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말고 당당하게
미안해, 나는 좀 어색해. 내가 뭐라고 응원이든 위로든 전할 수 있겠어. 참 많이 답답하고, 힘들었겠다. 오늘이 마지막이었는데, 제대로 된 끝인사를 못했어. 인연이란 스치듯 지나쳐도 언젠가 또 만날 수 있는 거잖아. 그럴 일은 거의 없겠지만, 장담할 수 없어. 기대가 커지면 때론 현실로 이뤄지는 순간이 있거든. 내가 마법사도 아니고 초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지만, 혹시 마주친다면 눈인사라도, 아니면 반가운 악수라도 청할게. 그때가 온다면 한창의 중년을 지나고 있을 나의 얼굴은 완전히 청년의 허물을 벗었겠지? 많이 늙었다는 말보다는 아름답게 물들었다는 말을 듣고 싶다. 괜한 욕심을 부려봤어.
누군가는 너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 거야. 또 다른 사람들은 너를 보며 탈출을 축하할지도 몰라. 글쎄, 나는 어떤 표현이 더 맞는지 모르겠어. 다만, 인생의 가장 찬란하다고 말하는 그 나이 때에 중요한 기로에서 꽤 아픈 경험을 한 것 같아. 그렇다고 겁을 먹거나 불안에 잠식당할 상황도 아니라고 생각해. 이렇게 넘어진 김에 쉬어 가는 것도 좋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 너에게 주어질 많은 날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너는 분명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몰라 혼란의 시간을 겪을 것이고, 또 다른 실패와 좌절이 기다릴 거야. 그 순간은 지금보다 더 아플 거야.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누구보다 노력했던 결과를 외면받을 땐 말도 못 할 고통이 밀려오더라. 나는 여전히 극복하지 못했고, 단단해지지 못했어. 그래서 나는 방황 중이야. 무려 스무 살이 된 후 이십 년이 넘도록 이러고 있지. 내가 택한 방법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신념을 지키는 거였어. 그리고 불안이든 뭐든 간에 흔들리는 삶에도 꿈은 꾸고 살자는 거였지. 가시 돋친 말로 "너는 참 낭만이 있어 좋겠다."라는 말도 듣지만, 그게 나를 또 살게 하는 힘이라 포기할 수 없더라.
영화 <마더>를 보면 김혜자 배우가 억새밭에서 실성한 듯이 춤을 추는 장면이 나와. 나는 되게 인상 깊었어. 그 모습이 내 인생 같았거든. 방향이 사라진 어느 넓은 들판에 멈춰 서서 바람을 느끼듯 하늘을 담듯 이유 모를 몸짓들이 가득해. 하지만 춤을 추는 사람은 누가 봐도 상관없다는 것처럼 끊김 없이 춤을 춰. 멀리서 보면 작디작은 한 점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이상해 보이지만, 들판의 한가운데 있는 한 사람은 우직하게 자신을 끝없이 무언가로 증명하고 있는 것. 나는 그것이 가장 나답게 살아가는 태도라고 느꼈어. 우리 모두 알게 모르게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만 그것의 가치를 매기는 사회에서는 맥을 못 추리지. 내가 받아들인 건 그런 사회가 아니었어. 그저, 나답게 살지 못하는 것이 나를 더 괴롭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뿐이야.
기대와 소망이 가장 뜨겁고 진실된 방향으로 너의 노력을 이끌었으면 좋겠다. 차갑고 딱딱한 세상을 살아가지만, 따뜻한 곳에서 다정한 사람들과 행복한 둥지를 만들었으면 좋겠어. 누군가에게 진심을 전하고 싶을 때는 내가 나를 일으키고 사랑할 수 있는 말을 빚어 전하는 거라고 배웠어. 부디, 잘 살아. 고마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