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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환 Sep 13. 2021

#8. 검찰의 정석

한국과 일본의 전 검찰총장 이야기

 검찰은 2003년 탄생한 노무현 정부가 개혁 화두를 던진 후 늘 논쟁의 대상이 돼 왔다. 현 여권은 야당 시절 집요하게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검찰은 일부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완전히 잘못된 조직이라는 식의 비판에는 억울해 했다. 검찰도 대부분의 사건은 법과 원칙, 양심에 따라 처리할 것이다. 정치적 성격이 큰 일부 수사가 계속 문제가 됐다.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하고, 엄정한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은 얘기하기 쉽지만 현실에서 구현되기는 쉽지 않다. 어느 순간 수사의 원래 목적은 잊고, 눈앞의 목표에만 집착하다 무리한 수사로 이어지는 경우도 봤다. 앞선 서술에서 몇 차례 언급한 적이 있지만, 수사 실무에서 적용돼야 하는 검찰 수사의 원칙을 다시 한 번 정리해 보겠다.      

 우리나라에서도 교과서적인 검찰의 상으로 자주 언급되는 말이 있었다. 바로 ‘환부만 정확히 도려내는 외과의사’다. 명의처럼 환부를 정확히 파악해 그것만 도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외과수술식 수사를 노래처럼 불렀던 사람이 있다. 김진태 전 검찰총장이다. 김 전 총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12월 검찰총장이 돼 2년간의 임기를 채웠다.

 김 전 총장은 환부만 정확히 봐서 그것만 칼로 도려내는 신속하고 정확한 수사를 하라고 했다. 특정 부위에 문제가 있는 외과 환자가 아니라 모든 것이 문제인 말기 암 환자인 듯 수사 대상을 대하고 개복 수술을 하면 후유증이 심하게 남는다는 것이다. 환부가 아닌 곳까지 건드리고 부작용이 생기면 사람을 죽일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외과수술 식 수사를 '사람 살리는 수사'라고 달리 표현하기도 했다. 외과수술 식 수사와 반대되는 말은 저인망, 먼지떨이, 별건 수사 등이 있다. 사실 환부만 도려내는 외과수술 식 수사는 김진태 전 총장만 말했던 것이 아니었다. 과거 검찰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 종종 강조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검찰의 문화로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이런 얘기가 반복될 수밖에 없었다.     

 교과서적 관점에서 문재인 정부 검찰의 모습을 평가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적폐청산 수사에서부터 살아있는 권력 수사까지 많은 논란을 낳았다. 적폐청산 수사는 지나치게 장기화되고 검찰은 혐의를 광범위하게 펼치려는 듯한 모습을 검찰은 보였다. 과연 외과수술 식 수사를 했는지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검찰 수사에 등장하는 살아있는 권력들은 모두 문재인 정부에서 관직을 이용해 금품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부정적으로 보더라도 일을 무리하게 처리하려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검찰은 여기에 모두 범죄의 잣대를 들이댔다. 법원에서 유죄를 인정한 사례도 있지만, 아직 확정 판결이 난 것은 아니다.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직권남용 혐의 무죄 확정 판결을 받는 등 무죄가 난 사례도 적지 않다. 하급심에서 판사마다 판결이 달라지기도 했다. 과거에는 관행으로 다 인정했던 사례들이다. 이 같은 공무원의 일 처리를 모두 범죄의 영역을 봐야할 지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일이다.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에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하는 일이다. 사회적 기준이 명확하지 않는 사안들에 대해 검찰은 범죄 혐의를 씌웠다. 적극적인 수사권을 행사한 것이다. 하지만 수사권은 그 특성 상 절제가 중요하다.     

