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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소설의 서두는 어떻게 쓰나요?

주인공을 보여줘라. 공감하게 하라. 행동하게 하라. 계속 궁금하게 하라

by 소위 김하진

이 연재북은 '내 글이 작품이 되는 법' 시리즈(첫 문장의 힘, 시점의 힘, 묘사의 힘, 퇴고의 힘)의 내용에 제 개인의 경험과 생각을 결합하여 에세이 형식으로 쓴 글입니다. 그러므로 작법에 대한 이론적인 부분은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 책의 내용을 토대로 한 것임을 미리 밝혀 둡니다. 소설 쓰기에 대한 내용이지만, 일반적인 글쓰기에 대한 팁도 얻을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연재북을 쓰면서 공부하는 중입니다. 함께 성장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소설의 서두는 어떻게 써야 할까요? 저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생각을 정리하면서 스스로 많이 반성했습니다. 그동안 막연히 떠오르는 대로 혹은 내키는 대로 서두를 써 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소설의 서두에는 어느 정도 정해진 틀과 공식 같은 것이 있다는 걸 전혀 고려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도 제가 소설을 창작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부터 무수히 읽어 온 소설의 구조가 무의식 속에 내재화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종의 '감'이란 게 생겨났던 것이죠. 하지만 이번에 소설의 서두에 대해 공부하면서 그렇게 막연하고 뜬구름 잡는 방식에선 그만 벗어나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럼 오늘은 서두를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샌드라 거스는 서두를 구성하는 요소로 다음 네 가지를 제시했습니다. 이 네 가지 요소들은 서두를 구성함에 있어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어야 합니다.

일상 세계

격변의 사건

소명의 거부

되돌아오지 못하는 지점


주인공의 일상 세계를 지루하지 않게 보여 준다.


일단 소설은 주인공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때 주인공에 대해 말로 설명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대화나 행동, 모습 등을 통해 독자에게 '보여줘야' 하지요.(보여주기 방법은 추후에 더 자세히 다룰 예정입니다.) 그러면서도 독자가 주인공에게 유대감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주인공에게 호감이 생기지 않는다면 이후에 펼쳐질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기는 힘들 테니까요. 또한 주인공이 어떤 인물인지 보여줌으로써 소설의 결말에 가서 얼마나 크게 변화했는지를 대조적으로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 기준점을 마련해 주는 것이 바로 서두의 역할이죠. 만약 비슷한 상황이 서두와 결말에 동시에 등장한다면, 주인공이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음을 더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겠지요.


주인공의 일상 세계를 많이 보여주다 보면 자칫 지루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짧게 줄여야 합니다. 평범한 일상은 과감히 생략하고 흥미로운 모습 위주로 그립니다. 그리고 뭔가 사건이 일어날 것을 암시함으로써 독자에게 의문이나 궁금증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소설이 늘어지지 않도록 즉시 주인공이 '무언가'를 원하게 만들고 목표를 가지게 합니다. 주인공이 문제에 대처하는 모습을 통해 성격을 드러내고 결점이나 두려움, 잘못된 신념 등을 보여줍니다. 이를 통해 주인공의 상태가 현재 그대로 지속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즉, 주인공에게 변화가 꼭 필요함을 설득력 있게 보여줘야 하는 것입니다.


일상 세계는 짧게, 격변의 사건으로 돌입한다.


