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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하면 피라미드, 피라미드 하면 이집트

5박 6일의 이집트 여행기 - 1

by 데카당스 Mar 10. 2025

2024년 12월, 길고 긴 아이의 겨울방학을 맞이해 이집트 여행을 다녀왔다.


과거 이집트가 영국의 보호령이었던 역사 때문에, 상형문자 해석을 가능케 한 로제타 스톤이나 스핑크스의 턱수염(?) 같은 중요한 유물이 이집트가 아닌 영국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등, 아직 영국과 이집트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거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집트는 영국인들이 선호하는 여행지이기도 했다.


5박 6일 일정으로 다녀온 이번 여행은 두 가지 테마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고고학과 휴양!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이집트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미라를 비롯한 고대 유물의 전시장이라면, 흔히들 잘 모르는 이집트의 다른 모습은 바로 북아프리카 최고의 휴양지라는 점이다. 모로코나 튀니지를 비롯한 북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들도 가성비 넘치는 휴양지였지만, 이집트를 이길 수는 없었다. 바로 이집트는 홍해와 지중해를 모두 접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의 처음 하루는 카이로와 기자에서의 고고학 여행에 집중했고, 나머지는 휴양지인 후르가다로 이동해 휴양을 즐겼다. 한 번의 여행에서 세계 7대 불가사의인 피라미드를 관람하고 아름다운 홍해의 리조트에서 쉴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이집트 여행의 최대의 장점이 아니었을까.




드디어 이집트에 도착하다!


이집트 여행의 시작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이집트를 비롯한 다른 북아프리카 나라들은 호텔은 저렴한데 반해 항공기는 저렴하지 않았다. 왠지 비행기를 제값 주고 타면 손해 드는 느낌이라 경유 편을 끊었는데, 경유지인 밀라노에서 비행기가 새벽 2시까지 연착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첫날은 버리는 일정이라 아깝지는 않았지만, 갑자기 여행의 피로도가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다음 날 바로 피라미드와 이집트 박물관 견학이라는 빡빡한 일정이 잡혀있었는데, 이렇게 되면 호텔에서 기껏해야 2시간 정도의 휴식 밖에 취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부부야 어른이니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약(=커피) 빨로 버틸 수 있지만, 다섯 살 딸아이에게는 엄청 피곤한 일정이 예견되었다.


공항 측에서는 연착이 되어 미안하다며 한 사람당 12유로씩의 식사쿠폰을 주었다. 공항 물가야 워낙 비싸니, 36유로라고 해서 풍족하게 먹을 수는 없었지만, 밀라노 공항에서 먹었던 피자와 파스타는 꽤 맛이 좋았다. 지난 로마 여행 때 먹었던 공항 피자는 편의점 냉동피자 맛이었는데, 그래서 기대치가 낮아진 탓도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 아이는 일찍 잠이 들었고, 아이를 안고 짐을 들고 가느라 번갈아가며 팔이 빠질뻔한 것을 제외하면 무사히 이집트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집트 공항에 도착하면 수많은 택시기사들이 호객행위를 한다고 들었고, 미리 부킹닷컴에서 수배해 놨던 택시 기사가 연락이 잘 안 되어 걱정이 되었는데, 새벽이라 그런지 장사진을 치고 있는 택시기사들을 볼 수는 없었다. 한참 연락 끝에 간신히 택시를 찾아 탈 수 있었다.


그렇게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하는 길. 의외로 깔끔한 도로의 풍경에 "아 잘 왔구나"라고 마음이 놓였다. 이전 튀니지 여행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그때는 택시에서 내리면 마치 하와이안 셔츠에 선글라스를 낀, 까맣게 그을린 상사 주재원 아저씨가 다른 차에서 내리며 "웰컴 투 아프리카!"라고 반겨줄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번에는 그냥 평범한 도시를 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웬걸! 조금 가다 보니, 앞에서 느린 속도로 역주행하고 있는 차를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택시 기사는 그런 모습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냥 자연스럽게 옆으로 슬쩍 비껴나갔다. 그렇게 기자를 향해 달리다 보니, 갑자기 도로에서 차선이 사라지고, 차들이 자기들 멋대로 달리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마치 차선은 마음속에나 있는 듯했다.


