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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lee Nov 10. 2019

나의 이성에 대한 탐구

힐링으로서의 글쓰기

이혼 후, 싱글맘으로 아이를 키웠던 힘든 과정을 가슴속에 꾹꾹 눌러 담으며 살다가 어느 날, 마침내 폭발했다. 도저히 이걸 풀지 않고서는 내 삶이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듯해 브런치에 '싱글맘의 육아일기'란 글을 쓰기 시작했다. 딸아이를 키웠던 과정 중에서 더 치열했고 폭발적이었던 청소년기의 이야기는 아직 끄집어내지도 못했지만 초등학교에 다니던 딸아이의 모습을 기록한 브런치 북 '싱글맘의 육아일기'만으로도 난 숨을 쉴 수 있을 만큼 치유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아직 다 치유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가슴을 짓누르던 응어리를 글쓰기로 털어내면서 내 이혼에 대해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게 됐다. 캠퍼스 커플들이 그렇듯 연애와 결혼 기간을 합해보면 짧지 않았다. 인생에 있어 가장 순수했던 그 시절을 함께 했던 사람에 대한 배신감은 남자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이후부터 내게 남자는 무의식적으로 일정 거리를 지키고 유지 거리 안에 들이지 않아야 하는 존재가 된 듯싶다. 남자 동료와 사회적 관계로 함께 일을 성취하고 잘 지내지만 개인적 관계로서의 남녀관계 형성은 내게 큰 숙제다. 


생각해보면 내 주위에는 항상 남자들이 많았다. 대학도 남녀공학을 다니면서 선배와 동기, 후배 남자들과 잘 지내왔고 직장생활에서도 남자 선배들과 격의 없이 지내며 깍듯한 후배로 많은 예쁨(?)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여성들만 있는 잡지사로 이직을 했다. 데스크며 선배, 후배, 동료 모두 여자였다. 


난생처음 여자들과의 삶이 시작됐다. 이직한 후의 적응 기간은 내게 고통의 시간이었다. 의미 없는 수다의 향연과 굳이 그렇게까지 지적할 필요 있나? 싶을 정도의  까딸스러운 지적질은 급격한 자신감 저하와 내가 이렇게 일을 못했나? 할 정도의 자괴감으로 나를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 

뉴욕 The Museum of Modern Art 소장품인 구스타프 클림트 'The Park'. 클림트는 내게 여성성을 극대화 시키는 작가로 인식돼있다. Photo by malee

특히 여성적 대화법에 익숙하지 않아서 대화에 끼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는데... 뭔가를 하나 설명할 때 그 옛날 있었던 어떤 사건을 불러내 시시콜콜 설명하며 현재의 문제로 대화가 진행되기까지 참고 들어야 할 군더더기가 사람을 지치게 했다. 대화가 수다로 변신하는 과정을 경험하다 보면 난 물끄러미 대화, 아니 수다에 끼지 못하고 어색한 웃음만 몇 번 짓다가 자리가 끝나곤 했다. 


아직까지도 이 대화법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 방법이라 이런 식의 화법을 구사하는 직원들에게는 무던히 교육을 시키며 주제에 집중하는 대화법을 지켜내려고 노력했다. 어쨌건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조직에서 약 5년을 일하자 차츰 그들(?)의 문법과 문화에 익숙해지면서 선임기자로서 후배들을 이끌며 무난히 지내게 됐다.  하지만 주위에 친한 여자 후배들의 면면을 훑어보면 죄다 일만 할 줄 아는 곰, 즉 무수리들이다. 내 주위에선 여우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가 없으니 아무래도 여우같이 애교 떨며 윗사람 분위기 맞추는 부류와는 체질적으로 잘 안 맞는 듯싶다. 


글쓰기의 주제를 이성에 대한 탐구로 적어놓고는 줄곧 이성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 역시 내 머릿속에서 이성에 대한 어떤 영역이 사라져 버렸거나 아니면 깊은 잠을 자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여성, 남성의 이분법적인 사고보다 인간이란 보편적인 사고만이 발달된 듯싶다. 


좀 더 성숙한 인간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다고 나를 위로하지만 아직도 내게 이성에 대한 정의는 어려운 탐구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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