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는 혁신인가 재앙인가
[육식의 종말], [노동의 종말], [소유의 종말]
제러미 리프킨의 '종말 시리즈'에 있는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각각의 책에서 말하는 종말은 오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들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크다. 바로 기술과 사회의 발전에 따른 변화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목을 비슷하게 지어봤다. "사무직의 종말 (The end of office worker)"이라고. 그럼 이 글에서도 결론적으로 사무직은 종말은 피하게 되냐고?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우리 부서는 글로벌 리서치 기관인 M사의 생성형 AI 솔루션을 테스트해 보기로 했다. 새로 런칭한 업무를 위해 4명의 추가 애널리스트 자원을 요청한 것이 불발된 후,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것이 AI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M사의 사무실에서 시연이 진행되었고, 시연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AI를 당장 도입해야 한다는 생각만이 간절해졌다.
2023년을 뜨겁게 달구었던 생성형 AI는 이제 OpenAI의 손을 떠나 각 기업에 자리를 잡았다. OpenAI가 지평을 열었다면, 각 기업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데이터와 비즈니스를 바탕으로 새로운 영역을 창출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광고업계는 비디오 생성형 AI인 SORA 등을 활용해 광고 시안 영상을 만들거나 시연 영상을 고객이 있는 자리에서 바꿀 수도 있다. 글로벌 리서치 기관은 M사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방대한 양의 자료를 바탕으로, 공개된 자료만을 바탕으로 한 OpenAI의 ChatGPT보다 훨씬 더 전문적인 AI를 만들었다.
AI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주니어 애널리스트 자원을 채용할 필요가 없었다. 기존의 주니어 애널리스트 직원들이 하던 일을 AI가 훨씬 더 빠르게 더 잘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디어 산업 업계의 동향을 조사해서 가장 중요한 5개의 트렌드를 요약하는 업무가 주어지면, 기존에는 애널리스트 한 명이 밤을 새워서 리서치 자료들을 분석하고 요약을 해서 리포트를 써야 했다. 그러나 시연에서 AI는 단 5초 만에 요약된 자료를 가져왔다. 또한 자료를 80개의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것도 가능했다.
다른 예로 시연자가 AI에게 Debt to EBITDA라는 산업 평균 재무지표를 뽑아오게 했다. 기존의 방식이라면 운이 없으면 며칠이 걸리는 일이었지만, 역시 몇 초만에 간단하게 결과가 나왔다. 다른 재무지표들을 넣어서 표를 만드는 것은 물론, 그래프를 만드는 일도 어렵지 않았다.
가장 놀라운 것은 변화의 속도였다.
기존에 회사에서 무언가 하나의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는 짧게는 1년, 길게는 2-3년이 걸렸다. 그러나 시연자는 몇 달이나 몇 주를 주기로 새로운 기능과 업데이트가 이루어진다고 설명했다. OpenAI가 본격적으로 시장의 관심을 받은 게 1년이 겨우 됐다는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속도였다.
모든 기업이 그럼 AI의 혜택을 얻을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가 거래하고 있는 세 공급업체를 살펴보자. 세 회사 모두 AI에 집중하고 있지만 그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앞서 설명한 M사는 이미 AI솔루션을 만들어 판매에 들어갔다면, B사는 단순히 자신들의 자료를 요약하는 기능으로만 내부적으로, S사는 FAQ에 AI를 도입하는 것에 그쳤다.
M사는 몇 년 전부터 기술의 발전을 내다보고, 준비를 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경쟁사들에 비해 빠르게 AI를 도입할 수 있었다. 그들은 방대한 자료를 "기계가 읽을 수 있도록 표준화"시키는 준비를 5년 전부터 해왔다고 한다. 미리 준비하지 않았던 다른 기업들이 따라잡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미리 기술의 변화를 인지하고, 가장 대중적인 코딩 언어인 파이썬이나 대시보딩 솔루션인 태블로 등을 익힌 직원들은 다른 직원들이 하지 못하는 더욱 복잡하고 어려운 업무를 하면서 인정을 받고 있다.
은행의 예를 들면, 은행에서 다루는 자료가 워낙 방대하다보니 이미 액셀로 다룰 수가 없는 수준인데, 그러다 보니 코딩을 하는 직원과 못하는 직원들의 업무 효율이 크게 차이가 나고 있다.
생성형 AI의 경우엔 AI에 질문을 넣는 "프롬프트(Prompt)"가 매우 중요하다.
프롬프트를 얼마나 능수능란하게 다루느냐에 따라 AI는 바보가 되기도 하고 아이언맨을 도와주는 자비스 같은 조력자가 되기도 한다. 컴퓨터활용 자격증 같이 AI활용 자격증이 나올지도 모른다. 엑셀을 못 하는 직원들이 고생을 하거나 다른 직원들에게 도움을 구하느라 효율이 떨어지듯, 앞으로는 AI를 못하는 직원들이 회사에서 고생할지도 모른다.