그제야 어디선가 이런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웰컴 투 이집트!




이집트 하면 피라미드, 피라미드 하면 이집트


우리가 하는 이집트에 대한 흔한 착각 중 하나는, 피라미드가 사막 한복판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피라미드는 기자라는 도시에 딱 붙어있다. 피라미드 뒤편으로 사막이 펼쳐져 있기 때문에, 도시 쪽에서 바라보면 피라미드가 마치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


우리가 묵었던 호텔은 무려 피라미드가 바로 보이는 "피라미드 뷰" 호텔이었다. 옥상에 올라가면 피라미드 뷰를 보면서 밥을 먹을 수 있었던 것. 이런 호텔이 흔치 않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피라미드가 워낙 커서 기자 시내 어디에서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레스토랑도 죄다 피라미드 뷰, 호텔도 죄다 피라미드 뷰를 자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호텔에서의 두 시간의 짧은 휴식을 마치고, 아침식사를 하러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 올라가자 희뿌연 모래연기 사이로 뭔가 커다란 게 보인다. 바로 피라미드였다.

호텔 옥상에서 보이는 피라미드호텔 옥상에서 보이는 피라미드

이집트 피라미드 뷰 호텔에서 먹은 아침은 영국문화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잉글리시 브렉퍼스트의 중동버전이랄까, 후무스처럼 보이는 알 수 없는 음식들과 다양한 빵과 과일, 견과류 들이 포함된 독특한 모습이었다. 독특한 향이 나는 이집트 커피를 두 잔쯤 들이켜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튀니지에서 오신 할머니와 따님이 우리 딸내미를 무척 귀여워해주셔서 아침 식사를 즐겁게 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로비로 내려갔다. 미리 예약해 둔 가이드 투어를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평점이 좋았던 "겟유어가이드"의 "카이로 피라미드 & 그레이트 스핑크스 프라비잇 투어"를 진행했다. 영어가 더 편한 아이 때문에 영어 가이드로 신청했는데, 가이드를 진행했던 에쓰라(Esraa)라는 친구 덕분에 최고의 여행이 되었다.

https://www.getyourguide.com/kairo-l92/nagta-tagiwa-hamggehaneun-gija-piramideu-peuraibis-ilil-tueo-t459032/?ranking_uuid=a6f289ff-188b-4be5-9187-727b90500b71


이집트 여행에서는 가이드 투어가 필수다.


먼저 선진국에 비해 대중교통이 열악하고 정보를 얻기도 어렵기 때문에, 운송수단이 포함된 가이드 투어는 이동에 따르는 피로함을 엄청나게 줄여준다. 우리가 진행헀던 가이트 투어는 스핑크스와 파피루스 상점, 향유 상점 방문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 자리에서 박물관 투어와 공항 드랍까지 추가한 덕분에 편하게 여행할 수 있었다.


또한 선진국에 비해 박물관이나 유적지 설명이 부실하기 때문에, 가이드 없이는 제대로 유적지를 즐기기가 어렵다. 이집트에 가기 전 무수히 많은 영상과 책을 통해 아이와 함께 이집트 고대문명에 대해 공부했지만, 막상 가보니 그냥 덩그러니 놓여있는 피라미드와 박물관의 유물들 때문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공부를 해도 전문가가 아닌 이상, 이해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 이런 부족한 부분을 가이드 투어가 메꿔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이드 투어는 호객행위를 막아준다. 특히 피라미드 앞에는 수많은 잡상인들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는데, 용감한 가이드가 잡상인들을 물리쳐준(?) 덕분에, 편안한 여행이 될 수 있었다. 물론 가이드 투어에 상점 방문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파피루스 제작과정을 보여주는 등 나름 공부가 되었고 좋은 기념품도 얻었기 때문에, 큰 불만은 없었다.


