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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Mar 28. 2023

하이드, 백 미터 달리기는 이제 그만

첫 직업을 잃다

나는 내성적이고 소심한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은 단순한 인사말조차도 꺼려한다. 좋게 표현하자면 이성적이고 차분해서 사고 같은 건 절대 치지 않을 '모범생' 이겠다. 달리 말하면 끼라는 건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답답스러운 '숙맥'에 가깝고. 이것이 평소에 나를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일 거다.


원작  Peter Macdiarmid/Getty Images,  모작 무아


하지만 아주 가끔씩 나는 돌변한다. 나도 모르게 가슴 깊은 곳에서 치고 올라오는 말릴 수 없는 객기를 가지고 있다. 타고난 것인지 성장과정에서 그리된 것인지 아무리 심리학 책을 읽고 내면을 들여다봐도 그에 대한 뚜렷한 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내 속의 '하이드'가 나타나면 삶을 아주 요란하게 흔들어 놓곤 했다. (굳이 비유하자면 지킬 앤 하이드 같았으니까!) 나는 평소와 달리 주변인들을 놀라게 하는 극단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고 해 버렸다. 처음 '하이드'가 나타난 것은 30대 초반으로 임용고사를 합격하여 칠 년여 넘게 다니던 학교를 갑자기 때려치워 버렸던 때이다. 그것은 인생의 방향을 송두리째 틀어버린 사건이었다. 지금이야 교사를 그만두는 사람들이 꽤 늘어서 이상할 일도 아니지만, 십수 년 전만 해도 제 발로 들어간 학교를 젊은 나이에 제 발로 걸어 나가는 교사는 극히 드물던 때였다. 교장 선생님도 교감 선생님도 내가 낸 사직서에 많이 놀랐는지 방학 중에 헐레벌떡 학교로 뛰어 오셨다. 이런 일은 학교에 근무한 이래 처음이라며 사직 처리를 어찌해야 하는지 몰라 당황스러워했다. 어찌 됐든 사직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기까지의 시간은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사범대학 4년과 7년여의 교직 생활이 한꺼번에 정리되어 버렸다.


늘 결심은 어느 날 하루아침에 이루어지곤 했다. 번뜩이는 섬광처럼 날카롭게 마음속에 내려 꽂히면 그 뒤로 나는 무엇에 홀린 듯 일사천리로 행동했다. 도둑질도 한 번이 어렵지 일단 하고 나면 두 번, 세 번은 쉬워진다는 말이 있듯이 그 이후의 내 삶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최선을 다해 이루어 놓고 단칼에 놓아버리는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반복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런 거리낌 없는 행동들은 일종의 자기 파괴적인 자학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의식적으로는 늘 나와 내 인생을 위해서 내리는 최선의 선택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말이다.


지금도 내 삶의 목적과 의미는 오랜 방황의 원인을 찾고 스스로를 치유해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충남 공주 출생의 나는 연고도 없고 평생 와 보지도 않았던 전라도 땅 한 녘에 들꽃처럼 박혀 나지막하게 흔들리며 살고 있다. 언제 또다시 나 자신을 이 땅에서 뽑아내 다른 곳으로 옮겨 심으려 들지 알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럴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도 있다.


하지만 과거의 나로부터 깨달은 것이 있다. 이 깨달음으로 인해 앞으로의 내 삶은 이전과는 조금 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과거의 내 영혼은 육신이 발을 딛고 있는 '여기'가 아닌 늘 다른 어딘가에 있는 '거기'를 바라보며 살았다. 쏜살같이 튕겨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출발선 앞의 백 미터 달리기 선수였다. 온몸의 감각에 날을 세우고 잔뜩 긴장한 채 살았다. 작은 인기척만 들려도 숨이 막히고 가슴이 격하게 방망이질을 했다. 마음속에서는 '어서', '어서' , '때가 되었어', '서둘러'하며 또 다른 내가 자꾸만 소리치고 재촉했다. 조급함에 안절부절못하던 나는 늘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이미 출발선을 박차고 나갔다. 그런데 문제는 목적지를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었다. '여기만 아니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서 어디를 보고 뛰어야 하는지를 자꾸 잊었다.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그저 달리기에만 집중했다. 나는 인생을 걸고 매번 도박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최선을 다해 달리다가도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면 1초의 주저함도 없이 다시 방향을 틀어 또 죽으라고 달렸다. 도망치듯 달리고 또 달리다 보니 어느새 내 삶은 정처 없이 부유하고 있었다.



그것은 '여기'가 아닌 '저기'를 좇는 것의 무모함, 그 철없는 동경과 망상, 현실에 발붙이지 못하는 정처 없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돌아보면 나는 줄곧 그래왔다. 인생은 긴 여행이고 사실 떠날 곳도 머물 곳도 영원치 않다. 이 가사를 쓸 때보다 나는 조금 더 성숙한 어른이 되었다. 영원히 어린 아이고 싶기도, 성숙한 어른이고 싶기도 한 그 간극의 흔들림. 그리고 그것 또한 어쩌면 '삶이라는 여행'이 아닐까.


출처 사랑을 사랑하게 될 때까지, 조동희



하지만 이제 나는 이전보다 조금 더 성숙했다. 여전히 어린아이도 어른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이지만 휘몰아치는 마음을 잠재우지 못해 안달하던 나를 조금은 달래고 보듬어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는 예전처럼 '지금 여기'에 불안과 결핍을 많이 느끼지 않는다. '언젠가 거기'에 대한 타오르던 열망도 조금은 사그라들었다. 나이가 들면서 현실에 안주해서는 아니다. 그 어느 때보다 가슴속의 희망은 가득 차 있는 상태이다. 다만 부딪혀야 할 고통도, 넘어가야 할 장애도, 포기해야 할 꿈도, 인정해야 할 결핍도 예전보다 조금은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자리가 생겼을 뿐이다.


나는 어디까지 올랐나 생각하지 않고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생각한다.

방향은 있지만, 높이를 바라보지 않는다.

걷던 길은 언덕이지만 그도 기나긴 길의 일부일 뿐,

치열하게 등반하듯이 살고 싶지는 않다.

아쉬운 것 없는 사람보다는

아쉬울 것 없는 사람이 되고 싶기에

돌아본다.

기억이 허락하는 저 어린아이였을 때부터의 나.


출처 사랑을 사랑하게 될 때까지, 조동희



이제는 내 안의 하이드가 더 이상 백 미터 달리기를 하지 않도록 잘 붙잡아 두려 한다. 삶이란 도착점을 모르는 채 기나긴 길 위에서 묵묵히 오늘을 걷는 것이다. 성급하고 무모했던 내 오랜 습관의 굴레에서 벗어나 남은 생은 천천히 즐기며 살아가고 싶다. 생의 속도나 높이를 생각하기보다는 내 눈이 가닿는 방향을 멀리 내다보면서 삶 위를 유유히 흐르듯 지나가고 싶다. 이따금 멈추어 서서 지나온 곳을 한 번씩 돌아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아쉬울 것 없이! 후회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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