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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Jul 10. 2023

지금의 '나' 돌아보기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고로 나는 나를 창조할 권리도 있다.

나는 진짜 작가?는 아니다. 작가란 소위 등단을 해야 얻을 수 있는 이름일 것이다. 작가가 아니어도 저자는 될 수 있다는데, 나는 아직 출간도 못 했으니 저자도 아니다. 그래도 브런치에서는 나 같은 사람에게 '작가'라는 타이틀을 붙여 주니 이게 웬 횡재인가?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작가님'이란 호칭으로 불리고 있다. '작가 놀이'에 빠진 나는 잠시 현실을 잊고 구름 위를 걷는다. 그러다 내 삶을 찬찬히 되돌아보면 지금의 나는 오랜 세월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만들어져 온 '나'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작가'와 관련이 있는 나의 이력을 굳이 꺼내 보자면 '국어교육과'를 나온 '국어 교사' 출신이라는 것 정도밖에는 없다. 출판사에서 편집자 생활을 한 것도 조금은 연관이 있으려나? 40대에 내가 한 일은 '작가'의 세계와는 천 리쯤은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작가'가 되려는 사람에게는 독이 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행정 업무라는 것은 자유로운 상상력과 창의적인 사고력을 조금씩 말살시켜 나가는 법이다. 물론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계획하는 업무를 하는 분들은 사정이 다르다. 오히려 그런 분들의 머리는 일을 하면 할수록 새롭게 깨어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저 말단 행정 공무원으로 지난 수년간 업무의 정해진 규정과 방법을 익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수행하는 것에만 공을 들여왔다. 무언가를 새롭게 하거나 도전하기보다는 틀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삶이었다고나 할까?


얼마 전 엄마와 대화를 나누다 '주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옛날에는 주산 학원에 다니는 게 유행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나도 친구들을 따라 한 번 가본 적이 있었다. 두 번인가 수업에 참여하고는 울면서 엄마에게 못 가겠다고 한 기억이 있다. 요즘도 교육 좀 시킨다고 하는 엄마들은 주산을 해야 연산이 빠르다면서 아이에게 억지로 주산을 가르치기도 다.  하지만 나는 주산이 싫다. 그러니 아들에게 시킬 생각은 꿈에도 한 적이 없다. 뭐 대단히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주산 학원의 평범한 풍경이 내겐 커다란 공포로 다가왔을 뿐이다.


생님이 새벽 경매 시장의 상인 같은 가식적인 목소리로 숫자를 불러준다. 그러면 수십 명의 아이들이 책상에 앉아서 주판 하나를 코앞에 두고 손가락을 튕겨가며 타닥타닥 주판을 놓는다. 나는 일시에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의 주판 소리에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아이들의 판에 박은 듯한 행동이 아주 소름 끼치도록 무섭고 공포스러웠다. 똑같은 장면을 두고 누군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수많은 아이들이 주판을 일사불란하게 타다닥 놓는 모습이 얼마나 멋있는지 몰라."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획일성이란 것을 끔찍이 싫어했. 더는 그곳에 있는 수많은 동일한 아이들 중 하나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인간성을 말살당한다는 느낌마저 받았다. 돈 내고 들어간 학원을 가자마자 그만둔다고 말하기가 차마 두려웠기에 나는 펑펑 울면서 호소했다. 다행히도 엄마는 나를 더 이상 주산 학원에 억지로 보내지는 않았다. 이후로도 나는 성인이 될 때까지 각종 유사한 공포증에 시달렸다. 수많은 동그라미나 점을 보면 숨이 안 쉬어지고 식은땀이 났는데 그건 환 공포증이라고 했다. 날카로운 것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했다. 피를 보면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쇼크가 오기도 했다. 역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도 숨을 쉴 수 없는 갑갑함과 끔찍한 공포를 느꼈다. 지금이라면 공황 장애라 했을 테지만 옛날만 해도 그런 건 병으로 치지도 않았다. 나는 그냥 스스로 조금 비정상인가 보다 하고 살았다.


