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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Jun 27. 2024

갓, 모든 처음의 설렘과 두려움

'갓'이 하나씩 쌓여가는 인생이란, 오 마이 갓!

 - 이제 막.


 '갓'이란 부사를 떠올렸을 때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오 마이 갓!' 이토록 매력적인 부사가 왜 이제야 생각이 났을까 싶어서였다. 수개월째 나는 무심히 스쳐 지나가는 부사들을 내 삶으로 초대해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 부사의 말을 벽돌 삼아 글을 지으면서 나는 이 모든 게 운명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처럼 다가와 가슴속에 진하고 깊은 족적을 남기고 떠나는 부사들! 그들이 찍어 놓은 화석 같은 발자국들을 보면서 나는 삶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할 수 있었, 사랑과 용서, 희망과 용기 같은 소중한 가치들을 다정히 품에 안을 도 있었다.


 '갓' 브런치 스토리 작가가 되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의 흥분을 떠올려본다. 세상에 '초심'만큼 깊고 아름답고 순수한 것이 있을까? 첫 소설을 탈고했을 때, 공모전에서 첫 수상을 했을 때, 난생처음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첫 책(비록 공저이지만)이 나왔을 때 느꼈던 설렘과 벅참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나를 압도하고 있다. 글쓰기로 인해 겪게 된 감동적인 경험들이 천천히 하지만 강렬하게 내 삶을 물들여온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떨림과 설렘이 가득한, '갓' 등단한 소설가가 되어 있다.


 이렇게 세상의 모든 '갓'은 경이롭다. 갓 태어난 아기, 갓 입학한 신입생, 갓 입사한 신입사원, 갓 사랑을 시작한 연인, 갓 부모가 된 부부! 이들은 모두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이사 온 새집, 갓 배달 온 택배상자, 갓 지은 밥갓 내린 커피는 또 얼마나 우리를 설레게 하는가? '갓'은 우리의 삶을 황홀하고 충만하게 만드는 신비의 묘약 같은 부사이다.


  갓, 모든 처음의 설렘과 벅참

  오 마이 갓!



 하지만 '갓'에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얼굴이 있다. 낯선 문을 여는 순간은 설레고 흥분되지만, 동시에 너머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으로 숨 막히게 불안하기도 한 것이다. 사는 동안 통과의례처럼 지나왔던 수많은 생의 첫 관문들을 떠올려 본다. 그러면 그 문을 '갓' 열고 나갔을 때의 감정들이 파노라마처럼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탄생, 입학, 입사, 결혼, 출산 등 누구나 비슷한 인생의 대 사건들을 겪으며 살아간다. 너무 좋은 나머지 두려움 따윈 가볍게 걷어차버린 때도 있었고, 지독한 불안에 잠식돼 기뻐할 여유도 없이 가슴만 졸였던 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그날 그때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든지 간에 '갓' 걸음을 내딛는 순간들은 인생선명한 방점을 찍는 것과도 같았다. 그리고 삶이란 결국 커다란 점과 점을 잇기 위해 가느다랗고 소소한 일상의 선을 매일 그어나가는 것이었다.


 '갓'의 경험이 많다는 건 그만큼 인생을 오래 살아왔다는 증거일 것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열 살짜리 아들이 겪은 '갓'과 오십을 바라보는 내가 겪은 '갓'은 그 양에서 엄청난 차이가 난다. 아들에겐 앞으로 살면서 겪어야 할 '갓'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반대로 나는 앞으로 새롭게 경험할 '갓'보다는 추억으로 남을 '갓'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삶은 놀랍게도 새로운 '갓'을 끊임없이 창출해 내는 마법을 부리곤 한다.


 이제는 인생의 중후반부에 접어들었고 더이상 새로운 '갓'이 들어올 여지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랬던 내가 작가라는, 또 소설가라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그리하여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은 '갓'을 다시금 겪게 될 줄은 정말이지 꿈에도 알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갓'이란 우리 삶에 어느 날 갑자기 날아든 '발신인 없는 편지'이고 '낯설지만 아름다운 방문객'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익히 알고 있고 예상하고 있던 일들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더는 말이다.


 그럼 앞으로 새롭게 맞이하게 될 인생의 관문은 또 무엇이 있을까? 아무것도 쉽게 예측할 수 없기에 설레는 동시에 두렵기도 하다. 이십 대에는 내게 남아 있는 시간의 길이만으로도 인생이 광야처럼 넓고 아득하게만 느껴졌었다. 그 광활한 시공간으로 무엇이든지 들어올 수 있고 나갈 수도 있다고 확신했었다. 이제 사십 대가 되었지만 지금도 충분히 여생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갓'이 내게 또다시 찾아올 거라는 희망을 잃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갓'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내 삶 위엔 새로운 색이 한 겹씩 덧칠해질 것이다. 겹겹이 쌓인 유화 물감의 깊이와 질감은 말하지 않아도 그 아름다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지 않았던가? 그러니 모르는 편지도 과감히 펼쳐볼 것이고 낯선 방문객도 기꺼이 환대해 볼 것이다. 그들이 가져올 새로운 '갓'의 경험이 내 삶에 어떤 색을 덧칠해 줄지 알 수 없기에...


 나이가 든다는 건 새로운 '갓'이 하나씩 사라지는 것

 동시에 내 안에 '갓'이 하나씩 쌓여가는 것

 오 마이 갓! 이여,

 또다시 내게로 오라.


출처  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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