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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Aug 21. 2023

엄마, 나는 엄마가 화낸 건 다 까먹어

아들을 혼내는 건지? 아들과 싸우는 건지!

아들과 잠자리에서 아주 긴 대화를 나누었다. 자기 직전에 다운증후군 아이에 대한 그림책을 읽었는데 그 내용이 가슴에 남았는지 쉬이 잠에 들지 못하던 아들이 먼저 말을 꺼냈다.


"엄마 나한테 장애가 생기면 어떡해?"

"OO아, 다운증후군은 태어날 때 이미 결정되는 거라서 이제 생기진 않아. 그리고 만약 네가 장애가 있었더라도 엄마는 아무 상관없단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그런 걸 확인하는 검사를 하거든? 특히 엄마는 나이가 많아서 병원에서 할 거냐고 묻는데 엄마가 거절했어. 그 검사를 하면 뱃속에 있는 아이가 놀란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검사하면 뭐 해. 장애가 있으나 없으나 똑같이 너는 너일 뿐인데."

"휴, 그랬구나. 그래도 나는 건강하게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다."

"하지만 살다가 사고로 장애가 생길 수도 있단다. 그런 일이 생겨도 어쩔 수 없는 거야. 극복하고 살아야지. 그러니 평소에 지나치게 위험한 장난은 치지 않는 게 좋겠지?"

"응, 그럴게."


"근데 엄마 나이가 많아서 정말 속상해. 진짜로 아프지 말고 오래 살아야 해!"

"응, 걱정 마. 엄마가 건강 관리 잘하면 오래 살 수 있어."

"지난 학교에서는 친구들이 엄마 나이 듣더니 할머니라고 놀리기도 했어."

"뭐? 친구 엄마한테 그런 말 하면 못 써. 그건 그런 말 한 아이들이 나쁜 거야. 절대로 너는 친구 엄마에 대해 어떤 나쁜 말도 하면 안 돼. 그리고 친구들한테 굳이 엄마 나이 말하지 않으면 되잖아."

"맞아, 엄마는 30대 같으니까 그냥 30대라고 할까?"

"아니지, 그건 거짓말이잖아. 그냥 안 가르쳐주면 되는 거지."


"엄마가 나 아이 낳을 때까지 살 수 있을까?"

"네가 일찍 장가가면 되지. 얼마나 예쁠까, 우리 아들의 아기는."

"응, 내가 일찍 장가갈게."

"그래 일찍 가서 너 같은 아들 꼭 낳아."

"나 같은 아들?"

아들의 표정이 조금 의미심장해진다.

"왜??"

"나 같은 아들이면 쫌 그런데."

"왜?"

"내가 엄마한테 대들듯 내 애도 그래서 당할까 봐."

"푸하하하, 그래? 너 같은 아들 낳아서 엄마처럼 똑같이 당해 봐라. 아주 쌤통이겠다. 푸하하하."

아들의 심각한 반응에 나는 너무 웃겨서 발까지 구르며 아들을 놀렸다.


"근데 OO아, 요즘 네가 엄마한테 많이 혼나잖아. 어릴 땐 이렇게 안 혼냈는데 말이야. 그건 네가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나 되어서 엄마가 예전보다 더 엄하게 하는 것뿐이야. 그리고 세상의 모든 애들은 혼나면서 큰단다. 안 혼나는 애는 없어. 혼나지 않고 크면 좋은 어른이 될 수 없을 거야. 너도 알지?"

"응, 알아. 근데 있잖아. 예전에 학교에서 선생님이 어떤 여자애한테 잘못한 게 있냐는 질문을 했는데, 자기는 잘못을 안 한대. 그리고 한 번도 혼난 적도 없다고 하더라고."

"에.... 진짜? 그럴 리가."

"정말 그렇게 말했어."

"음, 엄마 생각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는 거 같아. 첫째는 선생님이 난처한 질문을 하니까 그냥 쑥스러워서 본의 아니게 거짓말이 나온 것이거나 둘째는 부모님이 엄청 무서워서 정말로 혼날 짓을 전혀 하지 않거나. 후자는 조금 바람직하지는 않겠는데?"

"응, 엄마, 아빠가 너무 무서우면 좀 그렇지."

"근데 엄마도 혼낼 때는 무섭게 혼내는데 넌 아무렇지도 않아?"

"엄마도 무섭지. 나도 혼나면 속상하긴 해. 근데 금방 다 까먹어버려. 엄마가 혼내면 혼낸 내용은 기억하는데 혼낸 건 그냥 까먹어."

"오 진짜? 정말 잘하고 있네, 우리 아들. 그런 걸 일일이 기억하고 있으면 마음이 많이 힘들 거야."

"맞아. 계속 쌓아두기만 하면 언젠가 폭발해 버릴지도 몰라."

"근데 엄마도 그래. 널 혼내도 금세 까먹어. 남이라면 그렇게 자꾸 싸우면 아마 안 보고 말걸?"

