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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Apr 03. 2023

거짓의 나를 버리고

마음을 잃다

기억 속에 있는 나란 사람은 어릴 때부내성적이고 혼자 있기를 좋아했으며 어두웠다. 그럭저럭 문제를 감추고 지내오던 내가 마음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만 건 대학 시절이었다. 끝도 없는 우울의 늪에 잠긴 채 일상이 온통 잿빛으로 물들었다. 당시엔 '우울증'이란 병을 사람들이 잘 모르던 시절이었다. 돌이켜보면 지인들은 나를 아주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나 자신도 병이라는 생각은 못 했고, 어딘가 고장 나버린 내 영혼을 그냥 자책하며 살았다.


우울감이 극심해졌을 땐, 자취방과 학교만 간신히 오가며 생활할 뿐 사람들과의 교류를 일절 단절해 버렸다.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졸업 여행도 가지 않았고, 졸업 앨범도 찍지 않았다. 많은 기억들이 짙은 어둠에 흡수되어 뿌옇게 흐려져 버렸고, 실제로 그 시절의 기억들은 몇 장면 남아 있지도 않다. 아무하고도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 피해 다녔고, 어두운 자취방에 늘 자신을 가두어 두었다. 사람들을 극도로 꺼려했고 이유 없는 불안과 두려움에 떨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집으로 되돌아가기 전날 밤이었다. 자취방에 있던 모든 짐을 방 한가운데 싸놓고 짐더미 위에 앉아 밤새도록 고민했다. 이대로 영원히 아무도 모르는 어딘가로 떠나버리는 게 어떨까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아무리 괴롭고 우울감이 극에 달해도 나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저버릴 수는 없었다. 부모님에게 나는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이었다. 나는 아무런 의지가 없이도 관성적으로 모든 일을 해낼 수 있었다. 학교도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고 임용고사에도 합격했다. '죽고 싶다, 어디로든 떠나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지만 실행에 옮길 만큼 용기 있지는 않았다. 자신을 버리지 못하는 나약함과 자신을 속일 수 있는 지독함을 경멸하면서 그렇게 마음을 외면한 채 살았다.


깊고 긴 어두운 터널을 지나오면서 치료를 받거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는 못했다. 사회적 가면을 쓰고 내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해 나가며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듯 지냈다. 그때 만약 내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면 꽃다운 청춘이 암흑 속에 파묻혀버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마음을 잃은 채 너무 오래 살았기 때문일까? 결국 서른이 넘은 어느 날, 나는 모든 걸 버리고 빈손으로 집을 떠나고야 말았다.


원작  Journal of a Nobody, 모작 무아


인생의 결정적인 변화는 너무나 평범하고 시시한 순간에 일어나기도 한다. 그날도 여느 때와 똑같았다. 나는  밝고 활기차고 가벼웠다. 아니 그러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런 내게 아이들이 투명하게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 같아 보여요!"

'내가 행복하다고?'

순간 등줄기에 땀이 날 정도로 당황스러웠고, 세상으로부터 내가 완전히 분리되어 버리는 느낌을 받았다. 위태롭던 나의 유리성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내려 버렸다. 아이들에게 나의 어둠을 들키지 않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나란 사람은 이렇게도 나 자신을 속이고 살아가는데 능숙한 사람인가 하는 자괴감이 밀려 들어왔다. 나는 오랜 시간 자신의 감정을 외면해 왔고 슬픔이나 아픔 같은 부정적 감정은 남에게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상황에서도 거짓 웃음을 지었고 그 웃음은 누군가에게 진정한 행복으로 비칠 수 있을 만큼 완벽했던 것이었다. 나는 어둠을 숨긴 정도가 아니라 빛으로 보이게 하는 지독한 거짓말쟁이가 되어 있었다. 내가 나를 속이는 삶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


그날의 충격 이후, 나는 잃어버린 마음과 멈추어버린 인생을 되찾아야 한다는 결심을 굳혔다. 나를 속이고 가면을 쓴 채 연기하며 살 바에는 모든 걸 원점으로 되돌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 순간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밀물처럼 밀려들어와 내 온몸과 마음을 적셨다. 그런 고뇌 끝에 수녀가 되기로 하였다.  


