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경우에도 첫 문장은 중요하다!
이 연재북은 '내 글이 작품이 되는 법' 시리즈(첫 문장의 힘, 시점의 힘, 묘사의 힘, 퇴고의 힘)의 내용에 제 개인의 경험과 생각을 결합하여 에세이 형식으로 쓴 글입니다. 그러므로 작법에 대한 이론적인 부분은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 책의 내용을 토대로 한 것임을 미리 밝혀 둡니다. 그리고 소설 쓰기에 대한 글이지만, 에세이 쓰기에도 해당하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연재북을 쓰면서 공부하는 중입니다. 함께 성장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즉흥적으로 쓰는 작가여도 구조는 염두에 두어야 한다.
소설을 쓰면서 많이 받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소설의 내용을 미리 다 계획하고 쓰시나요? 그에 대한 저의 대답은 '아니다.'입니다. 저는 플롯을 짜고 쓰는 작가와 즉흥적으로 쓰는 작가 중 어느 쪽에 해당하냐고 묻는다면 후자라고 대답하는 편입니다. 지금까지 대부분 즉흥적으로 떠오른 영감에 의존해 소설을 써 왔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느 쪽이 더 나은 걸까요? 샌드라 거스는 더 나은 건 없다고 말합니다. 각자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이 있을 뿐이죠. 이 말에 안도감이 느껴지지 않나요? 저는 글쓰기 초창기에 저의 방식이 잘못된 건 아닐까 싶어 많이 불안해했거든요. 저의 방식을 직접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비난하는 책을 읽은 적도 있고요. 하지만 소설이든 에세이든 시든, 저의 쓰기는 다분히 즉흥적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그래도 된다고 말해 주는 책을 진작에 만났더라면 훨씬 편안하고 당당하게 글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처음 소설 쓰기 강의를 들었을 때, 소설가님께서는 개요를 일일이 다 짜보라고 시키더군요. 소설이 중간에 산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을 겁니다. 교과서에서 배운 그대로 '발단 - 전개 - 위기 - 절정 - 결말'에 들어갈 내용을 하나하나 정리했습니다. 인물도 미리 정해서 소개해야 했고요. 물론 그 방식도 무척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소설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초보라면 상당히 유의미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늘 그렇게 소설을 써야 했다면 숨이 막혀서 견디기 힘들었을 겁니다. 그때는 소설가님의 지시에 따라야 하는 학생이었기에 시키는 대로 했지만, 저 혼자 습작을 하면서는 틀에 박힌 쓰기 방식을 과감히 버렸습니다. 물론 마음 한편에서는 이렇게 해도 되는 걸까? 하는 두려움을 안고 있었지만요.
지금은 그 불안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습작에 습작을 거듭하면서 나만의 방식을 조금씩 터득해 나가고 있으니까요. 결국, 쓰다 보니 제게 적합한 방법도 찾아지고 저만의 스타일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아가는 듯합니다. 샌드라 거스 역시 즉흥적인 작가에 속한다고 합니다. 중요한 플롯 지점들을 알고 있지만 그 중간에 일어나는 작은 사건들은 전부 글을 써나가는 과정에서 발견한다고요. 저 역시 그러합니다. 대강의 밑그림만 그려놓고서 일단 엉덩이를 붙이고 쓰기 시작합니다. 처음 시작은 철저히 영감에 의해 떠올리고요. 그리고 일단 써나가다 보면 이야기가 스스로 살아서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걸 느낍니다. 예정된 결말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고 애초에 생각하지도 못했던 인물이 새롭게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앞으로 치고 나가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발견하듯 쓰는 것입니다. 비단, 소설만이 아니라 모든 글을 그렇게 씁니다. 에세이도 지금 이 글도!
다만 이렇게 쓰는 방식은 늘 위험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글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 버릴 수도 있고, '시작 - 중간 - 결말'의 비중이 들쑥날쑥 제멋대로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즉흥적으로 쓰는 작가들은 궤도 이탈을 특히 조심해야 하고 분량 조절에도 신경 써야 합니다. 저 역시 습작하면서 늘 위태로움을 느끼는 부분입니다. 그런 작가들에게 샌드라 거스는 말합니다. 글의 구조를 완벽히 이해하고 머릿속에 내재화시켜 놓아야 한다고요. 일일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무의식이 중요한 플롯 지점을 중심 삼아 이야기의 형태를 구성해 나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는 구조에 대해 지식으로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많은 소설을 읽고 쓰면서 스스로 감을 체득해 나가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작(1막) - 설정이라고도 한다. 여기에서는 주인공과 배경, 상황을 소개한다. 곧이어 주인공의 일상을 뒤바꾸는 어떤 사건이 벌어지며 그 결과 주인공은 어떤 목표를 추구하기로 결심한다.
중간(2막) - 충돌이라고 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목표를 향해 노력하지만 점점 더 많은 장애물과 마주하게 되며 이를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
결말(3막) - 해결이라고도 한다. 주인공은 목표를 달성하는 데 성공하거나 혹은 실패한다. 대부분의 소설에서 주인공은 대개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배운 교훈을 밑바탕 삼아 목표를 이룬다.