"내 생각에 엄마는 그럴 거 같아. 정말로."

"근데 엄마도 너랑 있었던 안 좋은 일들은 다 까먹어. 정말이야. 우리는 부모 자식이라서 그런 가봐. 이제 그만 자자, 아들."

"응, 엄마, 사랑해요."


실제 대화는 더 길었고 여러 가지 주제로 이야기가 뻗어 나갔지만, 그중 약간의 내용만 추려보았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 아들과의 대화로 다시 한번 반성하고 겸허히 배운다. 요즘 들어 부쩍 아이와의 충돌이 잦았다. 아들은 고분고분한 스타일이 절대로 아니다. 매사에 자기 의견과 주장이 있는 편이며 자존심도 무척 세다. 그러니 자기 마음에 들지 않거나 불편한 상황이 닥치면 부드럽게 넘어가거나 양보하기보다는 직설적으로 의사 표현을 해버린다. 물론 아직 뇌가 발달이 된 어린 아이여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반면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조용하고 말이 없고 고분고분했다. 심지어 어떤 친척들은 내가 말을 너무 안 하니 말을 못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의심할 정도였다. 그러니 아들과 나는 기질 자체가 참 많이 다른 것이다.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늘 고민스럽다. 어디까지 어떻게 간섭하고 혼내며 키우는 것이 옳을까? 아이가 세네 살 때부터 훈육이 시작되긴 하지만 그때는 마음이 여유로웠다. 아직 어리니 지나친 훈육은 아이에게 좋지 않으리라 생각하면서 적당히 아이 입장에서 타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니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어린아이이건만 뭔가 이전과는 달라져야만 한다는 강박이 나를 괴롭혔다. 웃긴 건 1학년 때보다 2학년이 되니 그 마음이 더 강해졌다는 것이다. 요즘은 아주 불같이 화를 내며 아이를 혼내곤 한다. 그러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선 '이게 맞나?' 싶어 혼란스럽다. 스스로 '못난 엄마'라는 자책이 올라오고 '아들 키우기는 왜 이렇게 어렵지?'라는 한탄도 동시에 올라온다. 심지어 '나는 러지 않았는데 쟨 도대체 누구를 닮아서 저럴까?' 하는 원망까지 하면서 말이다.


아들은 아무리 혼나도 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에게 웃어주고 나를 안아준다. 참 속도 없는 아이네 하다가도 한편으론 정말 다행이구나 싶다. 어젯밤 대화에서도 아들의 말에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만약 아들이 매일매일 엄마에 대한 화를 가슴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다면 그 무게를 어찌 감당할까 싶어서이다. 다행히 아들은 안 좋은 일은 빨리 흘려보내고 까먹는다고 하니 반갑지 아니한가? 어린 시절 나는 성격이 예민하고 소심해서 엄마한테 혼나면 한참을 구석에 처박혀 삐져 있었다. 절대로 말을 하지 않았다. 반면 엄마는 밥때가 되면 아무렇지도 않게 밥 먹으라면서 나를 불렀다. 그러면 속으로 혼자 욕했다. '혼내지를 말든지 실컷 혼내놓고 아무렇지 않게 저러는 게 어딨어? 그럼 나만 더 억울하잖아.'라고 말이다. 나는 버틸 때까지 버티고 나서야 비로소 화가 풀렸다. 그런데 지금 아들은 나랑 반대다. 쉽게 말해 뒤끝이 전혀 없다는 소리이다.


타고난 성격인지 살면서 형성된 것인지 모르나 나는 덕분에 면죄부를 얻은 듯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그렇다고 맘 편히 더 혼내겠다는 뜻은 아니지만, 혼내면서 이것이 더 큰 상처가 되어 아이 안에 남을까 봐 불안에 벌벌 떨지는 않아도 될 테니 말이다. 참으로 신기한 것이 부모 자식 관계이다. 부부는 돌아서면 남이고 싸우면 상처받는다. 하지만 진짜 칼로 물 베기는 부모 자식 간의 싸움이 아닐까? 먼저 손을 내미는 쪽이 부모일 때도 있고 자식일 때도 있지만 결국 어느 한쪽이 양보하게 되어 있다. 부모에게 혹은 자식에게 자존심을 굽히고 양보한다는 것이 그리 억울할 일도 아니다. 아이도 내가 엄마라서, 나도 아들이 자식이라서 어떤 것도 받아들여지는 게 아닐까?


여하튼 어린 아들과 나는 오늘도 눈에 쌍심지를 켜고 싸운다. 그리고 잠시 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깔깔깔거리며 웃는다. 그렇게 하루하루 아들은 자라나고 나는 늙어갈 것이다. 참, 아들이 나이 든 엄마에 대한 걱정으로 눈물바람을 하니 나는 억지로라도 조금 천천히 늙어가야겠다. 피부과라도 가야 하려나~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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