출처  Pixabay


나는 예민함이 심해 마음 어딘가에 금이 가 있을 거라고 여겼다. 그러니 언젠가는 반드시 깨져버리고 말 것이라고 비관했다. 어린 시절부터 동경한 예술가나 작가, 배우들은 죄다 요절하거나 자살 사람들이었다. 늘 비극적인 소설에 빠져들었고 인생은 어차피 허무하고 절망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나 역시 그들처럼 일찍 죽거나 정상적인 삶을 살게 될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인지 사는 동안 극단적인 행동들을 더 쉽게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마흔을 눈앞에 두고 나는 뜬금없이 행정직 공무원이 되었다. 조금은 결이 다른 삶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숫자에 멀미하던 나는 수많은 숫자 그것도 돈을 다루는 일을 했다. 이상한 것은 점점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수많은 부품들 중 하나가 되는 것이 예전처럼 혐오스럽거나 공포스럽지 않았다. 이러한 것을 거부하기만 했던 과거의 내가 어떤 면에선 철부지였음을 깨달았다. 우뇌형 인간이 좌뇌형 인간이 되기 위해 발버둥 쳤고 그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나는 바늘처럼 예민한 감성에 찔려 저 혼자 아파하던 날들과 조금씩 이별하기 시작했다.


행정직 공무원이 되고 9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나는 이 모든 삶의 여정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나랑 어울리지 않은 일을 억지로 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어쩌면 내게 꼭 필요한 일을 했던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제야 내 삶은 이성과 감성이 적당히 타협하면서 균형을 이루게 되었기 때문이다. 허공에 떠서 휘젓기만 하던 두 발이 땅에 착지하여 한 발 한 발 내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터져버릴 것만 같던 나의 감성 주머니를 키우고 키워 비범한 재능을 발휘하는 예술가의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철저히 고독하게 생을 마감하게 되지 않았을까? 삶을 평범함이란 그릇 위에 얹어 놓고 적당히 이성과 감성을 함께 버무려 짜지도 싱겁지도 않게 만들고자 했던 나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 결과로 나는 현재의 가정과 평범한 일상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게 신은 감성 위에 이성을 얹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지금 둘 사이에 평형에 가까운 균형점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성의 힘을 통해 나는 작가가 되고자 하는 새로운 꿈도 꾸게 되었다. 과거의 나는 글조차도 쓸 수 없는 인간이라는 자괴감과 원인 없는 불안에 시달렸으니까. 지금의 나는 긴 시간 조각된 '나'이다. 내 의지 반, 신의 이끎 반이 뒤엉켜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미칠 거 같은 감수성과 예민함을 잃은 대신 나는 스스로를 단순한 동물이자 수많은 동일한 인간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좀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평범함에 대한 인식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출발점이 되어 주었다. 그러고 나니 비로소 글도 자연스럽게 쓸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사람마다 살아온 여정은 천차만별이다. 스스로를 이성적인 인간인지 감성적이 인간인지 가늠하는 것도 개개인이 다를 것이다. 평범함과 특별함의 기준이라는 것도 결국은 내 안에 있다. 어떠한 과정에 따라 살아왔는가? 그리고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인가! 그것은 결국 내가 만들어가는 나만의 허상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우리는 다 각자 자기만의 고유성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절대적으로는 한낱 비슷한 인간들 중 하나이지만 상대적으로는 우주 고유의 특별한 개성이 철철 넘친다. 이 이중적인 의미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수용하는 순간 나는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내가 거쳐온 직업들도 내 삶 속에선 다 이유 있는 운명이었다.


감성적이기도 이성적이기도 한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나의 삶은 앞으로 어떤 식으로 조각될까?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지금 이 순간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이다. 살면서 한 번씩은 어떤 식으로 자신의 삶이 조각되어 왔는지를 되돌아볼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동시에 우주 고유의 특별한 자기'와 만날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그럭저럭 잘 살아온 게 아닐까?


지금의 '나'를 돌아보고 '나'를 만나고 '나'를 만들어가자.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고로 나는 나를 창조할 권리도 있다.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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