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만두

오래된 물건 짤순이

by j 줴이

어릴 적 늘 냉동실에 비치되어 있던 우리들의 간식은 엄마의 만두였다. 냉동실의 만두가 비워질 때면 늘 대형 스테인리스 그릇에 김치, 두부, 당면, 돼지고기 등으로 한가득 소를 만들어 만두를 빚곤 했는데 그 많은 양의 만두를 빚기 위해선 늘 나와 오빠가 대동되어 한바탕 일을 치러야 했다. 한 명은 만두피를 밀어내고 나머지 두 명은 만두피에 소를 채워 넣는 식으로 속도에 맞게 각자 역할을 분담했다. 엄마의 레시피는 돼지고기를 익혀 넣는 것이라 만두를 빚기 전에 간을 볼 수 있었는데 그 때문에 오빠와 나는 만두를 빚어내는 일보다 만두소를 퍼먹는 일에 더 열을 올리곤 했다.

그렇게 퍼먹으면서도 햇수가 쌓이니 오빠는 만두 빚는 일을 지겨워했다. 결국 그 많은 만두를 빚어내야 하는 일에 우리들이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또 만두냐며 입이 댓 발 나오면서도 어김없이 만두소는 그의 입으로 직행하곤 했다.

그 많은 양을 만들기 위해 들어가는 김치는 양념을 털어내고 잘게 썰어 물기를 짜내야 했는데 일일이 손으로 짜내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보다 못한 아빠께서 음식물 전용 짤순이를 사 오신 것은 그 때문이었다.

부모의 부재 이후 배냇 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던 내게 정리해야 할, 해결하지 못한 물건 중 하나는 주방용품이다. 나 시집갈 때 준다고 장롱 위에 모셔두었던 냄비세트부터 요리의 신세계를 위해 새댁이었던 엄마가 구비했을법한 조리용품까지. 모든 존재에 의미부여가 가능한 각각의 물건들은 언제부턴가 나에게 소중히 해야 할 것이 아니라 어서 빨리 정리해야 할 천덕꾸러기가 되고 말았다. 오래된 것은 낡고 빛바래져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서라면 쿨하게 버려야 하는 것이라고 착각했는지 모른다. 시대를 뛰어넘어 그 가치를 아는 것은 물건을 보관하고 다루는 주인에게 그 몫이 있을 텐데 말이다.




진작에 내다 버리기 위해 랩핑 했던 짤순이를 수년 만에 다시 풀어낸다. 오이의 계절 이 여름에 소금에 절인 오이를 짜내 오이지무침이라도 만들어 보련다.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지성인이니만큼 엄마의 짤순이를 활용해보기로.

그때 우리들의 노고로 한가득 만들어진 만두는 냉동실에 보관되어 군만두로 즐겨 먹곤 했다. 애초에 엄마 만두 맛에 길들여진 오빠와 나는 여전히 엄마의 만두를 그리워하고 있다. 입이 댓 발 나올 만큼 지겹도록 만들었으면서도 만두소 퍼먹느라 기억 속의 레시피가 명확하지 않아 우리는 엄마의 만두를 모방할 수 없다. 그것이 함정이다.

*계란 노른자가 날 것으로 들어갔다는 팁을 기억해냈으나 다른 재료의 비율을 모르면 이것 또한 소용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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