'격변의 사건'이란 주인공이 일상 세계에서 벗어나 인생을 변화시킬 만큼 중대한 의미를 지닌 사건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건은 주인공이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이거나 더 나은 인생을 살기 위해 잡아야 할 '기회'의 형태를 지닙니다. 그리고 주인공이 이러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감정의 반응을 일으켜야 합니다. 소설에서는 심리 묘사가 매우 중요합니다. 단순히 사건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이 자연스럽게 드러나야만 독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일상 세계는 되도록 짧게 제시하고 즉시 격변의 사건으로 돌입하는 것이 좋습니다. 서두에서 주인공을 소개하거나 배경을 설명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사이 독자는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책장을 덮어 버릴지도 모릅니다. 많은 것을 한꺼번에 알려주려고 하지 마세요. 주인공에 대한 설명은 나중에 다시 해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실제로 저는 소설을 쓸 때 격변의 사건과 관련 있는 주인공의 과거나 배경 이야기를 뒤에 배치하기도 합니다. 한꺼번에 풀어놓기보다 양파 껍질 까듯이 하나씩 보여주는 것이 소설의 재미를 높여 준다고 생각합니다. 신춘문예 당선작 '우는 여인'의 경우에도 발가벗은 아이가 등장하고 주인공이 정체불명의 아이를 맡아 보살피는 것으로 소설이 시작됩니다. 주인공의 아이가 사고로 죽었다는 사실은 그 뒤에 가서 밝혀지지요.


일상 세계를 과감히 생략하고 격변의 사건으로 먼저 돌입할 때는, 앞뒤 맥락이 없어도 이해할 만한 사건인지 판단해야 합니다. 어느 정도 전후 사정을 알려주고 주인공과 깊은 유대감을 쌓아야만 강력한 충격을 줄 수 있는 사건이라면, 시간을 할애해서라도 일상 세계를 충분히 보여주는 게 낫습니다. 어떤 방법이 더 유리할지는 소설의 내용에 따라 면밀히 판단해 봐야 할 일이겠지요. 신춘문예 당선작 '우는 여인'의 경우 주인공이 처음부터 낯선 아이를 납치하듯 데리고 떠났다면 독자의 공감을 얻기 힘들었을 겁니다. 아이를 잃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주인공의 과거를 보여 주고, 정체불명의 아이를 죽은 아이로 착각하는 사촌 언니를 등장시킴으로써 주인공이 아이를 데리고 떠나는 행동에 설득력을 부여했던 것이죠!


소명을 거부하는 주인공의 성격에 공감하게 한다.


격변의 사건에 대한 주인공의 감정을 드러내야 합니다. 변화를 꺼려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에게는 변화가 그다지 힘들지 않은 일일지라도, 주인공이 지닌 성격적 특성이나 한계 때문에 변화를 두려워한다는 것을 보여 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격변의 사건에 대한 주인공의 행동에 선택의 여지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아이를 납치당한 엄마라면 고민이나 망설임은 아주 짧고 당장에 아이를 구하기 위한 행동에 돌입하는 게 맞겠지요.


책에서 예로 든 <헝거 게임>의 캣니스는 여동생 대신 조공인으로 자원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다만 내면에서는 자신이 헝거 게임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용기가 있는지 등을 고민하지요. 변화 앞에서 두려워하거나 자기 회의에 빠지는 주인공이 훨씬 더 인간적으로 느껴집니다. 이런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은 주인공의 성격을 좀 더 분명히 파악함과 동시에 주인공의 고뇌에 깊이 공감할 수 있게 될 겁니다.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만들어 긴장감을 형성한다.


주인공이 새로운 목표에 돌입하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어야 합니다. 독자들 역시 주인공이 더이상 행동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비현실적인 일이라고 느껴야 합니다. 언제든 돌이킬 수 있는 일이라면 주인공의 선택이나 뒤에 일어나는 사건에 공감하기가 힘들어질 테니까요. 주인공은 자신이 건너온 다리를 스스로 불태워 없애 버려야 합니다. 즉, 실제로 되돌아가지 못하게 해야 하며 새로운 목표에 헌신하게 해야 합니다. 강력한 동기가 있기 때문에 목표를 위해서라면 어려움이나 위험에 처하기도 해야 하고요. 그래야 읽는 사람들에게 긴장감이 생기겠죠. 다시 저의 신춘문예 당선작 '우는 여인'의 예를 들면, 주인공이 아이를 납치하듯이 데리고 떠나 버립니다. 소설 속에선 실제로 다리를 건너가기도 하지요. 이후로 휴대 전화도 꺼 버리고 아이와 단 둘이 여행을 합니다. 정체불명의 아이를 유괴하는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질러 버린 거지요.


