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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lee Dec 02. 2019

이너 차일드(Inner Child), 당신에게

힐링으로서의 글쓰기

체기가 있는 듯 가슴이 묵직했다.

“내일까지는 꼭 편지 써서 줘야 해.”

 

용띠 여자 세 명을 인터뷰해서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나의 친구가 약 한 달 전부터 내게 아버지에게 편지를 써서 갖고 오라고 부탁을 했다. 나는 이 부탁을 마치 잊은 척, 계속 묵혀 두고 있었다.


다큐멘터리 제작 일정이 촉박하다며 투덜거리는 소리를 모른 척하고 차일피일 미뤄왔었는데 내일은 정말 줘야 할 모양이다. 내일 함께 일하는 곳에서 열리는 마지막 교육 모임에 꼭 갖고 오라고 신신당부한다.


아버지에게 편지를 써야 한다는 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라 시작하기가 쉽지 않다. 편지야 맘먹고 쓰기 시작하면 30~40분 이면 후딱 쓸 만큼 글 쓰는 일에 이골이 났다고 생각해왔는데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편지를 쓴다는 생각은 지금껏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저께도 어제도 시작해야지 하다가 금세 바람 빠진 풍선 마냥 기운이 쑥 빠져서는 다시 침대로 들어가 이불깃을 머리 끝까지 올리고 울다가 잠이 들었다. 내 나이, 이제 만으로 55세. 이 나이에 무슨 만 4살에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편지를 쓴다고 이 난리를 떨지?


아버지를 매일 그리워하며 왜 난 아버지가 빨리 돌아가셨을까?

원망하며 하늘을 바라보던 사춘기 소녀시대를 지나온 지가 벌써 몇십 년 전이다.  

대학을 졸업해 직장 다니는 딸아이까지 있는 중년 여성이 마치 사춘기 소녀 시절 일찍 여윈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어디선가 나를 바라보고 있을 밤하늘에 반짝이는 아버지 별을 찾듯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겠다고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이 내가 아직도 성장하지 못하고 어른이로 살고 있다는 사실만 확인해주는 듯해서 전전긍긍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다. 내일 교육 시간에 마주쳐서 미안해하지 않으려면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아버지에게 편지를 써야 한다.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의 파워 버튼을 누르고 파일을 열었다.

  

아버지를 기억하며...

어디서 어떤 이야기부터 꺼내야 할지 막막합니다.
제게 남아 있는 아버지의 이미지는 사진 속 환하게 웃고 계시는 모습입니다.
아마 회사를 다니실 때 책상에서 일하는 모습을 누군가 찍어주신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아버지가 참 잘 생겼구나’ 생각합니다.
이 이미지는 제가 사진을 찍는 아버지를 본 게 아니라 사진에 찍힌 아버지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이후 획득한 간접적인 기억입니다.

제게는 제 눈으로 보고 뇌로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딱 하나 있습니다.

기억 속의 아버지는 병원 침대에 일어나 앉아 베개를 벽에 기대고 저를 바라보시며
산토끼를 부르면서 깡충깡충 춤을 추는 저를 향해 힘없이 웃으십니다.

벌써 50년 전의 기억이네요. 제 나이 만 4살 하고 3개월 정도가 막 넘었을 때였습니다.
아버지의 모습을 애써 떠올려보려 하지만 제 기억 속의 아버지는 이게 전부입니다.

어쩌면 늙어 비루한 노인의 형상보다 중년의 모습으로 잘 생긴 호남이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남아 있는 아버지가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내 어린 시절은 이렇게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어둠의 커튼이 쳐지면서 즐거운 기억 없는 암울하고 회색 칠한 병실 벽면처럼 무미건조한 기억으로 봉인됐다. 내가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해 기억하고 있는 마지막 풍경은 아래의 장면이다.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엄마의 전화를 받고 부리나케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병실이 있는 이층으로 계단을 뛰어 올라가자 엄마가 아버지의 침대를 치우지 못하게 복도에 주저앉아 울고 계셨다.

영안실로 침대를 운반하려는 직원들이 움직일 수 없게 침대 다리를 가슴에 꽉 끌어안고서는 '아이들이 올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달라'며 울부짖으시던 엄마의 절규가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하다.

