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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민 Mar 03. 2022

패셔니스타

너는 무슨 옷을 좋아해?

3살 터울인 오빠는 워커홀릭이고 취미가 없다. 그렇게 재미없게 사는 그가 30년 인생 동안 지켜온 삶의 낙이 있다면 그건 바로 나를 놀리는 일이다. 바깥에서는 사람들에게 자상한 친구이자 성실한 직원이고, 부모님에게는 사려깊은 아들이기 때문에 하찮아 할 대상이 세상에 나 밖에 없는 것도 놀랄 사실은 아니다. 다만 놀리는 레퍼토리는 진부하게도 잘 업데이트되지 않는데, 그중 하나가 나의 옷이다.


20살 대학 입학 이후 처음으로 구제에 눈을 떴다. 찰리에게 초콜릿 공장이 있다면, 그 당시 나에게는 광장시장 2층의 구제 옷 가게들이 있었다. 취향 중심부를 꿰뚫는 옷들이 줄줄이 행거들을 유영했다. 갖가지 티셔츠, 원피스, 코트들이 여러 행거에 비좁게 매달려 있는 그곳에서, 20살 혜민의 손과 눈은 쉴 새 없이 바삐 움직였다. 게다가 티셔츠 하나에 3천 원, 코트 하나에 4만 원. 여러 개 사면 더 저렴하게 판매하니, 그 날 예산이 바닥나기 전까지는 중천에 떠있던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돌아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호객행위에 면역력이 없었던 20살, 21살의 나는 자주 웃돈을 주고 필요하지 않은 옷을 사는 호구였지만 그때는 마냥 만족스러운 쇼핑을 했다.


구제란 자고로 사이즈 별로 판매하는 옷이 아니기 때문에 핏이 맞는 듯 약간 엇나가야 하며, 어깨선은 내 어깨에서 멀리 가출해 있어야 하고, 가격과 함께 색감도 씻겨나간 것이 멋이다.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때는 그게 내 규정이고 신념이었다.


그렇게 사 모은 구제 옷을 잔뜩 걸치고 외출하는 나를 보며 오빠는 일관적으로 하찮은 시선을 보냈다. “네가 패피인 줄 아냐? 옷 진짜 못 입는다.” 나와 달리 오빠는 서른 살이 넘은 지금까지도 풀 정장이 가장 멋있다고 생각하는, 그래서 넥타이도 마음대로 못 풀게 하는 자신의 직장 복장 규율에 크게 불만이 없는, 기성복의 노예이다. 


그런 그는 평범함을 거부하는 나의 옷들이 그 위 먼지만큼도 이해가 되지 않는지, 녹화영상 마냥 매번 같은 표정, 같은 말투, 같은 멘트로 나를 조롱했다. 그럴 때면 나는 “네가 패션에 대해서 뭘 알아, 찐따야”라고 맞받아쳤다. 패션에 대한 프라이드로 어깨가 약간 봉긋 솟아 있던 나에게 기성복 노예의 조롱은 모욕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최근 2-3년 들어서 오빠의 표정과 멘트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오, 이제 좀 사람처럼 입고 다니네. 예전에는 지가 무슨 패피인 줄 알더니.” 조롱성 말투와 외출할 때마다 반복하는 일관성은 그대로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멘트가 바뀌었다는 것인데, 이유인즉슨 애석하게도 나도 내가 옷을 못 입는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잘 입는 사람의 센스가 부재하여 스타일에 개성을 더했을 때 성공보다 실패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점점 실패 위험이 적은, 무난한 스타일을 추구하기 시작했는데 그게 기성복 노예의 눈에는 “사람처럼 입고 다니는 것”으로 보이나 보다.


20살 이후부터 옷을 사기도 많이 사고, 스타일이 극적인 변화를 겪으면서 버리기도  많이 버렸지만 그럼에도 나의 옷장에는 20살 이후의 역사가 파편적으로 담겨있다. 10대 막바지에 구매했던, 이제는 유행이 지나버려 입기도 민망한 얄궂은 꽃무늬 투피스. 이 투피스는 7년 동안 숱한 휴양지 여행과 파티, EDM 페스티벌을 함께했다. 엄마는 직장 다니는 애가 그렇게 파인 나시와 짧은 치마를 아직도 갖고 있는다고 나무라고, 이제는 실제로도 입을 일이 없지만 어째서인지 버릴 수가 없다. 그 외에도 4년 만난 남자친구와 처음 여행을 가면서 맞춰 입고 갔다가 부끄러움에 자꾸 어깨가 수그러들던 박시한 검은색 커플티, 남자가 입어도 어깨 공간이 남아돌 것 같은 구제 롱코트와 보풀이 잔뜩 일어난 구제 져지, 등등등. 아직 옷장에 자리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옷들에 잊고 싶지 않은 추억 먼지들이 잔뜩 앉아있다.


그 몇몇 옷들을 제외하면 이제 옷장 대부분은 어깨선이 딱 맞는 셔츠와 블라우스, 니트, 긴치마와 슬랙스가 대부분이다. 백화점 어디를 가도 팔듯한, 어디 가서 옷 잘 입는다는 이야기 들을 일은 없어도 못 입는다는 이야기도 들을 일 없는. 그런 정갈하고 안전한, 오빠의 말에 따르면 “사람” 같은 옷들. 복장 규율이 없는 회사라 개성 넘치게 입고 다녀도 나무랄 사람 하나 없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은 남성들과의 외부 미팅이 잦은 업무 특성 상 프로페셔널 하지 못한 “어린 여자 직원”의 프레임에 갇히고 싶지 않은 나는 일명 ‘오피스룩’들로 자꾸 옷장을 채워간다. “어린 여자 직원”은 아무것도 잘못된게 없는데도 말이다. 


어쩐지 그렇게 변해가는 옷장을 정리할 때 나는 이제 점점 옷장의 점유율이 줄어가는, 겁 없던 구제 옷들이 떠올라 조금 슬퍼진다. 시간이 흘러 흘러, 나 또한 어디서든 파는, 그저 그런 옷이 되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래서 아직도 나는 버리지 못하는 옷들이 있는가보다.


2021.01.07

2022.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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