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스쳐 지나간 인연
그곳이 눈에 콕 들어왔다. 이미 수많은 프랑스 지역 사진을 보았지만 블로그 글에 삽입되어 있는 이곳 사진을 보자마자 이번 여행 중에 기필코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곧게 뻗은 절벽에 부딪히는 파도.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지방의 해안 마을, 에트르타(Etretat)에 가기로 결심했다.
친구와 파리에서 헤어진 후, 오전 기차를 타고 에트르타로 향했다. 프랑스어를 못하는 내가 영어를 못하는 프랑스 시골 마을로 내려갈 참이었다. 낯선 장소에 떨어진 불안감에 계속 주위를 살피면서도 핸드폰으로 새로운 장면들을 부지런하게 포착했다. 이 작고 자연이 가득 찬 마을에는 어떤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하면서. 4시간이 넘는 기차 여행이었지만 열정과 체력이 가득한 23살의 나는 피곤한 줄 몰랐다. 기차 밖의 풍경마저 영화 속에 보던 그림 같아서 목 아픈 줄도 모르고 가는 내내 창밖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드디어 에트르타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 역을 벗어나 여느 관광객처럼 두리번 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미녀와 야수≫ 영화 속에서나 보던 2-3층 높이의 고전적인 건물들이 좁은 도로 양 옆에 이어져 있었다. 삼각형 지붕이 솟아있는, 그래서 겨울날 산타클로스의 썰매가 아슬하게 기울어져 있을 것 같은 그런 건물들. 빨주노초파남포 무지개색 물감에 하얀색을 반씩 섞은 듯한 파스텔의 향연. 건물은 낡았어도 많은 자동차가 도로를 오가고, 화려한 장식의 가게가 즐비해 있는 파리와는 확연히 다른 인상이었다. 당연히 우리나라 서울과 강릉은 다른데, 비슷할 것 같다는 예감이 잘못됐다는 걸 깨닫는다.
관광에 들떠 있는 사람은 여럿이었지만, 검은 머리는 나뿐이었다. 길을 걷는 사람들과 언뜻 봐도 문화를 공유하지 않는 나는 동네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듯했으나 다행히 중국인 관광객이 몇 명 더 있었다. 먼 타지에서는 중국인들이 이토록 안도감을 준다.
핸드폰으로 지도 한 번 봤다가, 주변 건물들과 사람의 풍경 한 번 봤다가. 고개를 왔다갔다 하며 길을 따라 쭉 걸었다. 어느 순간, 짭짤한 바닷바람이 얼굴에 닿았다. 바다가 가까워진 것을 알 수 있었다. 몇 분만 더 걷자 해안 절벽이 나타났다.
와. 육성의 감탄사가 입술 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지구상에 이런 곳이 존재했구나. 바다를 처음 본 아이 같은 표정으로 멍하니 바라봤다. 살면서 적지 않은 바다를 가보았지만 이곳은 내가 알던 지구가 아닌 것 같았다. 어쩌면 구글에서 본 사진을 너무 뚫어져라 본 탓에 그 안으로 들어와 있는 것일지 몰랐다. 마치 옥과 다이아몬드를 같이 녹여 덮은 것 같은 바다가 눈앞에서 파도쳤다. 왜 가브리엘 모로, 클로드 모네 같은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이 자주 찾던 장소인지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이곳에 내 발자국을 남기는 행위 하나하나를 기억하고 싶어서 천천히 발을 움직여 절벽 위로 올라갔다. 잔디를 폭삭 폭삭 밟아 절벽 끝에 다리를 걸치고 앉았다.
얼굴에 바람이 스칠 때마다 몸이 가벼워졌다. 살다가 종종 절벽 위에 앉아서 마음의 응어리를 모래 던지듯 버리고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주 잠깐이지만 프랑스 도시의 일원으로 사는 나를 상상했다. 진부한 말이지만 인생에서 본 광경 중에 가장 아름다운 곳이고, 살면서 당분간은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남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찢어서 다시 뭉쳐놓은 것 같은 솜뭉치가 하늘에 둥둥 떠있었다. 지구 표면 위에 놓여있는 요소요소가 다 경이롭게 느껴졌다. 책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반사된 빛을 내뿜는 바다 위 절벽에 앉아 책을 읽었다면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책도 인생책으로 여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눈앞의 광경이 뇌의 장기기억 공간에 복사되었다고 느낄 정도로 시간이 지나서야 절벽을 걸어 내려왔다. 휴양을 온듯한 프랑스인들이 오후 햇살 아래서 맥주를 즐기고 있었다. 유럽의 낯선 지방 도시에서 젊은 동양인 여자 혼자 걸어 다니는 것 자체가 불안하고 무서웠지만 저 맥주를 마시지 않는다면 저승길에 그 맥주를 마셨어야 했다며 후회할 것 같았다. 오히려 내가 느끼는 잠재적 위협을 누군가는 유난스럽다고 여길지 모르는 일이었다.
맥주 종류를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 뿐이었다. 맑은 유리잔에 병맥주를 따라주기에 바닷가 모래사장 위 의자에 앉아 맥주를 꼴딱꼴딱 넘겼다. 원래는 두 병도 거뜬한데, 날씨가 더워서인지, 바다에 취한 것인지, 두 모금 먹었는데도 알딸딸했다.
