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인으로 외국 회사에서 성공하기
대나무천장(Bamboo Ceiling)이란 말을 들어본적 있는가?
여성의 임원 진출의 어려움을 상징하는 유리천장 (Glass Ceiling)이란 말처럼, 대나무천장은 서양에서 일하고 있는 동양인들이 기업에서 승진 등의 차별을 받는 것을 말한다.
해외에서 동양인으로 살다 보면 온갖 동양인에 대한 스테레오타입들이 따라다니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번은 아래층에 살던 처음 보는 할머니가 나를 보더니 대뜸 요식업에 종사하지 않느냐 물어본 적도 있다. 그 지역의 많은 동양인들이 요식업에 종사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른다.
또한 왜 그렇게들 중국사람으로 생각을 하는지. "니하오"라는 인사는 수도 없이 들었다.
이러한 일들은 보통 "무지"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남미에서는 동양인이면 중국인이건 한국인이건 중국인을 뜻하는 "치노"로 부른다.
중국의 인구가 워낙 많다 보니 확률상(?) 중국인일 가능성이 제일 많으니, 그렇게 부르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우리가 방글라데시 사람과 시크교도들과 인도인들을 구분 못하는 것과도 같다.
이런 문제들은 보통 국제화된 도시를 가면 경험상 조금 줄어든다.
워낙 다양한 인종들이 섞여 살다 보니, 다양성을 인정하고 속으로는 어떻게 생각을 하든 겉으로는 예의를 지키는 것이다.
회사에서는 인종 차별을 매우 강하게 금지하기 때문에, 당연히 업무상 불이익을 당하거나 인종차별이라고 느낀 적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작년 말 승진 심사를 앞두고 지난 커리어를 돌이켜보면서,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 대나무천장에 막혀버린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과연 정말 그랬을까?
먼저 대나무천장은 실재하는 것이라는 답변부터 말하고 싶다.
아래 조선일보의 예전 기사에 따르면, 동양인이 30-40%를 차지하는 IT업체 임원들의 70-80%가 백인이었다고 한다. 백인들이 인구비율 대비 임원을 다는 경우가 더 많다는 얘기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0/12/2015101200155.html
내가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만 하더라도, 임원들의 대부분은 백인들이다.
물론 미국회사니까 그런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나무천장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거두기는 어려웠다.
내 경우를 살펴보자.
천운을 얻어, 지난 13년간 고속 승진을 거듭해 벌써 Director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말단 사원부터 시작해 거의 매 2년마다 승진을 했고, 이제 임원(Managing Director) 승진만 남아있는 상태.
올해 1월 Director 승진이 확정되었을 때, 정말 그동안의 혼을 갈아 넣은 노력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뭔가 손해 보는 느낌도 들었다.
내가 아는 몇몇 백인 직원들은, 이렇게 말하면 역인종차별일수도 있지만,
1) 일보다는 그럴듯한 말로 때우고,
2) 야근을 하지 않으며,
3) 별 깊이가 없는데도 쉽게 승진했다.
반면 나는
1) 정말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2) 야근을 밥먹듯이 했으며,
3) 최대한 깊이 있게 일을 하려 노력했다.
그런 백인 직원들보다 두 배는 열심히 일해야 승진과 보상을 얻을 수 있었던 느낌이랄까.
나만 이렇게 느끼고 있다면 분명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일을 못해서 그런 거라고.
그러나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본 다른 동양인 직원들도 비슷한 느낌을 느끼고 있었다.
알게 모르게 대나무 천장이라는 유령이 회사를 배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장 쉬운 답변은 인종차별이다.
대나무천장은 유리천장과 마찬가지로 "차별"로 쉽게 설명이 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백인들이 동양인들을 차별한다는 것.
정치적인 영역에서는 이것이 사실일 수 있다.
정치를 한정된 자원을 분배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면, 백인들이 주류인 사회에서는 당연히 백인들에게 더 많은 자원을 분배하려고 할 테니까.
그러나 "이익"이 최우선인 기업에서 이런 일이 계속 발생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차별 때문이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유리절벽(Glass Cliff) 이론에 따르면 기업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여성을 더 높은 비율로 CEO로 채용하기도 한다.
바꿔 말하면 "차별"을 극복할 만큼 큰 "이익"이 없기 때문에 기업이 동양인을 더 많이 임원으로 채용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바꿔 말하면 동양인이라는 인종으로서 주는 "이익"이 특별하지 않다는 것.
