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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lee Mar 17. 2020

Open Mind, 易地思之

세상 읽기

미국에서 생활할 때 이야기다. 


로스앤젤레스 한인 타운에서 식당을 꽤 크게 운영하는 분을 만났다. 그 당시 이 분의 큰 걱정은 종업원들이 걸어온 집단 소송이었다. 오버타임에서부터 휴일근무, 현금으로 지급해 누락된 페이롤 부분까지 법대로 따진다면 이분의 비즈니스는 문 닫아야 할 형편일 만큼 소송금액이 엄청났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또 한 분은 운영하던 커피숍을 급히 처분하고 한국으로 귀국하게 됐다며 식사나 하자고 나를 초대했다.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가는 이유를 묻자 ‘사실은 사정이 있어서 다 정리하고 도망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요지는 이랬다. 커피숍을 운영하기 전 캄튼(블랙 아메리칸들이 주로 거주하는 로스앤젤레스의 저소득층 거주지역, 한인 이민자들이 이곳에서 가발이나 헤어 제품들을 판매하는 뷰티 서플라이 가게를 많이 운영하고 있다. )에서 E2비자로 운영하던 뷰티 서플라이 가게에 강도가 들었단다. 


당시 직원인 여자분과 안주인은 몸싸움 끝에 가벼운 상처를 입고 현금을 강탈당했다. 함께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고 서로 걱정해주던 차에 갑자기 며칠 있다가 이 직원이 연락도 없이 나오지 않더니만 변호사를 통해 소송을 제기했다고 한다.


머리가 아파서 아마도 뇌에 문제가 생긴 것 같으니 앞으로 중대한 신체장애가 예상된다는 의사의 진단서와 함께 첨부된 소장에는 30만 달러가 넘는 피해 보상 요구액이 적혀 있었다는 것이다.


전 재산을 다 털어도 30만 달러도 안 되는 이들 부부는 하늘이 노랗게 돼 종업원을 찾아 눈물로 호소하고 애원해도 계속 강경해지기만 하는 이 분의 태도에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결국 법정싸움을 계속해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 부부가 제시한 최종 1만 달러의 협상에도 타결을 못하고 판결을 앞에 두게 되자 미국이란 나라에 환멸을 느껴 다 정리하고 급하게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한국에서 명예퇴직 다 하고 집까지 팔고 와 몇 차례 운영하던 비즈니스의 부진으로 가게를 팔고 사기를 거듭해 그나마 마지막으로 커피숍을 운영해오던 50대 후반의 부부였다. 사실 이들 부부의 한국행은 미국으로 이민 온 초기로 돌아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더 열악한 것이 한국에 돌아가서 자리 잡을 재산도 거의 바닥난 상태였기 때문이다. 


맨 위에 한인타운에서 큰 식당을 운영한다던 그 오너가 당한 종업원들의 집단 소송액도 금액으로 보면 오너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는 엄청난 숫자였다. 그 역시 ‘어차피 이렇게 된 바에야 문 닫고 확 도망가버려…’라는 생각을 아마 잠깐이라도 했을 것이다. 


로스앤젤레스 한인 타운에 이러한 유사 소송 때문에 자리에 눕는 한인 스몰 비즈니스 오너들이 많다. 특히 요식업소는 속성상 오버타임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각종 종업원 상해보험 적용 케이스도 많다. 개중에는 이야기만 들어도 별의별 희한한 소송도 많이 진행 중이다. 소송을 당한 오너들은 며칠은 눕거나 두문불출, 간혹 장기간의 한국행을 감행하는 이들도 있다. 현실에서 일단 도피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이런 소송을 찾아내 전문적으로 들쑤시고 다니는 소송 전문 변호사도 존재한다. 미국은 변호사들의 나라이니 말이다. 물론 악덕 업주도 많다.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하고 그간 법에서 규정했지만 받지 못한 금액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소송 거리도 안 되는 일들을 일부러 찾아다니며 들쑤시고 소송을 부추기는 이들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들 변호사들만을 탓하기에는 그간 한인 경제인들이 종업원들의 근대적인 노동환경을 너무 도외시한 것은 아닌지 반성부터 해봐야 한다. 직장 내 성희롱이나 인종 차별, 오버타임 등으로 소송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오너들이 각별히 신경 쓴다고 이런 문제가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내가 친동생처럼 대해줬는데...' 혹은 '가족처럼 챙겨줬는데...' 이런 감정적인 문제보다 미국 노동법의 규칙에 맞게 문서화하고 자료화하는 수밖에 없다. 잘못하면 소규모 자영업자 입장에서 보면 천문학적인 금액과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용해야 하는 법률비용, 노동청 사무소를 들락날락거리면서 소요되는 시간과 받게 될 스트레스 등... 어마 무시한 손해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실무적인 준비를 하기 전에 우리 모두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을 가져야 한다. 내 삶에 대한 자세를 한번 점검해보아야 한다.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내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두 가지가 있다. 만약 내가 저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역지사지(易地思之)’다.


또 하나. 내 마음을 진솔하게 털어놓으면 무언가 해결책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오픈 마인드(Open Mind)’다. 대학시절 멘토로 삼았던 한 선배가 올망졸망한 신입생을 모아 놓고 자신이 행동 기준으로 삼고 있다며 당당하게 외친 말이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 선배는 본인의 삶에서 비교적 이 두 원칙을 잘 지켜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여간 내 인생에서 가장 반짝였을(?) 대학 신입생 시절 뇌리에 박힌 이 두 단어는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머릿속에 박혀 지워지지 않고 작동 중이다. 


어떤 문제에 봉착하면(주로 문제들은 사람과 사람의 갈등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난 나와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할까? 역지사지해본다. 그리고 그다음 단계로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서로의 갈등을 조절하려면 오픈 마인드가 절실하다. 그래야 서로가 조금씩 양보해서 타협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생을 살아내면 낼 수록 이 두 가지 자세를 내가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몸으로 느낀다.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아집’이란 거대한 벽을 만났기 때문이다. 특히 연배가 높으신 어르신들의 '아집'과 윗사람의 '아집'은 고백하자면 나를 거의 절망에 빠지게 할 정도다. 


특히 '자기애'가 지나치게 강한 이들의  ‘아집’은 이중의 갑옷이라 조금의 타협도 받아들이지 않고 오직 본인만이 옳고 맞다며 귀를 닫아 버린다. 인간 내면에 갑옷을 입고 또다시 외면에 갑옷을 입은 형국이다. 


모두 불통의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과 사람과의 ‘소통’을 꿈꾸는 내가 힘들어하는 단어들. '아집' '불통'. 그나마 '자기애'는 긍정적인 의미가 많다. 나에게 부족한 이 단어, '자기애'를 할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한다.  


아집이 견고해지지 않으려면 지치지 않는 소통밖에 없다. 아집으로 똘똘 뭉쳐 타인이 접근하기 힘든 견고한 성곽을 쌓기 전에 좋은 사람들, 뜻 맞는 사람들과 소통을 부지런히, 지속적으로 해야만 한다. 


세상의 많은 부부들이 전우애로 살고 있다는데.. 이렇듯 한 집에 사는 남녀 전우, 집보다 더 보내는 시간이 많은 직장의 동료들, 오랜 친구, 새로 사귄 친구... 


우리 모두 스스로 만든 그물 같은 인간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역지사지하고 오픈 마인드 하는 것만이 오해로 점철돼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서로 싸워대며 악다구니 쓰는 현대인의 악마 같은 모습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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