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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Jul 05. 2023

나는 잘 먹지 않는다

소식주의자, 가성비 좋은 인간! 소식하면 장수하고 부자가 된다고?

오늘 아들은 감기 몸살로 몸져누웠다. 입맛이 없다는 아들은 언제나 그렇듯 O죽의 전복죽을 찾는다. 아프지 않을 때도 종종 찾는 음식인데 아플 때에는 챙겨 먹지 않으면 왠지 서운한가 보다. 전복죽 하나를 소포장 2개로 나눠 와 점심에 하나, 저녁에 하나 먹었다. 물론 다 먹지는 않았다. 몇 숟가락씩을 남겼고 나는 아들이 남긴 걸 점심 때도 저녁 때도 먹었다. 그리고 약간의 허전함은 소금빵 2개로 달랬다. 그게 오늘 내가 한 식사의 전부이다.  


소금빵 2개가 문제였는지 종일 속이 좋지 않다. 평소라면 아점을 간단히 때우고 저녁을 한 끼 정도 먹는 것으로 나의 식사는 끝난다. 직장에 다닐 때도 점심은 토마토주스나 달걀 아니면 누룽지 등을 먹고 저녁 한 끼만 제대로 먹었다. 아침은 원래 먹지 않는다. 그렇다고 간헐적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처럼 마지막 한 끼를 배 터지게 마음껏 먹는 것도 아니다. 그 한 끼도 평소 내 양 대로 약간의 밥과 반찬을 곁들여 먹을 뿐이다.


그렇다. 나는 자칭 타칭 소식주의자이다. 물론 자의도 타의도 아니며 스스로 그렇게 되길 원한 적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게 된 것뿐이다. 나는 소화 기능이 그다지 좋지 않다. 맛있다고 무리해서 먹으면 꼭 탈이 나서 그 뒤의 여러 끼를 못 먹게 되었다. 소탐대실이 되는 것이다. 또 이미 길들여진 습관 탓인지 배불리 먹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다. 젊을 땐 다이어트를 의식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살이 찌는 체질이 아니다 보니 열성적으로 식이요법을 실천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못 먹어서 안 먹은 것이고 안 먹다 보니 더 못 먹게 된 것이다.


교사 시절이었다. 학년부장 선생님이 나에게 한 말 한마디가 평생 동안 잊히질 않는다.

"김 선생은 옛날로 치면 최고의 며느릿감이야. 식량은 이렇게 조금 축내면서 일은 소처럼 많이 하니 얼마나 좋은 일꾼이야? 하하하."

고3 담임을 맡아 새벽부터 밤 11시까지 온몸이 부서져라 일만 하던 시절이기에 그 말이 귀가 아니라 가슴에 박혔다. '그래, 나는 가성비 좋은 인간이다! 밥은 조금 축내고 일은 소처럼 많이 하는, 지지리 복도 없는 인간 말이야.'하고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래도 가성비 좋은 인간이란 말은 칭찬에 가까우니 위로삼을 만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밥상머리에서 꼭 비난도 아니고 비웃음도 아닌 요상한 반응들을 보였다.

"에게게.. 밥이 이게 뭐야?"

"왜 이렇게 조금 먹어?"

"밥을 안 먹으니 날씬하구나? "

내 입 가지고 내 돈 내고 내 밥 먹는데도 눈치를 봐야만 했다. 회식 자리에서 몰래 술을 탁자 아래에 따라놓는 것처럼 나는 사람들 관심을 받지 않기 위해 밥을 몰래 덜어놓아야 했다. 나는 도저히 밥 한 공기를 다 먹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열이면 열 나를 이상한 사람처럼 쳐다봤고 면전에다 대고 한 마디씩 던졌다. 그래서 나를 모르는 사람들과의 식사는 늘 불편했다. 소식주의자임을 커밍아웃해야 하고 왜 적게 먹는지를 구구절절 설명해야 했으니까.


음식을 많이 먹는 것은 복스럽다고 칭찬하지만 적게 먹는 것은 타박거리였다. 그런데 음식을 많이 먹어서 살이 찐 것은 또 그다지 좋게 보지 않는다. 나처럼 덜 먹고 마른 것도 비난을 받는다. 희한하게도 사람들은 많이 먹어도 살이 안 찌는 것을 최고로 친다. 참으로 가당치 않은 생각 아닌가. 음식이 몸속으로 들어가면 살이 쪄야지 왜 미친 듯 먹고도 먹지 않은 것처럼 다 빠져나가 버리는 게 좋은 것인지 참으로 알 수가 없다. 


