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프 Oct 22. 2023

야구장에서 더 맛있는 홈런볼

<사춘기 딸과 함께 야구장을 11>

야구장에 가는 큰 즐거움 중 하나는 맛있는 간식을 먹으며 생동감 있는 야구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직관 날짜와 구장이 정해지면, 아이는 그 전날 그 구장 대표 먹거리를 검색해 가족 카톡방에 올린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올해 봄, 고척 구장에 갔을 때는 구장과 가까운 치킨 가게에서 치킨을 포장해 갔는데 아주 오랜 시간 기다려야 했다. 그다음 문학구장에 갔을 때는 구장 안에서 치킨을 샀는데 한꺼번에 대량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어서 식은 치킨을 먹어야 했다. 그 뒤로는 구장 먹거리를 검색해 최대한 실패가 없도록 한다.      



그러나 맛집 정보는 모두에게 오픈되어 있으므로 그 구장의 유명한 음식을 먹으려면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게 필수. 고척돔의 크림 새우의 경우 경기 시작 한 시간 전에 가도 품절이다. 블로그를 보면, 적어도 두 시간 전에는 가야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야구 경기 도중에 다른 사람이 먹는 걸 보고 맛있어 보여 중간에 사러 가기도 한다. 문학 구장의 아이스크림 츄러스가 그랬는데 보통 남이 먹는 걸 보고 가면 품절일 경우가 많다.           



어찌 됐든 야구장에서 치킨과 오징어는 항상 먹는 것 같고 그것만 먹으면 입이 짜서 중간에 단 과자를 사 먹게 된다. 우리 가족의 경우 주로 홈런볼을 먹는다. 먹기 간편하기도 하고 맛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과자 이름에 ‘홈런’이 들어가 있어 그 과자를 먹으면 우리 팀이 홈런을 칠 것만 같다. (비슷한 이유로 투수들은 홈런볼을 먹지 않는다고 한다)     


얼마 전, 직관 가서 홈런볼을 먹었는데 프로야구 출범 41주년을 기념한 KBO스페셜 제품이었다. 

홈런볼 뒷면에 있는 9개 구단의 로고 (롯데 자이언츠만 없다)

“엄마, 이거 봐.”

아이가 경기를 보고 있던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아이의 손가락이 홈런볼 봉지를 가리키고 있다. 봉지 뒷면에 KBO 각 구단 로고가 들어가 있다. 그런데 이런. 롯데만 없다. KBO구단은 총 열 개인데 한 줄에 세 개씩 세 줄, 나란히 9개 구단 로고가 들어가 있다. 깜짝 놀라 봉투를 뒤집어 앞면을 봤다. 각 구단의 마스코트가 들어가 있는데, 롯데 마스코트 윈지만 없다. 

“여보, 여보, 이것 좀 봐.”

난 내 옆에 앉은 남편을 쿡쿡 찔러 이 사실을 알렸다. 우리 가족 세 명은 홈런볼 봉지에 머리를 바짝 대고 정말 롯데 자이언츠만 없는지 보고 또 봤다. 홈런볼이 어디에서 나오는 제품인지 확인했다. ‘해태제과’다.


“아아, 해태네. 나 어렸을 때 아빠가 해태팀 응원했는데 롯데 과자 먹지 말라고 했었어.” 

그러나 그 시절이 언제인가. 내가 말하고도 너무 아득해서 웃음이 났다.  

“설마 그래서 롯데만 뺐다고? 그럴 리가 없지.”

“그럴 리가 없을 거 같긴 한데 그럼 왜 롯데만 없지?”

“그러게.” 

대화를 듣던 아이가 명쾌한 결론을 내린다.

“어쨌든 이제 먹지 말자.”

“그럼 그럴까? 그래, 먹지 말자.”  


롯데 자이언츠 마스코트 윈지만 없다 

   

그다음 날, 아무래도 이상해 검색을 해 봤다. 다행히 그 뒷배경을 알 수 있었다. 해태제과에서 프로야구 출범 41주년을 기념해서 KBO스페셜을 출시했는데 출시 전, 10개 구단에게 마케팅 참가 여부를 물었다고 한다. 롯데 자이언츠만 홀로 거부하여 롯데 자이언츠의 마스코트와 로고는 빠진 채로 나왔다고 한다. 아하, 이런. 롯데 자이언츠는 왜 거부했을까. 이렇게 표지에 롯데 자이언츠만 빠지게 될 줄 몰랐을까? 잠시나마 오해한 해태제과 마케팅팀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난 이 사실을 얼른 가족 카톡방에 공유했다. 딸과 남편의 ‘크크크크크’ 답변이 연달아 달렸다.


혹시 KBO스페셜 홈런볼을 먹다 깜짝 놀란 롯데팬들이 있다면, 그래서 해태제과를 오해하고  있다면, 이런 배경이 있으니 오해하지 마시라. 그리고 역시 뭔가 미심쩍다면, 확인해 봐야 한다. 지레짐작은 항상 오해를 낳으니. 치킨, 오징어, 홈런볼로 이어지는 우리 가족 야구장 먹거리 패턴은 그 이후로도 계속됐다.

이전 09화 스포츠의 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