각설하고, 벤에 타고 달린 지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피라미드에 도착했다. 검문검색을 통과하자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에 영화에서나 보던 피라미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피라미드를 보자 드는 생각은 단 한 가지였다.


크다!

막상 피라미드를 보자 유구한 역사나 독특한 모양은 둘째 치고, 그냥 크기에 압도되었다. 돌 하나의 높이가 다섯 살 아이의 키보다 클 정도였으니, 도대체 어떻게 이 커다란 돌들을 근육의 힘만으로 옮겨왔는지 대단하게 느껴졌다.

낙타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낙타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피라미드 맨 위의 매끈한 부분은 석회암인데, 원래는 피라미드 전체가 석회암으로 코팅되어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대낮에는 하얀빛으로 반짝였다고 하는데, 그 후로 이집트 왕국이 여러 공사에 쓰거나 재정 문제로 다 뜯어가고 뜯기 힘든 맨 윗부분만 남았다고 한다.

추가비용을 내면 피라미드 안에 들어갈 수 있는데, 딸내미가 중간에 무섭다고 하거나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면 대책이 없기 때문에, 굳이 피라미드 내부를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기자에는 3개의 큰 피라미드가 있는데, 각각 작은 것부터 멘카우레, 카프레, 쿠푸 왕의 피라미드라고 한다. 가운데 있는 가장 큰 피라미드가 "대피라미드"라고 하는 쿠푸 왕의 피라미드인데, 약 146.5미터 높이로, 30층 아파트 높이가 약 90미터인 것을 감안하면 50층 높이에 육박한다.


투어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이 피라미드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고, 그전에도 수많은 시도들이 있었다고 한다. 계단형의 피라미드라던가, 각도 계산을 잘못해 이상한 모양이 되어버린 피라미드 등, 대피라미드 건축에 도달하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는 것. 피라미드를 외계인이 지은 것이 아닐까?라는 질문은 이런 시행착오들을 완전히 무시한 데에서 오는 것이었다.




아찔했던 낙타 체험


피라미드를 만져도 보고 그 위에 앉아도 보고 누워도 보고, 실컷 피라미드를 즐긴 후, 벤을 타고 피라미드에서 조금 떨어진 사막 한복판으로 향했다. 작은 부락과도 같은 곳이었는데, 보아하니 낙타나 승마 체험을 하는 관광객들을 위한 만남의 광장 같은 곳이었다.


특히 알록달록한 천을 뒤집어쓴 낙타들이 하나같이 다소곳하게 앉아있었는데, 그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동물원에서 봤던 낙타들은 뭔가 무례한 얼굴에 가까이 다가가면 침을 뱉을 것 같은 인상이었는데, 이집트의 낙타들은 비슷하게 무례한 표정이었지만 뭔가를 포기한 듯한 표정이어서 더욱 인상 깊었다.


가이드와 함께 한쪽의 낙타 무리에 다가가자, 인상 좋은 아저씨가 우리를 반겼다. 와이프와 딸내미가 낙타 한 마리를 같이 타고, 나는 혼자 낙타에 올랐다. 혹이 앞뒤로 있는 것이 쌍봉낙타였는데, 단봉낙타는 어떻게 탈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런데 궁금할 틈도 없이, 아저씨의 명령에 따라 낙타가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그 높이가 생각보다 엄청났다. 낙타의 평균 어깨높이가 1.8미터 정도 된다고 하니, 그런 롱다리의 낙타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니 깜짝 놀랄 수밖에. 간신히 정신을 추스르자 가족이 걱정되었다. 옆을 돌아보니 딸내미는 재미있다고 신이 나서 웃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유럽에 살다 보니 한국에 비해 말을 탈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많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엄청 놀라거나 무서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다소곳하게 앉아있는 낙타 1호와 2호다소곳하게 앉아있는 낙타 1호와 2호