우리 형제들이 마지막 가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서야 침대는 영안실로 내려갈 수 있었다.


머릿속에 맴돌던 이미지를 글로 풀어내자 당시의 내 기억은 훨씬 생생해졌다.


헌데 여기까지였다. 분명히 이 정도를 기억한다면 아버지의 장례식이나 이런 것들이 기억이 나야 할 텐데 여기서부터는 완전 어둠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버지의 사망 이후, 약 일 년간의 기억이 사라져 버렸다.  아버지의 사망과 병원 복도에서의 엄마가 쓰러져서 울부짖는 그 상황까지 이토록 뚜렷하게 기억하는데 왜 장례식 기억은 하나도 나지 않는 걸까?  왜?


그동안에는 가끔 과거를 떠올릴 때 아버지의 장례식이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은 내가 너무 어려서 기억이 나지 않는 걸까? 심각하지 않게 지나갔던 것 같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니 아버지의 침대를 둘러싼 병원 복도에서의 그 상황을 기억하는 것을 끝으로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은 약 일년이 지난 후부터 다시 이어다.

내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는 내면의 아이를 불러내 도닥여주는 일은 천천히 자연과의 호흡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사진은 50 플러스 중부 캠퍼스 발도르프 목공 커뮤니티가 깎아낸 인형.

글로 풀어내면서 발견한 이 사실로 난 큰 충격을 받았다. 난 기억을 지웠구나... 이제와 생각해보니...

 

다섯살이란 나이에 갑자기 사라져버린 아버지의 부재를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에서 난 또렷이 두 장면만을 뇌에 남겨둔채 약 일년 정도의 기억을 저장하지 않았던 것이리라...


나의 사라진 일 년을, 이제 찾아야 할 시간이 온 것 같다. 사라진 기억의 퍼즐을 맞춰보는 일.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읜 막냇동생을 유난히 애틋하게 여기는 언니들의 기억까지 소환해서 기억을 재구성해야 한다. 언니들에게도 괴로운 기억을 소환해서 함께 과거를 극복해야 하는, 어찌 보면 우리 가족의 상처를 쓰다듬어 다독여줘야 하는 일이 내게 남아 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박탈당한 내가 아버지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극복해야 할 산이다.


'아버지'라는 단어만 떠올리면 조절할 수 없이 어느 순간 주르르 흘러내리는 눈물은 결국 어찌해도 되돌릴 수 없는 박탈감과 이에 따른 영원한 절망의 표현일 것이다. 아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박탈감과 절망감으로 좌절했으면서도 마치 겉으로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아버지란 존재에 대한 깊은 무관심과 무감각으로 지내왔다. 아마도 욕구를 억누르고 분출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방어 기제가 작동했으리라...


심리학 책을 읽을 때 눈길을 끌었던 단어가 떠올랐다.

'이너 차일드 (Inner Child)'. 이 용어를 내가 받아들인 정의는 다음과 같다.


부모로부터 제대로 양육받지 못해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무엇을 하더라도 채워지지 않는 결핍감으로 인해 어른으로 성장한 이후에도 내 마음속에 또 하나의 자아인 어린아이 마음을 지니고 있는 것.


이너 차일드란 단어를 읽으며 내게 숨겨져 있던 내면의 아이가 불쑥 고개를 들고 내 가슴을 쿵쿵 치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는 내 마음속에 있는 내면의 아이를 위로해주고 힐링해주는 것... 어린 시절의 나에게 스스로 손을 내밀어 다독여야 한다.


사랑의 대상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해 결핍이 쌓이고 이 결핍이 증폭돼 분노로 폭발한다는데, 나는 이 결핍을 분노로 폭발시키는 것이 아니라 얼음장처럼 차디찬 빙하처럼 마음속 켜켜이 쌓아놓은 모양이다. 용기 내어 다독여 울음으로든 절규로든 차가워진 마음을 이제부터 따뜻하게 녹여보려고 한다.


아픈 마음을 다스리며 현실 속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일.

나 스스로 직시하게 된 나의 문제를 마주하는 일은 쉽지 않겠지만

어른이를 벗어나 진정한 어른으로 살아나가려면 꼭 풀어내야만 한다.


이제 한 발씩 차근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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