숙소는 에어비앤비였다. 고즈넉한 시골 마을에 온만큼 현지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공간에 머리를 뉘이고 휴식하고 싶었다. 웹 상에서 본 호스트는 인상 좋아 보이는 부부였다. 영어가 짧은 듯했지만 어차피 어딜 가든 낯선 사람과 살갑게 많은 대화를 나누는 성격은 되지 못해서 상관없었다. 그렇게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에 캐리어를 낑낑 들고 올라갔을 때 문을 열어준 것은, 부부의 남편이었다. 와이프는 여행 중이라고 했다. 부족한 영어로 더듬더듬 집을 보여줬다. 내가 쓸 방문을 열며 그는 말했다. 방문 잠금고리가 고장 났다고. 주변에 거울이 없어 볼 수는 없어도 내 동공이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가 걱정할까 동양인들은 잘 가지 않는 지방에 간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는데, 역시 엄마한테 말할 수 없는 일은 하지 말걸 그랬나. 나 이렇게 타지에서 객사하는 건가. 내 시체를 한국으로 가져가려면 최소 몇 천만 원은 들 텐데, 엄마아빠는 그런 유동현금이 있기는 한가. 노래 한 곡도 끝나지 않았을 짧은 시간 내에 일어날 수 있는 불행한 시나리오 99가지와 그다음 단계 101가지를 상상했다. 하지만 해가 이미 져버린 시간, 프랑스 노르망디 시골 마을에서 갈 수 있는 숙소 대안은 없었다. 어딜 가든 여기서 대중교통을 타고 한참을 가야 할 일이었다. 오케이. 굿 나잇. 서둘러 대화를 마무리하고 인사했다.
다행히 화장실은 잠기기에 대충 샤워를 마치고 방 안으로 들어와 캐리어에 필요한 물건만 꺼내고, 꽉 닫아서 문에 비스듬히 세워놨다. 혹여나 깜빡 잠이 들어도 누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캐리어가 떨어지면서 큰 소리를 낼 터였다. 와이파이가 잘 터지지도 않는 핸드폰을 꼭 붙잡고 침대 위에 누웠다. SNS 게시글과 뉴스를 한참 보고, 온갖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와있는 글을 읽고,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돌아가며 카톡을 보냈다. 내가 혹시 연락이 안 된다면 우리 부모님에게 연락해 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잠들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던 찰나,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다. 나는 전쟁이 나도 탱크 위에서 꿀잠을 잘 인간이었다. 핸드폰 화면을 눌러 시간을 보니 오전 9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비스듬히 세워둔 캐리어는 그대로였다. 조심히 캐리어를 바닥에 내려두고 나가보니 주인 남자는 나가고 없는 듯했다. 세수를 하고, 프라이팬에 있는 음식을 먹어도 되나 조금 고민했다. 주인공이 낯선 집에서 음식을 잘못 주워먹고 사지가 묶인 채로 깨어나는 수많은 넷플릭스 드라마를 떠올렸다. 하지만 이내 배고파서 몇 숟가락 덜어 먹고, 주섬주섬 짐을 챙겨 나왔다.
무겁고 바퀴도 뻣뻣하게 돌아가는 핫핑크색 캐리어를 끌고 고속버스 역사로 향했다. 에트르타 절벽이고 뭐고, 집시가 많아도 좋으니 한국인도 많고 중국인도 많은 파리로 얼른 돌아가고 싶었다. 그렇게 쨍쨍한 하늘 아래 부지런히 걷고 있는데 중학생 즈음 되는 금발머리 남자애 둘이 자전거를 타고 다가왔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겠지 싶어 개의치 않고 걸었는데 귓가가 시끄러웠다. 역시 어린 남자애들 너무 시끄럽군.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 나를 쳐다보며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자세히 들어보니 칭챙총 따위의 중국어 흉내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하. 처음 파리에서 겪을 때는 당혹감에 몸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수많은 유럽 도시를 거쳐 에트르타까지 온 나에게 남은 감정은 피로감뿐이었다. 한숨을 뱉어내는 동시에 피로감 아래 숨어있던 감정이 함께 딸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게 무엇인지 인지하기도 전에 입 밖으로 감정이 튀어나왔다.
“Go fuck yourself!!!!”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한 거지. 사라진 줄 알았던 당혹감이 돌아왔다. 남자애들도 당황한 것 같아 다행히 시간을 벌었다. 재빠르게 상황 파악을 했다. 그리고 나는 위협을 감지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즉각적인 대응을 선택했다. 달려. 드르륵 소음이 사방에서 울리는 캐리어를 끌며 달렸다. 생각해 보면 내가 우사인 볼트도 아닌데 자전거를 탄 남자애들보다 빨리 달렸을 리 만무하다. 그래도 자리를 떠서 사람이 많은 공간으로 이동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 그래도 경찰 한 명은 있지 않을까. 그 경찰이 내 편을 들어준다는 보장은 없지만 모수가 많으면 나를 도울 선의의 인간이 한 명은 있을 거라 기대했다.
다행히 두 명은 나를 따라오지 않았다. 웬 동양인 미친년인가 당황스러워 떠난 것일 텐데, 그때는 자기가 아는 어른을 데리러 간 것은 아닐까 온갖 망상에 빠져 덜덜 떨리는 마음으로 버스를 기다렸다. 시골 마을에 버스가 금방 올리 만무했다. 하염없는 기다림 끝에 겨우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창가에 앉아 바깥 풍경을 내다보았다. 마약에 취한 듯 아름다움을 찬양하던 에트르타 절벽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그 대신 이 마을에 도착해 만난 두 명의 남자가 떠올랐다. 악의가 없었을 텐데 억울하게 경계를 당한 호스트와 악의가 있었는지 알기 어려운 꼬마 남자애. 역시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에는 무엇이 기다릴지 알 수 없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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