 기준으로 1일 단백질 권장 섭취량은 본인의 몸무게 * 0.8g이고, 몸무게를 100kg이라고 가정했을 때 1일 권장 섭취량은 80g이다.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달걀 6개, 두부 1모 정도라고 볼 수 있다. 1일 섭취량이니 3식으로 나눠서 섭취하면 육식을 하지 않아도 필요한 양은 충분히 섭취가 가능하다. 평소와 다르게 달달한 음식이 먹고 싶다거나, 근육량이 줄고, 집중력 저하, 탈모, 손발톱이 약해졌다면 지금 내 몸에 단백질이 부족하다는 신호라고 볼 수 있다. 아닌 게 아니라 고작 며칠 단백질을 제한했더니 평소 잘 먹지 않던 단 음식이 생각나고 찾게 되었다.



흰 빵, 흰 크래커, 백설탕, 백미, 가공한 치즈 같은 죽고 변성된 음식은 피하라. “우리 문명을 파괴하는 네 가지 요소는 정제한 설탕, 정제한 밀가루, 경화유, 가솔린 매연이다.”<기초건강지식, 닥터 칼>(p.95)

오감을 채워줄 만한 사진이나 레시피는 없었지만 헬렌 니어링만의 심플한 레시피는 제법 들어있었다. 그녀의 레시피는 온통 채식과 콩류, 과일로 만들어진 것이었고, 우리 문명을 파괴하는 몇 가지 요소는 배제된 레시피였다. 일본으로 여행을 갔던 부부는 초대받은 집에서 식사 준비를 담당하는 아내분에게 식습관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된다.
 
‘주로 어떤 음식을 드세요?’
‘주로 감자와 수프를 먹어요.’

그날 이후 그들은 그 집에서 지내는 일주일 동안 매일 같은 음식을 먹었다고 한다. 초대받은 부부를 배려한 행동이었지만 일주일 내내 같은 음식을 먹었으니 얼마나 지겨웠을지 으~. 굳이 감자와 수프가 아니더라도 날 것이나, 육류가 제한된 메뉴면 충분했을 텐데 그것에 대한 앎이 부족했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니어링 부부가 까탈스러운 사람들은 아니었다. 여행을 하거나 다른 가정에 초대를 받게 되면 가능한 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위주로 찾아서 먹었다고 한다.

"나의 남편에게 죽음은 단지 성장의 마지막 단계이자, 자연적이고 유기적인 순환을 의미했다. 그는 끝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인식했고, 그날이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기를 바랐다"라고 헬렌 니어링은 남편의 죽음에 대해 말했다.”

그녀와 그녀 남편 스코트 니어링은 오직 채식만으로 100세까지 삶을 영위했다. 그녀의 남편은 서서히 음식을 줄이며 자신을 붙들고 있던 목숨과 작별을 고했다. 그녀도 그녀의 남편처럼 생을 마감하고 싶었으나, 92세 갑작스러운 차 사고로 일기를 마쳤다.

배가 고플 때만 먹어야 하고, 목이 마를 때만 마셔야 한다. 음료는 반드시 물과 허브 차, 생과일이나 야채 주스여야 한다. 오염된 강물에다 당밀로 단맛을 낸 것 같은 콜라나 설탕물로 맛을 낸 탄산음료를 마시면 안 된다. 목을 짜릿하게 태우고 취하게 하는 알코올음료를 마실 필요도 없다.
커피 또한 건강한 생활에 필요치 않은 자극적인 음료이다. 커피를 마시면 일시적으로는 기운이 날지 모르지만 이내 몸은 더욱 피곤을 느낀다. 코코아나 초콜릿 음료에는 커피와 같은 타닌과 카페인이 함유되어 있어 마찬가지로 몸에 나쁘다.(p.294)

자연에서 나고 자란 음식 외에 가공한 음식은 몸에는 해롭지만 입은 즐겁다. 알면서도 먹고 찾게 되는 것은 기왕에 먹는 음식 입이 즐거운 것으로 먹고 싶은 것이 이유일 것이다. 밥상을 준비할 때 가장 만만한 식재료는 ‘육류’이다. 육류나 생선이 밥상에 올라가야 충만한 밥상이 차려졌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다. 나물 위주의 반찬으로 상을 차리면,

‘계란 없어?’
‘김 없어?’
‘참치 통조림 없어?’
‘햄 없어?’

가능하면 두부로, 가능하면 계란으로 대체하고 싶지만 아직까지 다 밀어내진 못했다.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가공 햄이 밥상에서 사라진 지(많아야 두어 달에 한두 번) 제법 되었고 일부러 김을 찾지는 않는다. 자연에서 나고 자란 건강한 식재료가 건강한 몸과 건강한 정신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가능하면 식품첨가물이 혼합돼있는 것보다는 적은 쪽을 선택하게 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몸은 고되지만 내 손으로 직접 만들고, 적은 양념으로 맛을 낸 집밥을 선호하는 것도 같은 맥략이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입에도 대지 않던 육류를 다시 하나씩 밀어 넣고 있다. 과유불급. 지나치지 않는 선에서 타협하기로.



헬렌 니어링은 1904년, 뉴저지 릿지우드의 중산층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예술과 자연을 사랑하고 채식을 실천하는 부모 슬하에서 자연의 혜택을 듬뿍 받으며 채식인으로 성장했다. 바이올린을 전공한 그녀는 유럽 여러 나라를 자유롭게 여행했고, 한때는 철학자 크리슈나무르티와 교류하기도 했다.

1928년, 헬렌은 남편이 될 스코트 니어링 Scott Nearing을 만난다. 스코트 니어링은 왕성한 저술과 강연으로 존경받는 교수였으나, 자본주의에 정면으로 대항하고 반전 운동을 벌인 명목으로 주류 사회에서 배척당하고 있었다. 1932년, 마음을 합한 그들은 도시를 떠나 버몬트의 낡은 농가로 이주한다. 바로 그곳에서 자연과 하나 되는 '조화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먹을거리는 스스로 경작하고, 최소한의 것만으로 풍요로운 삶을 영위했으며, 반세기가 넘도록 의사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서도 건강한 삶을 누렸다. 삶의 매 순간을 명료한 의식과 치열한 각성 속에서 산 두 사람은 세계의 수많은 사람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책은 조화로운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을 위해 헬렌 니어링이 일러주는 '요리'없는 요리책이다. 먹을거리와 먹는 행위에 대한 헬렌 니어링의 독자적인 관점과 철학은 우리로 하여금 삶에 대한 근원적 미각을 일깨워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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