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에는 완수할 임무가 있다 1

독자의 마음을 낚아라. 주인공을 소개하라. 사건의 한복판에서 시작하라.

Nov 8. 2025

이 연재북은 '내 글이 작품이 되는 법' 시리즈(첫 문장의 힘, 시점의 힘, 묘사의 힘, 퇴고의 힘)의 내용에 제 개인의 경험과 생각을 결합하여 에세이 형식으로 쓴 글입니다. 그러므로 작법에 대한 이론적인 부분은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 책의 내용을 토대로 한 것임을 미리 밝혀 둡니다. 소설 쓰기에 대한 내용이지만, 일반적인 글쓰기에 대한 팁도 얻을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연재북을 쓰면서 공부하는 중입니다. 함께 성장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샌드라 거스는 서두에서 완수해야 할 임무로 다음 열 가지를 제시했습니다.

1. 독자의 마음을 낚고 관심을 붙잡아둔다.

2. 주인공을 소개한다.

3. 행동으로 시작한다.

4. 책의 어조를 비롯하여 책에 대한 다른 기대치를 설정한다.

5. 시간과 장소를 확립한다.

6. 시점을 확립한다.

7. 인물이 달성해야 하는 목표와 실패의 대가를 소개한다.

8. 이야기의 갈등에 시동을 건다.

9. 주인공의 인물 궤적을 준비한다.

10. 이야기의 결말에 대한 전조를 마련한다.

이번 글에서는 1~3에 대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다음에 4~10을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독자의 마음을 낚으려면 긴급한 의문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끌리지도 않았다.

한강, '채식주의자' 중에서

'채식주의자'의 시작 부분입니다. 독자를 낚기 위해선 마음속에 '궁금증'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우리는 이 소설의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아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더불어 채식을 시작한 후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도 궁금합니다. 끌리지도 않는 여자와 결혼하여 사는 '나'도 궁금하고요. 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독자는 계속해서 책을 읽게 되는 것이지요.

독자를 낚는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래서 첫 문장이 효과적입니다. 적어도 첫 문단에 반드시 낚시를 포함시키는 게 좋습니다. 낚시가 갖추어야 할 요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독자가 의문을 가지게 한다.

호기심을 자극하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혼란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이야기의 나머지 부분과 부합해야 한다. 아니면 독자는 속았다는 기분을 느낀다.

탄탄하게 조여 쓴다. 간결하고 분명하며 상대적으로 단순한 편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럼 독자의 관심을 계속해서 잡고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좀 더 많은 낚시를 던지는 것입니다. 의문에 해답을 주면서 동시에 또 다른 의문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하지만 의문만 계속해서 던지고 풀어주지 않으면 독자는 싫증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답을 제시하는 한편 의문 몇 가지를 남겨두는 방식으로 새로운 의문을 연쇄적으로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특히, 장면이 끝나는 곳에 '클리프행어 cliffhanger'를 만듭니다. 절벽에 매달린 사람을 상징하는 클리프행어는 장의 끝부분에 등장하는 낚시를 말합니다. 궁금증 때문에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죠.

장면이 끝나는 곳에서 독자를 낚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아래 선택지들을 적절히 활용하면 됩니다. 매번 똑같은 방법을 사용하지 말고 적절히 바꾸어 쓰는 게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무언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게 한다.

주인공이 새로운 결심을 한다.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주인공이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거나 깨닫는다.

독자에게 무엇이 위험에 처했는지를 환기시킨다.

주인공이 새로운 장애물을 마주한다.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새로운 상황이 발생한다.

미래에 일어날 곤란한 상황을 암시한다.

지난 이월 어느 새벽 아내가 잠옷바람으로 부엌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할 때까지, 나는 우리의 생활이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으리라고 상상한 적이 없었다.

한강, 채식주의자 중에서

이 대목은 '채식주의자' 1장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미래에 일어날 곤란한 상황을 암시하며 끝을 맺었지요. 독자들은 지난 이월 어느 새벽의 일과 그 뒤에 달라진 생활이 궁금해서 다음 장을 읽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쉽게 말해, 모든 상황이 깔끔하게 정리되며 끝나면 절대로 안 됩니다. 더이상 뒷 내용이 궁금하지 않게 끝나는 경우, 독자들은 거기에서 책장을 완전히 덮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무언가 새로운 일이 일어나게 만들며 끝내십시오.