그렇게 낙타가 앞으로 걸어가는데, 생각보다 빠른 데다 승락감(?)이 그리 좋지 않았다. 사진을 찍기는커녕, 혹에 달아놓은 나무 손잡이를 간신히 잡고 버티는데 급급했을 정도였다. 한 5분 정도 타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고, 그제야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낙타를 타고 우리는 3개의 피라미드가 잘 보이는 언덕으로 향했다. 과연 언덕에 도착하니 피라미드들이 한눈에 보였다. 그 뒤에는 도시가 펼쳐져 있었는데, 피라미드가 얼마나 도시와 가까운지 알 수 있는 풍경이기도 했다.

3개의 피라미드가 한눈에 보이는 장관3개의 피라미드가 한눈에 보이는 장관

20분가량 낙타를 타고나서 다시 부락으로 돌아왔다. 낙타가 몸을 일으켰을 때보다, 다시 웅크릴 때 더 아찔했지만, 이미 20분이나 낙타를 탄 준 프로로서 당황하지 않고 태연하게 대처했다. 아찔했던 낙타 체험이었지만, 아이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라미드가 한눈에 들어오는 뷰도 장관이었지만, 지구상 어디에서 피라미드를 배경으로 사막 한복판에서 낙타를 타보겠는가?


낙타 체험을 마치고 다음 일정으로 스핑크스가 있는 쪽으로 이동했다. 아마 스핑크스가 있는 쪽과 피라미드가 있는 쪽으로 입구가 나뉘어있는 것 같았는데, 스핑크스가 있는 쪽에 현지인들이 훨씬 많은 걸 보니, 대중교통으로는 주로 스핑크스가 있는 쪽 입구로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피라미드에서 꽤 먼 거리를 한참이나 걸어가야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우리는 편안하게 차를 타고 이동했으니 프라이빗 가이드 투어를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착해서 내려보니 스핑크스와 함께 이름 모를 신전과 건물 유적이 가득한 공간이었다. 어떤 후기들을 보면 스핑크스가 피라미드보다 더 인상 깊었다고 하는 후기들도 있었는데, 이미 피라미드를 질리게 구경하고, 오전 내내 수면부족과 싸웠던 우리에게 스핑크스는 큰 인상을 남기지 않았다.


마치 영국에 살고 있는 우리가 스톤헨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런던에서 서쪽으로 고속도를 타고 가다 보면 스톤헨지가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이 보이는데, 그런 느낌으로 스핑크스를 보며 우리는 그냥 "어 스핑크스네?"하고 말았던 것이다.

생각보다 인상 깊지 않았던 스핑크스생각보다 인상 깊지 않았던 스핑크스

그렇게 3-4시간가량의 오전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이후에 파피루스 상점과 향유 상점에 들렀는데, 파피루스는 생각했던 것보다 질감 같은 것이 신기했지만, 너무 상업화되고 말도 안 되는 가격 때문에 흥미가 떨어졌고, 향유 상점은 별로 볼 것도 없어서 금세 나와버렸다. 따로 후기를 쓰기도 민망할 정도인데, 아마 피라미드가 너무 압도적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우리 부부는 늘 종이와 색연필 등을 챙겨가는데, 나중에 숙소에 도착해서 아이가 그렸던 피라미드 그림으로 이집트 1부를 마치고자 한다. 잘 보면 피라미드 3개가 나란히 있는데, 낙타에서 본 풍경을 그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중에 런던에 돌아와서도 한 동안 피라미드 노래를 부르고 다녔으니, 다섯 살 아이에게 무척 인상 깊은 여행이었던 모양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6

다음 여행기에서는 이집트 박물관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그 후에는 휴양지인 후르가다로 넘어가 지금껏 봐왔던 바다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오렌지베이 요트 투어, 가성비 최고였던 후르가다의 올인클루시브 호텔에 대해서 적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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