직업을 버리고 신변을 정리하고 나의 소유로 되어 있는 것들은 아주 작은 물건 하나하나까지도 버리거나 주거나 했다. 만약 내가 불치의 병에 걸려 죽게 된다면 서른두 살 때 내가 했던 일들을 그대로 반복하면 될 것이다. 그렇게 수녀가 되는 것은 단순히 여기에서 저기로 삶을 옮겨가는 과정이 아니었다. 이 생에서의 삶은 죽어 없어지고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과 비슷했다. 마음을 잃고 사는 동안 한시도 불안에서 벗어나본 적 없던 나는 수녀원에서 비로소 온전한 평온을 느꼈다. 내 안에 침잠되어 살았던 외로운 내게 세상의 모든 만물이 손 내밀어 인사하고 말을 걸어주었다. 내가 있는 모든 곳에 신의 사랑이 깃들었고 그렇게 나는 마음을 다시 되찾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씩...


그러나 신은 예측조차 할 수 없는 깊은 뜻을 가지고 우리 삶의 방향을 틀어버리곤 한다. 수녀가 될 모든 준비를 마쳤으나 수녀가 되지 못한 것이다. 모든 걸 버린 나는 빈손으로 광야에 홀로 나선 방랑자가 되었다. 그땐 신이 너무도 야속했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내 삶엔 시련이 더 필요했던 것 같다. 수녀가 되어 신의 평화 속에 머물기엔 아직 부족한 사람이었고 치러야 할 시험이 많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서른두 살의 나는 그동안 이루었던 것들과 가지고 있던 모든 걸 버리고 가족도 직업도 돈도 없이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다시 삶을 재건했다. 긴 수감 생활을 마치고 나온 죄수와도 같았다. 어느 날 빈 방에 홀로 누워 있으면 외로움과 허무함이 심장을 날카롭게 찌르곤 했다. 그럴 때면 여기서 그만 모든 걸 멈추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위험한 생각이 엄습했다. 그런데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내가 죽어도 나를 찾으러 올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 달이나 두 달이 지난 뒤, 밀린 방세를 받으러 온 주인에게 부패해서 흉측해진 주검으로 발견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진실로 그것이 끔찍하게 싫었다. 그때 당시 절대로 죽을 수 없는 이유는 딱 그거 하나였다. 죽은 뒤의 모습을 걱정하는 자는 어쩌면 삶에 대한 미련이 지독히 많은 사람인 거 아닐까 하며 내가 나를 위로했다. 


그렇게 살아갔다. 하루하루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나는 마음을 되찾아 가기 시작했다. 삶의 극단으로 내몰린 상황은 그 이후 곱씹고 곱씹어도 내겐 독한 인생공부였다. 물론 누구나가 겪는 일일 수도 있다. 살다 보면 어떤 상황에서든 스스로 최악이라고 느끼는 순간은 존재하니까. 놀라운 건 마음을 잃고 내 모든 걸 잃은 후에야 원초적인 나의 생명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겐 안일한 순간들보다 위태로웠던 순간들이 인생의 놀라운 성장과 깨달음을 주었다. 그때의 경험 이후로 나는 삶에서 닥치는 예기치 않은 변화에 조금은 의연하게 대처하며 살게 되었다. 때로는 스스로가 강렬한 변화를 주도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대해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가 제일 궁금해한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온 것일까를. 모든 일들엔 이유가 없었다. 단편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의 이유는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나고 나면 모든 일들엔 다 이유가 있었다. 삶은 커다란 하나의 의미와 목적을 가지고 흘러가는 것이었다. 그것을 순간 속의 내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순간의 삶에 매몰되어 더이상의 것들은 알고 싶지 않거나 모르는 척 외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우리는 이유나 의미를 알 수 없는 숱한 일들을 겪으며 하루를 보내겠지만, 그 모든 순간들이 가리키는 방향이 결국 내 삶의 의미이자 목적이 되어갈 것이다. 


나는 마음을 잃고 살았기에 마음을 되찾기 위한 긴 여정에 삶을 통째로 맡겨 왔다. 그리고 반 백살이 되어가니 조금은 눈치 채게 되었다. 나는 마음을 잃은 모든 사람들에게 눈곱만큼이라도 위로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러한 삶의 목적과 의미가 글이 되어 나오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삶을 되돌아보면 자기만의 여정이 있을 것이다. 나를 포함한 모두의 고단하고 긴 여정에 부디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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