엄청나게 마른 데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조금 먹어서 유명한 여자 연예인이 있다. 나도 과자 한 상자가 아닌 한 조각을 먹다 남기는 그녀를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그녀에 대한 대중의 반응도 대체로 놀림거리나 웃음거리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녀도 때문에 어지간히 시달리며 살았겠구나 생각하니 왠지 짠했다. 미디어의 속성상 자극적으로 내보내는 도 있었을 것이다. 정말 극도로 소식하면 영양실조에 걸려 병이 든다. 사람마다 먹는 양, 먹어야 할 양이 다르고 성향에 따라 조금 더 먹고 덜 먹기도 하는 것뿐이지 그녀도 아마 자기 건강을 해치지 않을 만큼은 먹고 있을 것이다.


평생을 딸에 대해 잘 모르는 엄마는 지금도 내게 밥을 더 먹으라 한다. 나보다 키는 20센티 가까이 작은데 몸무게는 더 나갔던 양반이 이제는 나보다 몸무게가 적어졌다. 내 기준으로 보면 키에 비해 적당한 몸무게이건만 엄마는 자신의 목숨이 빠져나가기라도 한 것처럼 매일매일 근심 걱정이다. 먹지 못해도 걱정, 너무 먹어도 걱정! 늘 먹는 것을 지상 최대의 과제이자 고민으로 두고 다. 평생 동안 본인보다 20센티 가까이 큰 딸이 몸무게는 더 적게 나갔었다는 사실을 과연 알기는 할까? 하지만 나는 적어도 나의 소식과 몸무게를 걱정하며 살지는 않았다.


소식을 수치로 여기게 만들려는 사람들의 불편한 간섭에 나 스스로 종지부를 찍은 것은 미즈노 남보쿠의 '소식주의자'를 읽으면서부터였다. 특히 여자에게 먹는 것은 단순히 건강만이 아닌 신체적 아름다움으로 연관 지으려고 하는 사회적 시선이 있다. 복스럽게 잘 먹되 예쁜 몸매를 유지하는 것여자의 미덕인 줄로 아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음식을 먹는 행위에 담긴 보다 숭고한 가치를 배웠고 그것은 나의 이상과 부합했다.


소식도 미니멀라이프의 일환이다. 어쩌면 미니멀라이프의 기본은 먹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간결하고 소박하게 내 몸에 꼭 필요한 만큼만 먹는 것. 맛과 냄새에 현혹되어 음식을 과하게 탐하지 않는 것. 그것은 절제이고 나 스스로를 제대로 다스릴 수 있다는 증거이다.


https://m.blog.naver.com/hajin711/222848913418


소식은 건강과 장수에 좋다는 말은 익히 들었다. 하지만 부와 명예까지 따라온다니 무슨 말인가? 이 책의 지은이는 소식이 왜 인간의 운명까지도 좌우하는지를 꽤 설득력 있게 말해 준다. 결국 핵심은 다시 '절제'이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기 자신의 욕망을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은 건강하고 부유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책의 내용을 여기에 다 담을 순 없지만(위의 블로그에 약간의 내용을 요약해 놓았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읽어보시면 좋을 듯하다.) 이 책을 읽은 후로 나는 꽤 당당해졌다. 소식을 예전처럼 부끄럽게 여기지 않게 되었다. 그간 내가 아낀 음식으로 덕을 쌓아왔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음식을 먹다가 남겨서 버리는 행위, 과식하고 난 뒤 토하거나 혹은 배설물로 내보내는 행위, 그 모든 게 결국은 다 똑같이 버리는 행위인 것이다. 어떻게 포장을 해도 본능과 탐욕의 결과물일 뿐이다. 오늘 내가 버리는 쓰레기와 내 몸에서 나가는 배설물과 함께 나의 복(福)도 하수구로 흘러 나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배곯고 살던 가난한 시절에는 넉넉함이 미덕이었다. 그러니 귀하디귀한 밥을 공기에 고봉으로 가득 퍼서 주는 것이 사랑이었고 그것을 꾸역꾸역 배 터지게 받아 먹는 것이 보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모든 게 과잉으로 넘쳐나고 있다. 사람들이 '미니멀라이프'라는 가치를 새롭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려 하는 것 역시, 이제는 허리띠 풀고 밥을 먹을 게 아니라 허리띠에 닿지 않을 만큼만 먹고 숟가락을 놓아도 충분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수많은 욕망에 지배당한 채 '절제없이' 살아가고 있음을 반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조금 덜 사고 덜 만들고 덜 먹고 덜 버리는 선순환을 만들자. 진정한 미니멀라이프는 먹는 것에서부터 시작이다! 그리고 소식은 건강과 장수뿐만 아니라 부와 명예까지도 따르게 한다니 일석사조가 아니고 무언가? 나는 앞으로도 당당한 소식주의자, 절제할 줄 아는 미니멀리스트로 살려한다.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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