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같은 마을로 떠나는 여행
유럽에 사는 것의 장점은 역시 여행이 아닌가 싶다. 부다페스트 생활 2년 차 때, 이번엔 체코로 주말여행을 다녀왔다. 체스키크룸로프가 그렇게 예쁘다는 말을 들어 프라하와 체스키를 다녀오는 일정이었다.
체스키 크룸로프는 체코 남부의 작은 마을이다. 구 시가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로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인구 12,000명 정도의 작은 마을로 마을을 걸어서 구경하는데 반나절이면 충분했다.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걸어가면 먼저 체스키 크룸로프 성이 보인다.
성 안쪽으로 들어가면 우습게도 벽돌 모양으로 벽을 칠해놓았다.
체스키 성에 올라오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이 풍경을 보기 위해서다.
체스키 성에는 또 다른 명물이 있는데 바로 이 곰들이다. 성의 해자에 물을 채워 넣는 대신 곰을 키우고 있었다. 아이들은 곰을 발견하고 신나서 소리쳤다. 뭐가 그렇게 좋을까.
성을 실컷 구경하고 이번엔 마을로 내려왔다. 마을을 다 둘러보는데 두 시간도 안 걸렸다.
먼저 마을 중앙의 광장으로 간다. 스보르노스티 광장이다.
마을을 둘러싸고 작은 강이 흐르고 있다. 물 흐르는 소리에 산책하는 발걸음마저 가벼워진다.
유럽의 작은 마을들의 매력은 역시 골목에 있다. 골목 곳곳에 예쁜 기념품 가게와 카페가 여행자들의 발을 붙잡았다.
조금 걸었더니 이제 배고파졌다. 검색해서 찾은 레스토랑으로 가본다.
체코에 왔으면 고기요리를 먹어야 한다. 특히 체코식 족발인 꼴레뇨는 독일식 족발인 슈바인 학센과 비슷한데 체코에 왔으면 꼭 먹어봐야 하는 음식이라고 한다.
크로체마 사틀라바라는 로컬 레스토랑을 찾아 잔뜩 시켜보았다. 역시 물가가 저렴한 체코라 같이 갔던 가족과 배 터지게 시켜 먹었는데 한 가족당 5만 원도 안 나왔다. 맛도 대만족!
맛과 서비스, 가격까지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한 끼였다.
에곤 쉴레는 체코를 대표하는 화가 중의 하나다. 오스트리아 태생이지만, 어머니의 집안이 체스키에 있어 어렸을 때부터 자주 체스키에 머물렀다고 한다.
나중에는 아예 1년 정도 체스키에 살았다고 하는데 기행은 물론 문란한 생활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싫어했다고 한다.
에곤 쉴레 미술관을 마지막으로 아쉬운 발걸음을 옮긴다.
프라하는 체코의 수도로 동유럽 하면 생각나는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보통 빈, 프라하, 부다페스트를 묶어서 동유럽 여행을 하는데, 같은 동유럽에 속하지만 세 도시가 너무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여행할 수 있다. 이 점이 동유럽 여행의 매력인 듯하다.
프라하 여행을 하면서 느낀 점 한 가지는 주차가 너무 어렵다는 점이다. 프라하 성은 그나마 괜찮은 편이었는데 도시 내에 주차공간이 많이 부족해서 애를 먹었다. 나중에는 그냥 호텔에 차를 주차해 놓고 그냥 택시를 타고 다녔을 정도.
우선은 예전 신혼여행 때 못 가봤던 프라하 성을 가봤다.
프라하 성에는 유명한 관광지들이 있지만 아이들과 하는 여행에서는 관광지를 제대로 돌아보기가 힘들다. 덕분에 깊게 즐기기보단 얕고 넓게 돌아본다.
체코와 프라하를 얘기할 때면 프란츠 카프카를 떼어놓고 얘기할 수 없다.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 중에 "성"이란 작품이 있는데, 황금소로에 있는 카프카 생가를 보면 안개 낀 추운 날 저녁 촛불 하나만 켜놓고 글을 쓰고 있는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프라하 성에는 또 하나의 숨은(?) 명소가 있으니 바로 인스타그램 사진의 명소인 프라하 성 스타벅스다. 우리가 갔을 때는 코로나로 인한 여행 제한이 막 없어졌을 때라 관광객이 많이 없었는데도,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이번에는 프라하 야경을 한 번 본다. 프라하 구시가지로 가서 바츨라프 광장부터 가본다.