그리고 주인공의 선택과 결정으로 인해 또 다른 사건들이 촉발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이야기를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습니다. 독자들이 주인공의 선택을 함께 목격하고 주인공이 과연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소설을 계속해서 읽게 만드는 힘이 되어줄 테니까요. '우는 여인' 속 주인공은 아이를 정말로 유괴해서 키울까? 아니면 부모를 찾아줄까? 아이의 상태는 괜찮은 걸까? 그런 궁금증들을 가지고 소설을 끝까지 읽게 되는 것이죠.


격변의 사건과 되돌아갈 수 없는 지점은 아주 가까울 수도 있고 멀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주인공이 얼마나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느냐와 연관이 있습니다. 절박한 상황이라면 모든 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주인공은 즉시 행동에 돌입할 것입니다. 아니라면 여러 사건들을 통해 주인공을 돌이킬 수 없는 지점까지 몰고 갈 수도 있습니다. 그건 소설의 내용에 따라 달라져야 하겠죠!


에세이의 화자인 작가도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야 한다.


에세이에서는 말하는 이가 작가 자신입니다. 모든 장르의 글이 마찬가지겠지만 화자에 대해 공감하게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공감할 수 없다면 글을 끝까지 읽기가 매우 힘들어질 테니까요. 에세이에서는 주로 작가 자신이 어떠한 사건으로 인하여 깨달음을 얻거나 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소설의 서두와 마찬가지로 작가 자신이 지닌 내면적 한계나 두려움, 자기 회의 등을 먼저 드러내 주면 좋겠지요. 그리고 결말에 가서 자신의 변화된 모습이나 달라진 행동 양식 등을 보여 준다면 보다 인상적으로 주제를 전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글에선 서두의 요소 네 가지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다음 시간엔 서두에서 꼭 해야만 하는 '열 가지 임무'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래의 질문들을 자기 자신에게 꼭 던져 보세요. 그리고 자신이 쓴 글의 서두 부분을 다시 보고 얼마나 매력적으로 썼는가 판단해 보면 좋겠습니다.


주인공에 대해 말했는가? 보여줬는가?

주인공의 일상 세계를 지루하지 않게 보여 줬는가?

독자로 하여금 주인공에게 호감을 느끼고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들었는가?

주인공이 격변의 사건 앞에서 보이는 감정적인 반응을 잘 그려냈는가?

주인공이 격변의 사건 앞에서 내린 선택과 행동이 돌이킬 수 없음을 드러냈는가?

서두를 긴장감 있게 그려냈는가?

이어질 사건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는가?




초단편소설집 '돈 워리'가 밀리의 서재 메인에 올라갔습니다.

밀어주리는 4위까지 올랐네요. 감사합니다!

1단계에서는 밀리의 서재 내부에서 심사하여 우수작품을 선정했습니다.

2단계에서는 밀어주리와 댓글 수로 다시 한번 더 우수작품을 선정한다고 합니다.

참으로 끝이 없지요?

2단계에서도 우수작품으로 선정될 시, 추가 상금과 함께 밀리의 서재 측에서 직접 전자책이나 종이책 출간을 검토한다고 해요. 응원 부탁드립니다.


새로운 에피소드가 올라갔습니다. 개인적으로 무척 아끼는 소설입니다.

회원가입만 하면 무료로 읽으실 수 있습니다.

맘에 드셨다면 밀리의 서재에 댓글 부탁드려요. (밀어주리는 한 번만 하면 끝!! ^^ 밀어주리 1000명이면 책이 됩니다! )


https://short.millie.co.kr/wqhjq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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