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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Apr 04. 2023

우울증에 걸린 그, 있지만 없는 남편

남편을 잃다


그와 나는 16년 전에 만났다. 소위 말하는 연상연하 커플이었다. 나는 거창한 이상형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나를 따스하게 품어줄 나이 많고 어른스러운 남자를 원했다. 그는 연하였기에 처음부터 마음이 가질 않았다. 그러나 유쾌하고 따스한 모습에 조금씩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에 대한 터무니없이 확고한 사랑에 마음의 벽도 결국 허물어지고 말았다. 어릴 때부터 불안과 우울에 시달린 나는 밝고 가벼워 보이는 그의 곁에서 어쩌면 내 삶도 환해질지 모른다는 기대를 했다.  


그런 그에게서 어느 날 갑자기 목격한 낯선 모습. 그는 먹지 않아도 끊임없이 구토를 했고 자도 자도 멈추지 않는 잠을 자며 도망치듯 굴로 들어가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도무지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냥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잠시 몸도 마음도 균형을 잃었나 보다 생각했다. 그의 어머니가 하는 고백도 당시엔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불현듯 기억 속에 묻어 두었던 대학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그는 나와 다른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쌍둥이처럼 똑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정신을 조금 차린 그가 내게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이별을 통보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이전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사랑하는 연인을 바라본다기보다 난파선에 실린 조난자를 바라보는 심정이 되었다. 저 상태로 그를 망망대해로 그냥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나와 너무나도 똑같은 그를 버릴 수도 도망칠 수도 없었다. 그는 나를 미안함으로 놓아주려 했으나 나는 그를 안쓰러움으로 붙잡았다. 그리고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


원작  James Coates,  모작  무아


알 수 없는 병으로부터 있는 힘껏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그것은 예고도 없이 불시에 들이닥치는 강도와 같았다. 그의 마음을 칼로 위협하여 공포에 질리게 하고 그의 육신을 꽁꽁 묶어 꼼짝도 못 하게 만들었다. 도무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그것의 행패를 망연히 바라보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입도 틀어 막히고 손도 묶인 채 무기력하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그것이 사라지면 다시금 평온이 찾아오곤 했다. 하지만 그 평온은 온전하지 않았다. 이미 우리가 속한 공간에는 불길함과 불안의 냄새가 곳곳에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언제든지 다시 나타나 삶을 벌집 쑤시듯 헤집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날이 갈수록 그에게 새겨진 주홍 글씨는 점점 짙어졌고, '그와 나'의 세상에 대한 소외감도 조금씩 커져갔다. 두려움을 숨긴 채 일상의 테두리 안에서 무심히 살아가려고 발버둥 치는 나날들이었다.


"늘 그렇잖아. 좋았다, 안 좋았다. 이제는 그러려니 해."  이따금 친절한 이웃이 우리에게 '어떻게 지내냐'라고 물어볼 때가 있다. 그러면 저렇게 대답하곤 한다. 더 이상 절망의 말도, 희망의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질 않는다. 절망의 말은 다정한 이웃을 몹시 난처하게 만들 것이며, 희망의 말은 괜찮은 척 자위하며 현실을 외면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든 우리가 상처받는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아픔을 인내하고 서로 위로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게 진실이다. 우리는 그저 그런대로 잘 살고 있다.


마음이 아픈 사람은, 고통의 시간 후에 제 스스로 가야 할 길을 찾아내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흘려놓았던 공허한 위안의 말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을 추스르는 법을 깨우쳐 갑니다. 스스로 마음을 들여다보고 돌보는 법을 알아내고야 맙니다. 고통을 견뎌내는 시간, 그 자체가 치유일 겁니다.


출처  당신이라는 안정제, 김동영/김병수


긴 시간 그와 함께 하며 깨달은 것은 누군가의 위로도 효과 좋은 약도 그저 병에 도움을 주는 보조제일뿐이라는 것이다. 결국은 스스로 고통을 견디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마음을 추스르는 방법도 조금씩 깨달아가게 되는 것이었다. 그는 현명하고 강인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일상의 틀을 깨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힘들 때는 모든 걸 내려놓고 쉬기를 권유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악착같이 버텨내었다. 지나고 보니 그것은 가장 강력한 치유의 과정이었다. 병에 대한 극복 의지를 정신력의 강함과 약함으로 섣불리 재단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가 지금과 같은 보통의 삶을 유지하게 된 데에는 강인한 인내가 뒷받침되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내가 그와 함께 꾸린 가정이라는 틀이 그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었을 거라 생각하니 위안이 된다. 우리를 답답하게 하고 얽매는 듯한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때로는 삶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기도 하는 것이다. 그가 만약 일상과 가족의 끈을 놓아버렸다면 훨씬 더 위태로운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나와 아이의 곁에서 고통을 견뎌내기로 단단히 마음먹었다. 나 역시 꿋꿋하게 일상을 지켜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에게 안정을 줄 수 있을 거라고 믿었고 실제로도 그러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오늘도 나와 아이의 지지 속에서 보통의 삶을 묵묵히 유지해 나가고 있다.


누군가를 위해 자장가를 불러주고

울지 말라고 위로하고

웃음으로 잠을 깨워줄 수 있으려면

나라는 사람이 짊어져야 하는

삶의 무게는 얼마만큼일까?

나라는 사람이 얼마만큼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할까?


출처 당신이라는 안정제, 김동영/김병수


그의 곁에 머무는 삶의 무게만으로도 스스로 휘청거린 적이 있었다. 한때는 헤어지지 않은 걸 후회하기도 했다. 마음이 병들어 있는 나에게 나보다 더 아픈 사람을 보내 준 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십여 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되었다. 내가 아픈 그를 도와준 만큼 그도 나를 치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캄캄한 날이면 홀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가 모든 걸 내려놓고 나와 아이 곁을 떠난다 해도 '나는 살아야 한다. 나는 아이를 잘 키울 것이며 끝까지 내게 주어진 삶을 지킬 것이다.'라고. 나는 그렇게 있지만 없는 남편의 빈자리를 경험하면서 강한 어른이 되어갈 수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감당하면서도 부담스러워했고, 부서질 것 같은 마음을 서로에게 들킬 때마다 미안해하면서 살아왔다. 그는 증상이 심할 때마다 '미안해'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반복했다. 나 역시 그의 아픔을 온전히 공감하지 못해 그로 하여금 죄의식을 느끼게 하는 건 아닌가 싶어 가슴 한편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 우리 사이의 바다엔 늘 미안함의 파도가 거세게 들이쳤고, 그로 인해 멀미하듯 울렁이는 삶을 살아야 했다. 이제 우리는 미안함의 파도를 그만 잠재우려 한다. 미안함이 밀물이 되어 밀려올 때마다 '고마워'라는 썰물로 되돌려 보내는 연습을 하면서 말이다.


또다시 '그와 나'에게는 고통을 직면해야 하는 순간들이 들이닥칠 것이다. 그러지 않기를 매일매일 간절히 기도해 왔지만 실은 반드시 또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껏 견뎌온 고통의 순간들이 켜켜이 쌓여 굳은살이 되고 나이테가 되었다. 그도 나도 고목처럼 단단해져가고 있음을 느낀다. 위기의 순간들이 닥쳐와도 우리는 절망에 허망하게 무너지지 않고 희망에 순진하게 매달리지도 않으면서, 그럭저럭 오늘을 살아갈 것이다.

그런대로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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