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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프 Sep 06. 2023

야구는 인생이라는데

<사춘기 딸과 함께 야구장을 4>

사람들이 말한다. 야구는 인생이라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정해진 시합 시간이 없어 금방 끝날 때도, 한없이 길어질 때도 있다. 항상 잘하는 팀도 항상 못하는 팀도 없고 어떨 땐 뭘 해도 잘 되는데 어떨 땐 뭘 해도 안 된다.


      

최근 A 선수가 약간 삼진이 많았다. (8월 중순) 오픈카톡방에는 여지없이 악플이 올라온다. 감독과 A선수가 X맨이네 뭐네 하는 댓글이 줄줄이 달리는 와중에 마침 그 선수가 타석에 섰다. 그런데 이게 웬일. 홈런이다! 푸하하하. 웃음이 터졌다. 바로 오픈 카톡방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와따, 잘하네! 

-미안합니데이. 

-이런. 사과합니다. 

-저는 A선수 빅팬이라 욕 안 했습니다! 파이팅!

     

성실히 노력한 사람이 본 때를 보여준 것 같아 속이 후련했다.    

 

최근 잘하는 선수 중에 선수 B 가 있다. 7월 중순쯤 1군에 합류했는데 타율이 4할이 넘는다. (최근엔 조금 떨어졌다) 직관 갔을 때 B 선수를 보고 누군지 궁금했다. 타석에 올라올 때마다 안타를 치는데 응원가가 없다. ‘2군에서 올라왔나? 잘하네.’하고 말았는데 이렇게 꾸준히 활약할 줄은 몰랐다. 알고 보니 작년에 성적이 좋지 않아 KIA에서 방출된 선수고 얼마 전까지 롯데의 2군에 있었다고 한다. 팬들은 빨리 B선수의 응원가를 만들어 달라고 성화가 대단했는데 열흘 전쯤 B선수의 응원가가 나왔다. 딸은 야구장에서 B선수의 응원가를 불러야 한다고 다음 직관 가는 날을 고대하고 있다.      



자신의 실력을 발휘해 욕하던 사람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고, 부진을 극복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런 이야기. 참 좋다. ‘그래, 결국은 보상받는 삶. 이런 게 인생이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생에는 그런 장면만 있는 게 아니다. 


1회 초, 롯데의 공격. 오랜만에 C선수가 타석에 섰다. 한 달 넘게 선발에서 빠져있던 선수다. 해설위원은 이런 중요한 경기에 왜 안타감이 오른 다른 선수를 빼고 C를 선발로 세웠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 선수가 얼마나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고 싶을지 짐작이 간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삼진으로 타석에서 물러났다. 얼굴 가득 아쉬운 표정이다. 

‘아후, 잘하면 좋았을 텐데.’ 

나도 아쉬웠다.      



그리고 1회 말. 롯데의 수비. 땅볼 타구를 잡으러 달려가던 C선수가 3루로 향하던 상대편 주자와 크게 부딪혔다. 그라운드에 쓰러진 C는 일어나지 못했고 바로 병원으로 실려갔다. 오랜만에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고 싶었을 텐데, 부상으로 실려나가다니. 큰 부상이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이것도 인생의 한 부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하지 않던 방향으로 인생이 흘러간다. 마음이 답답하고 속이 상한다.


      

경기가 끝나고 C선수가 큰 부상은 아니라는 기사가 떴다. 다행이다. 얼른 회복해서 다시 경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지 못한 곳으로 인생이 흘러할 때 그 상황에 매몰되지 않는 의지와 지혜가 필요하다. ‘하필 내가 왜? 어째서?’라는 질문 대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항상 천지차이다.


      

아이 학교에서는 주말마다 ‘주제 글쓰기’라는 숙제를 내준다. 얼마 전엔 ‘시간이 지나면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 주제였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 뭐가 있을지 나도 아이 옆에 앉아 생각했다. 눈치? 아니면 계절의 변화? 

“넌 뭐라고 생각해?”

아이에게 물었다. 

“열심히 노력한다고 항상 원하는 결과가 있는 건 아니라는 것.”

이게 초등학교 6학년 아이 입에서 나올 소린가 싶어 잠시 멍했다. 정신을 차린 후, 말했다. 

“물론 그렇지. 하지만 노력하지 않으면 후회하게 돼. 더 열심히 할걸. 하고 말이야. 열심히 노력하면 적어도 후회는 없어. 결과가 안 좋았다고 해도.”

아이는 “아. 그런가.”하고 만다. 나는 아이에게 말했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나 스스로에게 한 말 같기도 하다.       


야구를 보며 인생에 대해 생각한다 

야구를 보며 아이와의 대화를 하며 깨달은 건, 결국 기준은 나 자신이란 것이다. 내 인생을 돌아보았을 때 후회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설령 노력해도 안 될지라도, 기회를 놓칠지라도, 세상이 나에게만 가혹하다고 생각되는 상황이라도 그래도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걸 하는 것. 그러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은 자신의 인생에 떳떳하지 않을까.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은 선수도, 실력 발휘는커녕 부상까지 당한 선수도 그리고 노력의 결과가 내가 원하는 것과 다를 수 있다고 말하는 딸도 모두 그 자리에서 자신의 몫을 다하기를. 오늘도 경기는 계속되고 인생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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