생각해 보면 앞서했던 이야기에 이 문제에 대한 답이 있다.
1.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다는 것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다는 것은 같은 조건일 때 더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즉, 승진이나 연봉인상 등을 해주지 않아도 어차피 열심히 할 것이기 때문에 굳이 승진이나 연봉인상 등을 해줄 필요가 없다는 것.
다시 말하면 불만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2. 야근을 밥먹듯이 한다
야근을 밥먹듯이 한다는 것은 일이 많거나 기준이 높다는 것일 수도 있지만, 상황을 모르는 외부인의 입장에서는 효율이 떨어진다는 인식을 줄 수도 있다.
3. 최대한 깊이 있게 일을 한다
깊이 있게 일을 하는 것은 "전문가"로서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임원은 안타깝게도 "전문가"가 아니라 "전문가를 부리는 사람"이다. 필요한 것은 "전문가"가 아니라 그런 전문가들을 다룰 수 있는 리더십이다.
물론 모든 동양인들이 이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편견들 때문에 대나무천장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대나무천장은 자신이 원한다고 생기고 원하지 않는다고 생기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저 동양인에 대한 편견들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 대나무천장의 존재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을 하고, 어떻게 헤쳐 나아가야 할지 고민해봐야 한다.
그렇다면 대나무천장을 부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번에도 글 속에 답이 있다.
1.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다는 것 -> 누구보다 "티 나게" 열심히 일한다는 것
먼저 일을 티가 나게 해야 한다.
그리고 티가 나지 않는 일은 다른 이에게 넘기거나 최대한 줄여가야 한다.
또한 적극적으로 승진과 연봉 인상들을 요구해야 한다. 동양인들이(특히 한국인들이) 제일 못하는 것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2. 야근을 밥먹듯이 한다 -> 야근을 밥먹듯이 "숨어서" 한다
이 주장에 대해서는 의아해질 것이다. 방금 일을 티 나게 하라면서 야근을 숨어서 하라니.
야근을 하면 힘들고 지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티 내고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 또한 야근을 안 하고 계속 정시퇴근을 하면 일이 더 늘어날까 두렵기도 하다 (물론 야근을 한다고 일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야근을 숨어서 하면 이런 일이 발생한다.
당신의 결과물은 20시간을 투자한 것이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5-6시간만 투입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
즉, 정말 일을 잘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일을 잘하는 직원이라는 평판이 생기면, 조직 내에서 성공하는 것도 훨씬 수월해진다.
물 밑으로는 죽을 힘을 다해 발길질을 하면서도, 물 위에서는 도도해보이는 백조가 되어야 한다.
3. 최대한 깊이 있게 일을 한다 -> 최대한 깊이 있게 "보이게" 일을 한다
모든 일에서 깊이를 찾으려 하지 마라. 그저 깊이 있어 보이게 일하면 된다.
한 분야에서만 전문가이면 된다.
다른 분야의 깊이는 다른 직원들이 채워줄 것이다. 당신이 보여줄 것은 한 분야에서의 깊이와, 리더십이다.
적고 보니 정론보다는 무협지의 사파스러운 방법들이다.
그러나 메시지는 확실하다. 대나무천장을 만드는 편견들이 있다면 그 편견을 이용하라는 것.
묵묵히 일하는 것이 동양인에 대한 편견이라면, 티 나게 일하는 에이스 동양인, 슈퍼 동양인이 되라는 것이다.
파죽지세라는 말이 있다.
대나무를 쪼개는 듯한 기세라는 것인데, 대나무는 나뭇결과 어긋나게 자르면 단단하지만, 결을 따라 자르면 훨씬 수월하게 쪼개진다.
회사 일도 그러하다.
성공할 수 있는 결이 있는데, 그 결과 어긋나면 성공하기 어려운 법이다.
우리의 할 일은 단순하다. 성공할 수 있는 결을 찾아내고, 그 결에 따라 행동하는 것.
성공할 수 있는 결을 찾기가 무척 어려운 사업이나 예술, 체육, 또는 학문에 비하면 얼마나 쉬운가.
부디 회사에서 성공할 수 있는 결을 깨닫고, 파죽지세처럼 성공하길 기원한다.
성공이 목표가 아니더라도 그 결을 안다면, 훨씬 수월한 회사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