이번엔 로맨틱한 카를 교를 밤에 걸어본다. 신행당시에도 왔던 분명 같은 장소인데 아이와 함께 오니 다른 느낌이다. 같은 장소 다른 느낌이랄까. 자꾸 업어달라 보채는 아이 때문에 사실 그냥 빨리 지나가고 싶었다.
카를교에서 보는 프라하 성의 야경은 충분히 낭만적이었다. 그러나 부다페스트에서 온 우리에게 솔직히 큰 감흥은 없었다. 역시 야경은 부다페스트가 최고..
야경을 감상하고 이번엔 오랜만에 한식을 먹으러 간다.
프라하에 매운 곱창을 파는 한식당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예약시간에 맞춰서 들어갔는데, 한국인 손님보다 오히려 체코 현지인들이 많은 것 같아 놀랐다.
자세한 메뉴와 정보는 홈페이지에서... (광고 아닙니다!)
"맛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프라하 한식당 "맛집"은 정말 맛집이 맞았다. 여행의 피로를 한 번에 가시게 하는 최고의 맛이었다. 대만족!!
다음 날 아침, 스트라호프 수도원으로 향한다. 맥주로 특히 유명한 수도원인데 운전 때문에 맥주는 못 먹고 수도원 구경만 했다. 1143년에 세운 수도원으로 지어진지 900년이 다 되어가는 수도원인데도 절대 오래되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관리를 잘했을 뿐 아니라 분명 끊임없는 보수를 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도서관으로 향해본다. 스트라호브 수도원의 도서관은 아름답기로 유명했다.
수도원 안쪽으로 쭉 들어오면 프라하의 전경을 볼 수 있는 장소가 나온다. 이곳에서 보는 프라하도 제법 멋졌다.
짧은 방문이었지만 스트라호브 수도원은 분명 방문할만한 가치가 있는 장소였다. 시간이 더 많고 날씨가 더 좋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번에는 프라하의 마지막 여행지, 짠내투어에도 나와서 유명해진 그레보프카 와이너리로 향한다.
그레보프카 와이너리는 14세기에 조성된 유서 깊은 와이너리로 와이너리뿐 아니라 넓은 공원 부지 덕분에 프라하 시민들의 쉼터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었다.
... 그러나 주차 장소를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대부분의 도로가 주민전용 주차공간이라 거의 30분을 헤맨 끝에야 간신히 주차를 할 수 있었다. 여행에 참고하시길...
카페에서 본 뷰도 좋았고 와이너리도 구경하기 좋았다. 그러나 불친절한 서비스와 불편한 주차 때문에 멋진 뷰를 온전히 즐기기 어려웠다. 분명 멋진 공간이었지만 아쉬움이 남았다.
이렇게 아쉬움을 마지막으로 짧은 체코 여행을 마무리했다.
체코와 헝가리, 오스트리아는 닮은 듯하면서도 완전히 달랐다.
한 때 같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속했지만 오스트리아 빈이 왕정 중심의 행정 도시였다면 헝가리는 농업, 체코는 공업을 담당하는 역할이었다고 한다.
공업이 발달하면 자연스레 인구가 도시로 몰리고 부와 함께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예술도 덩달아 발전하게 된다. 헝가리에 비해 체코의 예술이 훨씬 발전한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또한 그 예술도 오스트리아의 왕정 중심의 귀족 예술과 사뭇 다른, 개인적이고 사유적인 예술에 가깝다.
그러다 보니 프라하의 예술과 분위기는 오스트리아의 화려함과는 다른, 동유럽의 우울하면서도 반항적인 느낌이 들었다.
반면 체스키 크룸로프는 너무 평화로웠고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아름다움이 있었다. 여유만 있다면 한 일주일정도 마을에 머물며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