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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p Feb 26. 2020

1970년대에도 있던 콩고기가 푸드테크로 불리는 까닭

콩고기의 연원을 찾아보자.

동물을 도축하지 않고 콩과 곡물 등 식물성 재료를 합성해 만드는 식물성 고기가 빠른 속도로 시장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 아이를 둔 젊은 엄마들을 중심으로 일상적으로 소비가 이뤄지고 있는 것. 대표적인 식물성 고기 업체인 임파서블 푸드는 소고기에 이어 돼지고기를 본딴 제품을 내놓으면서 아시아 시장 진출을 도모하고 있다. 

식물성 고기는 현재 최첨단 푸드테크를 이끄는 분야 중 하나이지만 아이디어 자체는 매우 오래됐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콩고기'를 생각하면 그렇다. 수십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식물성 고기가 지금 '푸드테크'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최첨단 기술로 소개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1970년대부터 축산업 문제 대안으로 언급된 콩고기

미국은 카우보이의 나라다. 들판에서 소를 모는 카우보이는 미국의 상징과도 같다. 이들의 식단 또한 상징적이다. 스테이크, 소시지, 햄버거로 대표되는 '콜레스테롤이 가득한' 식단이다. 하지만 이러한 미국에서도 1970년대부터 축산업에 대한 비판과 대체 육류에 관한 관심이 나오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프란시스 무어 루페이 씨가 1971년에 출간한 '작은 행성을 위한 식단'에 이미 이런 내용이 담겨있다. 이 책에서 루베이 씨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식량이 땅에서 생산되지만 분배에는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너무 많은 곡물이 두 다리를 가진 동물(사람) 대신 네 다리 달린 동물(소)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이 무렵 콩고기가 언급되기 시작했다. 1969년 2월4일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인조고기'가 등장한다. 식량 부족으로 인해 인공육이 필요해졌으며, 일본에선 '소아미'라는 이름의 제품이 출시되었다는 내용이다. 독일과 일본은 과거 전쟁 중에 물자 부족으로 식물 단백질을 만들었고, 미국에서는 영양제와 약으로 식물 단백질을 먹고 있다는 내용도 담겨있다. '농어촌개발공사의 최응상 기술고문을 중심으로 인조고기 생산을 서두르고 있다'는 것을 보면 국가 차원에서도 연구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1975년에는 탈지 대두로 콩고기를 만드는 연구가 소개됐다. 해표식용유를 판매했던 동방유량도 식용유 생산과정에서 나오는 대두박을 이용한 콩고기를 시중에 판매했다. 채식이 국내에도 소개되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는 콩고기에 대한 언급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91년 탑엔터프라이즈의 콩고기 광고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쳐

1991년에는 쌀고기냐 콩고기냐 하는 명칭 논란도 있었다. 식품개발연구원이 쌀가루와 콩단백을 3:7의 비율로 섞고 고온고압처리를 해서 인조고기를 만들었는데 이 제품의 명칭을 쌀고기로 정했던 것이다. 콩이 더 많이 들어있는데 쌀고기로 불러서 혼란을 준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 쌀고기의 독점 생산권을 사들인 회사는 제일제당, 그러니까 지금의 CJ인데 쌀고기를 직접 팔지 않고 동그랑땡 등 냉동제품을 만들 때 사용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국내에서는 1980년대까지는 식량부족이나 버리는 자원의 재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콩고기를 연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 이후 남는 자원(쌀)의 소비 활성화, 건강과 개인적인 신념 등에 의한 선택으로 이어진 것이다.



가축 질병 때마다 주목받아

최근 들어서는 각종 가축질병이 수면 위로 떠오를 때마다 콩고기가 신문지상을 장식했다. 1997년엔 미국산 소고기에서 병원성 대장균 O-157이 검출되면서 콩고기 판매가 늘었다. 당시 연합뉴스에 따르면 대장균 사태 이후 고객이 몰려 일매출이 기존 2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다섯 배 뛰었다.