- 샌드라 거스의 '첫 문장의 힘' 중에서
소설의 1막과 3막이 이야기의 앞뒤에서 약 4분의 1 정도 분량을 차지하고, 2막이 나머지 이야기 절반을 차지해야 한다고 합니다. 즉, 서두는 이야기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는 거지요. 장르의 특성에 따라 더 짧아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서두가 지나치게 길어지는 건 좋지 않습니다. 장황하게 느껴지고 독자가 싫증을 낼 수도 있으니까요. 소설만이 아니라 모든 글이 다 그럴 겁니다.
어떤 글을 쓰든 분량에 대한 부분은 무시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한 편의 에세이, 한 편의 소설! 어느 정도 적정 분량이라는 것이 있지요. 저는 에세이도 소설도 A4 용지로 옮겨서 늘 분량 체크를 하면서 씁니다. 너무 길지도 너무 짧지도 않게요. 그렇게 해야 분량에 대한 감이 형성됩니다. 시작과 중간, 끝을 어떻게 나눌지에 대해서도요. 감은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라 연습에 의해 생기는 것이니까요.
특히 소설의 경우 단편소설에서 요구하는 게 원고지 70~80 매입니다. A4로는 10장 전후(글씨 크기 10포인트 기준)입니다. 이 분량에 맞춰 소설 습작을 하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초단편의 경우는 아주 짧은 것도 가능하지만 대개 원고지 20~30매를 기준으로 삼으니 A4 2장 전후면 족하고요! 좋은생각 생활문예대상에서 요구하는 에세이의 분량은 겨우 A4 1장 정도입니다. 제가 쓴 '부사가 없는, 삶은 없다'라는 에세이는 한 글당 A4 2장 전후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혹시 책을 가지고 계시다면 그게 책으로 나왔을 때의 분량이니 비교해 보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참고로 지금 이 글도 A4 3장이 조금 덜 되고 원고지로는 24매가 조금 넘네요. 글의 특성상 일상 에세이보단 약간 깁니다. 앞으로도 이 정도 분량을 지켜보려고 합니다.)
요즘 긴 글을 읽기 힘들어하는 분위기지요. 너무 길거나 짧게 쓰는 것보단 적정 분량에 맞춰 쓰는 연습을 하면서 분량과 구조를 몸에 배게 하는 것도 요령일 듯합니다. 분량에 대한 기준을 잡기 모호하다면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공모전 요강을 살펴보시고 그 기준에 맞춰 연습하시는 것도 좋습니다. 그럼 습작들을 퇴고하여 실제로 공모전에 제출하실 수도 있을 테니까요.
첫 문장과 서두의 중요성은 말로 하기 입 아플 정도이다.
첫 문장과 서두의 중요성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입니다. 모든 글은 서두에서 판가름이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서두가 매력적이지 않다면 독자들은 더이상 읽으려 하지도 않을 겁니다. 그래서 서두 쓰기는 무척 중요하고도 어렵습니다. 샌드라 거스는 말합니다. 서두를 무조건 처음에 쓰려고 애쓰지 말라고요. 이건 소설만이 아니라 모든 글에 해당할 것입니다. 중간 지점부터 쓰다가 나중에 서두를 써도 좋고 서두부터 끝까지 다 쓴 후에 처음으로 돌아와 다시 고쳐 써도 좋습니다. 아예 서두를 맨 마지막에 집필해도 되고요. 저 같은 경우는 다 써 놓은 후에 뒤에 있던 내용을 서두로 옮겨 위치를 뒤바꿔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서두가 중요하다고 해서 서두를 쓰는 데에만 너무 매달릴 필요는 없다는 말이지요. 오히려 그런 접근은 서두만 거창하게 쓰다가 글이 중단되어 버리는 사태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말 그대로 용두사미가 되는 거지요.
사실 저는 주로 영감에 의한 소설 쓰기를 하다 보니 서두를 나중에 쓰는 경우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신춘문예 당선작의 경우에도 첫 문장을 쓰고 나서부터 본격적인 소설 쓰기가 시작되었으니까요.
'발가벗은 아이였다.'
어느 날 목욕을 하고 맨몸으로 걸어 나오는 아이를 본 순간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발가벗은 아이였다.'라는 문장으로 소설을 시작했지요. 그 뒤에 대강의 내용을 구상했고 일단 쓰기 시작하면서 세부적인 내용을 발견해 나갔습니다. 당선의 실질적인 견인 역할을 했던 '우는 여인'이란 제목과 피카소의 작품 '우는 여인'은 오히려 소설을 다 완성하고 나서 퇴고하는 과정에 집어넣은 것입니다. 처음부터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 소설을 구상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그건 아니었던 거죠! 모든 글은 고쳐 쓰면서 얼마든지 변신시킬 수 있기에 주저하지 말고 일단 쓰기 시작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첫 문장이나 서두의 힘은 강력해서 늘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합니다. 그리고 퇴고할 때에도 마지막까지 다시 봐야 할 부분이고요. 그럼 다음 시간엔 소설의 서두 쓰기에 대해 좀 더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래의 질문들을 자기 자신에게 꼭 던져 보세요. 그리고 자신이 쓴 글의 서두 부분을 다시 보고 얼마나 매력적으로 썼는가 스스로 판단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나는 플롯을 짜고 쓰는가? 아니면 즉흥적으로 쓰는가?
나는 구조를 염두에 두고 쓰는가? 아니면 생각나는 대로 쓰는가?
나는 ‘시작 – 중간 – 결말’의 분량을 고려하며 쓰는가?
나는 서두를 언제 쓰고 얼마나 중시하고 있는가?
나는 서두를 잘 쓰기 위한 나만의 방법을 가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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