 일본 산케이신문 이시즈카 겐지 기자가 2009년에 쓴 ‘도쿄지검 특수부의 붕괴’는 현재 한국 검찰 상황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검찰에 대한 비판이 일본에서도 그대로 지적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특수부는 정·관·재계에 깃든 병소에 가차 없이 메스를 들이대 불문곡직하고 그것을 제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막강 조직이다. 관점을 바꿔보면 거기에는 특정 인물을 병소하로 단정 짓고 배제하는 자의적인 수사라고 비난 받을 수 있는 일면도 있다.’(12쪽)는 대목이 나온다. 책에 등장하는 전 특수부 검사였던 고하라 노부오 도인요코하마대학 교수의 멘트도 인상적이다. 고하라 교수의 멘트를 그대로 옮겨 보겠다. “특수부는 1976년의 록히드 사건에서 다나카 기쿠에이 전 수상을 기소하여 국민의 기대에 부응했다는 ‘승리의 체험’을 너무 소중히 여긴 나머지, 뇌물수수죄를 무기로 삼아 악한 정치가와 대결한다는 구도에 더욱 집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치의 메커니즘은 정부·여당 중심의 정책 결정이나 입법이 정착되었기 때문에 국회의원의 독직 적발이 어려운 시대가 되어, 상층부에서 기획한 시나리오에 억지로 맞춰 조서를 꾸미는 상의하달식 수사 방법이 눈에 띄게 되었다. 수사 대상으로 삼는 사건이 예전의 정계 독직 지상주의에서 최근에는 경제사건 중심으로 옮겨갔지만, 처음부터 특정 인물을 ‘악인’으로 지목해 놓고 관계자들의 진술에 따라 악인 중심의 뻔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예전의 독직 조사 때 쓰던 수법에는 변화가 없다는 점에 큰 문제가 있다. 경제사건 수사에 요구되는 것은 위법행위의 실태를 배경 사건까지도 포함해서 전체적으로 분명히 하는 것이다. 억지로 단순화한 스토리에 따라서 수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강제 수사를 감행함과 동시에 언론에 정보를 흘려 여론을 조장해 가면서 수사를 하는 극장형 수사가 현저히 눈에 띄게 되었다.”(27~28족)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상의하달형’, ‘악인 중심형’, ‘극장형’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한다. 고하라 교수의 말은 10여 년 전 일본 검찰을 비판한 말이지만, 오늘날 한국 검찰을 비판하는 완벽한 텍스트가 될 수 있다.

 1976년 미국의 군수업체 록히드마틴이 일본 정계에 로비자금을 뿌린 사건을 수사했던 요시나가 유스케의 발언도 새겨볼만 한 하다. 요시나가는 “수사의 움직임이 세상에 알려지면 특수부는 퇴로를 차단당한 셈이 된다. 정치인의 사전 청취 등의 움직임이 언론에 보도되면 ‘수사 결과, 사건이 될 혐의가 없었습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게 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198쪽) 1993년 검사총장에 취임하고 나서는 “검사는 수사가 정치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수사로 세상이나 제도를 바꾸려 하면 검찰 파쇼가 된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206쪽)     

 한국의 검찰 제도는 일제 강점기 시대에 뿌리를 두고 있고, 특수부(우리나라에서는 현재 반부패수사부)라는 조직이 대형 사건을 직접 수사하는 등 유사한 점이 많다. 문무일 검찰총장 시절 검찰개혁 조치 중 하나로 실시된 특수부 축소는 거점 검찰청에만 특수부를 두고 있는 일본 모델을 따르기도 했다. 일본의 전직 검사나 검사총장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자신들만의 원칙을 지키면서 일본의 어느 기관보다 높은 국민의 신뢰도를 받았지만, 어느 순간 원칙이 무너지면서 신뢰를 상실했다. 그리고 상의하달형, 악인 중심형, 극장형 수사라는 오명을 받았다. 한국 검찰은 오랫동안 신뢰받지 못했다. 지금은 정치적 입장에 따라 검찰에 대한 신뢰도가 확연히 갈리겠지만,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검찰이 문제가 있다는 것은 오랫동안 지적돼 왔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는 오랜 논의의 결과였다. 붕괴라는 얘기까지 들었던 도쿄지검 특수부의 사례를 보면서 우리나라 검찰도 자신들을 돌아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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