2008년 광우병 괴담이 퍼졌을 때도 콩고기가 주목받았다. 아시아경제 보도에 따르면 밀고기ㆍ콩고기를 주로 판매하고 있는 베지푸드는 2008년 3월 미국산 쇠고기 사태와 AI가 터지기 이전인 2월보다 매출이 2배 증가했다. 베지푸드는 1990년대 후반 만들어진 국내 최초의 비건 식품 전문 회사다. 지금까지도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채식전문 쇼핑몰 비즌의 매출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 이상 상승했다.


구제역 파동이 있었던 2011년에도 콩고기는 반짝 상승했다. 인터넷 쇼핑몰 옥션에서 2011년 1월초 콩고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배 이상 늘어났다.


지금의 식물성 고기가 푸드테크로 인정받는 이유

콩고기가 5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지금의 식물성 고기가 최첨단 기술이라고 보는 이유는 과거의 콩고기와 지금의 식물성 고기가 질적으로 다르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질적 차이를 만들어내는 데 최첨단 기술이 사용됐기 때문이다.


최초의 콩고기는 콩을 활용해 고기 형태를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 콩을 갈아서 고기처럼 얇게 다져진 모양으로 굳히고, 고기 특유의 갈색을 띄게하는 정도였다. 그러다보니 맛과 식감에 문제가 생겼다. 콩 비린내가 난다든지, 고기보다는 버섯에 가까운 맛과 식감을 띈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0년 이후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는 식물성 고기 생산자들은 처음부터 '맛'과 '식감'을 실제 고기와 동일하게 만들겠다는 목표로 사업을 시작했다. 콩을 그냥 갈지 않고, 성분을 분자 단위로 분석해 고기의 맛과 식감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예컨대 임파서블 푸드는 콩을 주 성분으로 하지만 콩을 갈아 다지는 형태가 아닌, 고기의 맛을 내는 뿌리혹의 헤모글로빈 성분을 추출해 사용한다. 식감은 밀 단백질로, 구울 때의 형태는 감자 단백질로, 육즙은 코코넛 오일로 내는데 이 역시 분자를 추출해 사용한다.


패트릭 브라운 임파서블 푸드 CEO가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고기)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면 안 된다. 좋아하는 것과 똑같은 것을 먹되 좀 더 가치가 있는 것을 선택해 달라고 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 것도 맛에 대한 자신감과 과거의 콩고기들과는 다르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구인 컴퍼니의 언리미트

한국에서도 과거의 콩고기를 뛰어넘는 식물성 고기를 생산하겠다는 회사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곡물을 이용한 대체육 '언리미트'를 출시한 지구인컴퍼니, 식물성 고기를 연구하고 있는 디보션 푸드 등이 있다. 이들의 목표도 단순한 콩고기가 아닌, '푸드테크'라는 이름을 달아도 좋을만한 제대로된 식물성 고기다. 


지구인컴퍼니는 언리미트를 미국과 영국이 식품 박람회에 공개한 후 높은 관심을 끌고 있다. 샐러드 전문점 샐러디의 메뉴로 입점했고, 썬더버드와 육그램 등과 협업해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디보션푸드는 지난해 12월 공장을 완공하고, 프랜차이즈 회사 등을 중심으로 납품을 시작할 예정이다.




새로운 발명품은 사회를 변화시킨다. 그중에는 과거에는 전혀 없던 완전히 새로운 발명품이 있는가 하면 과거부터 존재해오던 것을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경우도 있다. 


식물성 고기는 과거부터 존재하던 콩고기에서 연원을 찾을 수는 있지만 지금 '그 옛날 콩고기가 무슨 혁신이냐'라는 식으로 반응해선 곤란한다. 이미 콩고기의 패러다임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육류 애호가 입장에선 관능적으로 더 발전해야할 여지는 남아있지만 말이다.


by Jos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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