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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 Sep 27. 2022

모두에게 다른 계절

슬픔을 권합니다


"아마 지금도 어딘가에는 계절의 황홀함을 즐기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지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김지영, 『행복해지려는 관성』/필름




 지금은 황홀한 계절이다. 바닥까지 내려온 듯한 흰 구름들이 모두 걷히고 우주가 질투해 잡아당긴 모양으로 푸르던 하늘이 더 푸르게 번쩍 올라가 있다. 깊고 맑은 바다처럼 아니면 잔잔한 호수처럼. 이 가을에 어디로 떠나야 하나, 유명한 그 사찰은 어떨까 생각하며 주말을 보냈다.  


 화요일엔 좋아하는 작가의 강연이 있어서 옆 도시인 T시로 가야 했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주최하는데 소설과 관련된 강연이라 일찍부터 예약해 두었다. 날짜는 성큼 다가왔고 놓치지 않고 가리라 알람까지 맞춰 두었는데 아침이 되니 가기 싫어졌다. 한가롭게 강연을 듣는다는 게 사치이며 파렴치처럼 느껴졌다. 그냥 집에 축 늘어져 있고 싶은 날이었다.


 어제 들은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T시에는 이름난 쇼핑몰이 있는데 크고 아름다운 외관을 자랑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끌었다. 어제 아침 7시를 기해 그 쇼핑몰 지하에서 불길이 치솟았고, 오전 내 검은 연기가 동네를 뒤덮었다. 내가 처음 기사를 접했을 땐 1명 사망이었는데 지금은 사상자가 8명이나 나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망자와 실종자가 늘어나서 두 손을 모으고 제발, 제발을 외쳤다.


 건물에서 화재나 나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어떠한 죽음보다 무섭다. 평소에는 무색, 무취이던 것이 불과 만나면 검은 것으로 바뀌고 사람의 몸에 들어가 그의 숨통을 끊는다. 연기로 질식하는 것도 고통스럽지만 화상은 더욱 심각하다. 온몸이 새카맣게 타고 살갗이 벗겨지고 흉하게 일그러진다. 숨이 붙어 있어도 중상자가 되어 회생 가능성이 낮아진다. 내 아버지도 그렇게 사망했다.


 전신에 3도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몇 번의 수술 끝에도 합병증으로 사망하였다. 장기까지 손상된 것이 회생 불능을 빨리 앞당겼다. 그래도 고마운 것은 40일의 시간 동안 중환자실에서나마 우리 곁에 있어 줬다는 것. 17년이란 시간이 지나야 겨우 그것이 고마운 일이 됐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 사고에 머물러 있었다. 같은 계절이 돌아오면 현재를 즐기다가도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문득문득 서늘했고 아팠다.


 건물에 화재가 나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뉴스만 접하면 그때의 기억이 어쩔 수 없이 떠오른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T시로 달려가기가 그토록 망설여졌던 것이다. 하지만 집에 있으면 비감해 과거로 더 침잠할 것 같았다. 나는 출발했고 고속도로를 40분 달리는 동안 역시 점차 기분이 나아졌다. 달릴수록 완연한 가을이었다. 해는 쨍쨍했지만 더 이상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아도 덥지 않았다. 바람은 선선하게 차 안으로 들어와 시간을 감쌌다. 오전의 망설임은 어디로 갔는지 몰랐다. 급기야 T시 외곽에 도착했을 땐 눈부시게 파란 하늘에 감탄했다. 차를 멈추고 사진을 찍었다. 높다란 하늘과 T시 중간을 관통하는 하천과 수변도로가 아름다운 피사체가 되어 담겼다. 그리고 생각했다. 지금쯤 누군가는 이 가을을 느끼지 못할 정도의 고통으로 신음하겠구나. 가족을 잃은 슬픔이 창자를 찢고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겠구나, 하고.


 집으로 돌아와 화재 참사가 일어난 동네에 살고 있는 지인에게 문자를 넣었다. 안부를 보내면서 공기가 어떤지 물었다. 학교 선생님인 그녀는 동네가 모두 초상집 분위기라고, 본인은 일찍 출근해서 몰랐는데 아이들이 등교하면서 모두 치솟은 검은 연기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너무 가슴이 아파서 뭘 하기가 죄스럽다고 말했다. 왜 안 그렇겠는가. 나는 50km 떨어진 다른 도시에 살고 있는데도 너무 슬프더라고 답장을 했다. 더 이상 이어갈 말이 없었다. 아버지 생각이 나서 더 그랬다고 말하려다가 관두었다. 그걸 말하면 위로를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평소에도 잘 말하지 않는 이야기다. 아무튼 우리는 당사자가 아니고, 내일 아침이 되면 한 발 더 사건에서 멀어질 것이다. 동네 사람인 지인도 그 검은 연기가 다 걷히고 나면 그때 그런 일이 있었다고 누가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는 또 잊은 채 살아갈 것이다. 어쩌면 그게 일상으로 돌아가는 방법일지도 모르고.  


 하지만 아무리 내 일이 아니라고 해도 함부로 말하는 것은 그만 두면 좋겠다. 이 사건을 같이 이야기하던 어떤 이들은 날아가버린 하루 매출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떤 사람들은 규명되지 않은 원인에 대해 함부로 떠들었다. 또 누군가는 보상에 대해 말했다. 멋대로 예측하기도 했다.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금전적인 것으로는 어떤 생명에 대해서도 등가의 보상이 되지 못한다. 사람들이 화물 승강기 앞에서 죽은 세 명의 마음을 헤아리길 바랐다. 큰 회사에 입사했다고 기뻐하던 아들을 오늘 아침 이후로 만나지 못하게 된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하길 바랐다. 아침 일찍 출근한 가장의 뒷모습이 기어이 마지막일 수밖에 없었다고 오열하다 쓰러진 아내의 심정을 짐작하길 바랐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금전적 가치와 보상에만 관심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다시 슬픔에 잠겼다. 일상으로 회복이 늦더라도 일단은 깊이 애도해야 한다. 참사는 다시 일어나서는 안된다. 그토록 파란 하늘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것 같이 황망한 유가족들을 제대로 위로해야 한다. 진상 규명도 철저히 하고 대기업이라고 눈 감아 주지 말고 제대로 수사해야 한다. 하청업체 직원이라는 이유로 유야무야 떠넘기면 큰일난다. 남들보다 먼저 궂은 일을 도맡아 하던 사람들이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이 바로 슬픔이 필요한 순간이다. 검은 연기는 삽시간에 흩어졌지만 오래도록 애도하고 싶은 죽음들이다. 충청의 가을은 시리고 파랗다.


슬픔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나와 내 곁에 사람들이 선명하게 살아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하여.
매일 새로운 아침을 맞이 하는 일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잊지 않기 위하여.
고수리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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