그런데 지나치게 자주 클리프행어를 사용하면 효과가 무뎌지고 독자가 짜증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매번 깜짝 놀랄 만한 사건으로 끝내지는 않아도 됩니다. 단지 독자의 마음속에 해결되지 않은 의문이 한 가지 이상 남아 있기만 해도 됩니다. 단, 지금까지 누누이 반복했듯 독자를 잡아두기 위해선 1장이나 1막의 끝에 특별히 더 신경 써야 합니다.

흥미로운 모습으로 주인공을 소개한다.

알을 까고 나온 새는 처음 만난 존재를 어미라고 느끼지요.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자는 처음 만나는 인물과 유대감을 형성하고 그 인물을 주인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첫 장면에서는 주인공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주인공을 소개할 때는 흥미로운 일을 하는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주인공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갈등에 직면하거나 재미있는 대화를 나누게 하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의 성격을 보여 주되, 말로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행동과 대화, 생각, 몸짓언어를 통해 보여주도록 합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 길지도 짧지도 않은 단발머리, 각질이 일어난 노르스름한 피부, 외꺼풀 눈에 약간 튀어나온 광대뼈, 개성있어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한 무채색의 옷차림. 가장 단순한 디자인의 검은 구두를 신고 그녀는 내가 기다리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힘있지도, 가냘프지도 않은 걸음걸이로.

한강, 채식주의자 중에서

이 구절은 채식주의자에서 아내의 첫인상을 묘사한 부분입니다. 지극히 평범한 외모를 지녔고 행동 역시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다는 걸 부각하고 있지요. 그런데 지나치게 그런 면만 강조해서 그럴까요? 독자들은 그녀가 평범하다기보다 무언가를 은밀하게 숨기고 있는 인물이 아닐까 의심하게 되지요. 대단한 사건을 보여주지 않고도 처음부터 묘한 긴장감이 느껴지게 하고 있습니다.

서두에 주인공에 대한 모든 것을 드러내지 않는 게 좋습니다. 현실에서 사람을 만나 알아가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독자가 인물을 만나 서서히 알아가도록 만듭니다. 주인공의 장점이나 능력을 보여주고 두려움이나 결점, 내면의 문제 등도 암시합니다.

이십대 중반부터 나오기 시작한 아랫배, 노력해도 근육이 붙지 않는 가느다란 다리와 팔뚝, 남모를 열등감의 원인이었던 작은 성기까지, 그녀에게는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한강, 채식주의자 중에서

또한 심리 묘사를 통해 독자가 인물의 감정을 함께 들여다보도록 만듭니다. 채식주의자에서 '나'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그녀에게 지나치게 무심했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독자는 '나'와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볼 수 있고 그 둘의 결혼생활에 대해서도 상상해 볼 수 있게 되지요.

독자가 주인공에게 호감을 느끼고 마음을 쏟게 만들어야 합니다. 즉, 감정적 유대감을 형성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죠. 그러려면 주인공이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합니다. 주인공에게 감탄할 만한 특징을 부여하거나 아니면 동정심을 느낄 만한 상황에 던져 넣습니다. 독자가 공감할 만한 감정을 주인공이 경험하게 하는 것도 좋습니다. 무엇보다도 주인공을 움직이는 동기를 독자가 이해하게 해야 합니다. 제 신춘문예 당선작 '우는 여인'의 주인공은 정체불명의 아이를 데리고 무작정 길을 떠나는데요. 자식을 잃은 고통과 상실감에 허덕이던 주인공이었기에 그런 행동을 해도 독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서두에서는 주인공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들도 소개해야 합니다. 주인공의 연애 상대라거나 적대자 또는 다른 주요 인물들을 소개해야 합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에서는 아내인 '그녀'와 화자인 '나'를 동시에 소개하고 있지요.

단, 첫 장면에 조연을 등장시켜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독자를 사건의 한복판에 던져 넣어 함께 경험하게 한다.

소설은 재미를 느끼기 위해 읽습니다. 그러니 과거의 어떤 정보를 아는 것보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직접 경험하고 싶어 합니다. 정보를 잘라 내고 행동과 대화를 눈앞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설명은 나중에 서서히 채워 넣어도 됩니다. 거대한 사건이 벌어지는 순간까지 독자의 관심을 사로잡아야만 합니다. 만약 정보의 무덤에 파묻혀 버리면 독자는 지겨워서 읽기를 그만두고 말 겁니다. 배경 이야기와 사건이 적절히 뒤섞여 가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향후 배경 이야기와 묘사를 적절히 섞는 방법을 다시 다룰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