AI 때문에 사무직이 정말 종말할까?
아직까지는 환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왜 그런지 한 번 살펴보자.
1. AI는 책임을 질 수 없다.
은행에서 기업에 신용 대출을 할 때 신용평가 과정을 거친다. 금액이 워낙 크고 내용도 복잡하기 때문에 이 과정이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몇 달이 걸리기도 하는데, AI에게 이 과정을 맡긴다면 빠르게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에게 이런 일을 맡기지 않는 것은, AI는 책임을 질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자율주행되는 자동차가 사람을 쳤다면,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i) AI? ii) AI를 만든 업체? iii) 운전자? 상식적으로 AI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살인자가 총으로 사람을 죽였다 할 때, 살인자가 아닌 총에게 책임을 묻는 것과 같은 이치다.
2. AI는 블랙박스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SF 소설에는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에 대해, 우주레벨의 슈퍼컴퓨터가 750년 동안 계산한 답이 나온다. 그 답은 다름 아닌 42. 그러나 어느 누구도 왜 답에 42인지를 알지 못한다.
이처럼 AI나 머신 러닝과 같은 빅 데이터를 다루는 테크닉들은 모두 하나같이 Interpretability (해석 가능성) 문제를 가지고 있다. 특히 규제산업인 은행에서는 금융감독원이 AI가 내린 결정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면, 그것 자체가 커다란 문제가 된다.
3. AI는 아직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사무직 업무는 단순히 A를 넣어서 B가 나오는 구조가 아니다. 사무직 업무의 아주 중요한 부분은 바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고 조율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문서나 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 고객과 관계를 맺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언젠가는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제대로 된 관계를 만들 수 있는 AI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현재 생성형 AI는 직원을 대신해 고객과 깊은 관계를 형성하거나, 수많은 직원들이 얽히고설킨 프로젝트를 이끌어가거나 할 수 없어 보인다.
미래를 내다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ChatGPT에게 이런 질문들을 물어보면, 정형화되고 이론적인 답변에 그친다. 무언가를 요약하거나 정리하거나 흉내 내는 데는 최적화되어 있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 예상하는 것은 아직 어려운 것 같다.
그러나 단순히 요약하거나 정리하거나 흉내 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변화가 찾아올 수 있다. 감히 그런 변화들에 대해서 예측을 해보고자 한다.
1. 신입 직원 레벨의 사무직 수요가 대폭 축소된다.
보통 신입 직원 레벨의 사무직이라 하면 서류 작업을 하거나, 회의록을 작성하거나, 문서요약이나 조사 같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업무를 맡는다. 이런 업무들의 대다수가 AI로 대체되고 있으며 대체될 수 있다.
예전에는 고참 직원이 종이에 발표내용을 적어주면 빠릿빠릿한 후배 직원들이 파워포인트로 옮기고 했다. 이 역할을 생성형 AI가 완벽하게 대신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신입 직원 레벨의 사무직 수요가 대폭 축소될 것이다. 그럼 기업에서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직원을 뽑아서 그런 일을 시키면서 키우느니, 이미 관련 분야에 지식을 상당히 가지고 응용할 수 있는 고급 인력을 선호하게 될 것이다. 즉, 석사나 박사 급의 인력이 학부생 인력보다 더 선호될 가능성이 있다.
2. 사무직의 생산성이 대폭 향상된다.
생성형 AI를 도구로 제대로 활용하게 되면 당연히 사무직의 생산성이 대폭 향상될 것이다. 이는 사무직들에게 좋은 결과와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좋은 결과라 한다면 당연히 일의 성과가 늘어나고 더 적은 시간 일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안 좋은 결과라면, 도구의 활용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뒤쳐지고 또한 늘어난 생산성만큼 사무직 전체의 수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과거 사례에서도 보듯 기술 혁신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것은 생산직뿐 아니라 사무직도 마찬가지였다.
3. 새로운 직업들이 많이 생겨날 것이다.
반대로 생성형 AI와 관련된 산업이 확장될 것이다. 예를 들면, 생성형 AI가 만들어낸 창작품인지 인간이 만들어낸 창작품인지 찾아내는 기업이라던가, 생성형 AI 교육산업, 콘텐츠 산업 등이 발달할 수 있다. 기존의 콘텐츠 산업은 생성형 AI로 인해 새로운 생태계가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
자, 이제 처음 했던 질문에 다시 답을 해보자. 생성형 AI의 등장에 의해 사무직은 종말 할 것인가?
사무직은 종말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무직은 변화할 것이다.
생성형 AI를 비롯해 지금의 기술은 발전 속도가 예전보다 훨씬 빠르다. 20년 전만 해도 발전은 5년, 10년 주기로 이루어졌다. 지금은? 몇 달이면 새 기술이 나온다.
미래에는 또 어떤 기술이 각광을 받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미리 미래를 읽고 준비하는 자만이 결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