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환 Sep 13. 2021

맺음말.

 필자는 언론사 기자 생활을 하면서 약 3년여를 검찰, 법원을 출입했다. 필자가 만나 본 검사 중 많은 수가 정치 얘기를 참 좋아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사건과 관련된 정치권의 반응부터 정치권 당내 투쟁 등 검찰과 직접 관련 없는 얘기까지 정치권 이야기는 취재원 검사들과 친해질 수 있는 좋은 소재였다. 필자의 정치부 경력은 별로 좋지 않은 취재력에도 법조를 계속 출입할 수 있는 하나의 동력이 됐다. 이는 판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정치에 관심 많은 우리 국민들처럼 검사, 판사도 모두 정치 얘기 하는 것을 좋아했다.     

 필자가 출입하는 기간 검찰 수사는 많은 논란에 휩싸였다. 이명박 정부 시절 미네르바, PD수첩, 한명숙 전 총리 사건 등이 대표적이었다. 두 번째로 검찰을 출입했을 때는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과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퇴 등 굵직한 사건이 많았다. 이 때 말 많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도 폐지됐다. 많은 사건들에 대해 정치권은 민감하게 반응했고, 야당이 되면 정치인들은 편파 수사를 주장하며 대검찰청을 자주 항의 방문했다. 검찰의 행위는 정치권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일이 너무 많았다.     

 야심 있는 검사들은 정치권은 물론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건을 맡고자 했다. 조금 친해진 검사들 중에는 유명 정치인이나 재벌 총수를 잡아넣어서 이름을 떨치고 싶어 하는 욕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검사들이 있었다. 검찰 조직에서 이름을 떨친 뒤 정치권으로 진출하고 싶다는 욕구를 드러내는 사람도 있었다. 언론에 묘사되는 자신을 의식하는 검사도 적지 않았다. 정치인들은 다 나쁜 놈이고, 재벌 총수가 감옥에 가면 전문경영인 체제로 바뀌어 기업이 더 투명해진다는 견해를 펼치는 검사도 있었다. 수사가 막히면 언론을 통해 돌파구를 찾기도 했다. 필자도 그런 목적으로 얘기해 주는 정보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사를 쓴 적도 있다. 대부분의 기자는 기사를 주는 사람이 최고라고 여긴다.     

 검찰 고위직들은 누구나 어떠한 정치적 고려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수사한다고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언론에 등장하고, 언론에 교류하는 검사들은 정무적 판단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필자가 오랜 기간 법조를 출입한 것도 아니고 누구보다 검찰을 잘 아는 것도 아니지만 이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을 겪으면서 우리사회는 두 동강이 났다. 2021년 4월에 있었던 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이후 조국 사태는 또 소환됐고, 조 전 장관 수사를 지휘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야권의 유력한 대선 후보로 주목받고 있다. 조국 사태는 단연코 문재인 정부 최대 사건이다. 이 사건을 두고 조국 일가의 비리로 출발해 정권의 수사 방해, 검찰 탄압으로 이어졌다는 시각이 있고, 검찰의 특정한 목적에 의한 표적 수사였다는 주장도 있다. 양 쪽 다 근거가 있다. 수사에 관여한 검찰 관계자가 밝히지 않는 이상 외부에서 정확한 수사 동기를 알기는 어렵다.     

 이 책은 조국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 시간을 좀 더 거슬러 뿌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검찰의 수사 관행과 살아있는 권력을 대하는 태도, 정권과 검찰의 거리감 등을 생각한다면 사태의 본질 파악에 좀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전 정권과 검찰의 관계, 문재인 정부와 검찰의 관계를 비교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더 깊게 우리 검찰 제도의 기원과 검찰 권력의 확대 과정과 그 배경을 살펴보는 것도 문재인 정부에서 일어난 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을 거라고 본다. 우리나라 검찰 제도와 유사한 일본에서 일어난 일과 특수부에 대한 비판도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제공할 수 있다고 봤다.     

 이제 검찰이 정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방법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수사권은 대폭 축소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경찰로 대부분 넘어갔다. 똘똘 뭉치는 검찰의 내부 결속력도 과거와 같지 않게 됐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같은 카리스마 넘치는 구심점도 이제는 다시 나오기 힘들다. 검찰이 정치에 영향을 강하게 미치는 후진국적 현상은 이제 사라지겠지만, 새로운 제도의 안착에 대한 걱정도 크다. 수사 경험이 부족한 새로운 수사기관들이 반부패 역량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생각지 못한 새로운 문제점이 나타날 수도 있다. 우여곡절 끝에 검찰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새로운 제도가 안착돼 우리나라가 점점 수사기관과 정치가 멀어지는 선진국이 되기를 기원한다.     

 이 책은 엄격한 취재기가 아니다. 개별 사건의 중요한 국면마다 면밀한 취재를 한 기록이라고 볼 수 없다. 일종의 관찰기이고, 사실이 아닌 필자의 주장이나 추측에 가까운 견해도 상당 부분 포함돼 있음을 밝혀둔다. 법조 기자를 하던 시절에는 하루하루 검찰에서 나오는 정보가 최고인 줄 알았다. 다른 언론에 특종이나 단독이 보도되면 반드시 그것을 만회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고, 무리한 취재를 한 적도 있다. 그런데 한 발 떨어져서 보니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다른 식으로 볼 수도 있었고, 좀 더 지켜봐야 본질에 다가갈 수 있는 사안도 많았다. 한 발 떨어진 관점에서 검찰을 보는 언론인의 시각을 쓰고 싶었다. 의도는 좋았을 수 있으나 충실한 내용이 담기고 좋은 글을 썼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필자의 능력 부족 때문이다. 탈고를 하고 보니 여러 가지 모자람을 느낀다. 모자람을 채울 수 있는 도움은 언제나 환영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싶었지만, 필자가 아는 게 없어서 쓰지 못한 사건도 많다. 이 책이 세상의 빛을 보고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고 싶은 분이 있다면 꼭 연락을 주시기 바란다. 잘못된 부분이나 지적하고 싶은 내용이 있는 분도 마찬가지다.

이전 26화 #8. 검찰의 정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