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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owhat Jun 20. 2022

가족이 미울 때 보는 영화

'레이첼 결혼하다'와 '걸어도 걸어도'


가족 이야기에 대한 갈증이 생기면 생각나는 영화 두 편, <레이첼 결혼하다(2008), 조나단 드미>와 <걸어도 걸어도(2008), 고레에다 히로카즈>다. 이 때 나의 갈증이란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보고 싶다’ 보다는 좀더 복잡 미묘한 감정이다. ‘가족 영화’라는 장르가 으레 환기하는 류의 드라마를 향한 갈증도 아니다. 그러니까 나는 내 가족이 미울 때, 내 가족을 못 견딜 것 같을 때, 혹은 내 가족을 향한 나의 이기심을 확인(?)받고 싶을 때 이 두 영화를 꺼내든다. 

# <레이첼 결혼하다>는 문제아 동생 킴(앤 해서웨이)이 언니 레이첼(로즈마리 드윗)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중독 치료 재활원에서 나오는 날부터 시작된다. 킴은 모처럼 만난 가족들과 반갑게 정을 나누며 언니의 결혼을 준비하는 시간을 가진다. 서로를 극진히 아끼는 네 식구, 겉으로 보기에는 사랑과 보살핌만이 존재하는 화목한 가족이지만 킴은 계속 왠지 모르게 가족들이 불편하다. 



이 영화를 보고 난 내 안에도 존재하던 비밀한 감정을 들킨 것만 같았다. 바로 ‘내 가족이 밉다’라는 감정을. 이상하게 이따금 가족을 ‘못 견디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가족과 주말 막장 드라마에 나올 법한 수준의 갈등을 겪은 적도 없는데 말이다. 잔잔한 호수의 표면에 대수롭지 않은 돌멩이 하나가 파장을 일으키듯, 오히려 가족 안에선 늘 말도 안되게 사소한 것 가지고 상처 입고 상처 입히는 일이 잦았다. 그리고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만으로도 난 뜨악해 했다. 가족이란 ‘좋다, 밉다’라는 가치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숭고한 어떤 것이 아닌가, 라는 자기 검열적인 생각에서였지.



하지만 사람이란 결국 자기 자신을 가장 아끼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기적인 존재다. 그렇다보니 이 근본적인 자기애적 욕망은 가족이라는 공간 안에서 가장 극적으로 도전 받을 수밖에 없다. '혈연'이라는 것에는 역사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무조건적 사랑과 배려가 전제돼 있으니까 말이다. 다른 인간에 대해서는 이런 마음을 의무적으로 가질 필요가 없지만, 가족은? 곧장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것이 학습된 것인지 어쩐 건지는 모르겠다. 과학적으로 규명할 수 없는 ‘가족애’라는 것의 실체가 여기 어디쯤에 있지 않을까 싶다. 

레이첼은 결혼식 하루만큼은 자기가 주인공이고 싶다는 소박한 이기심을 갖고 있었다. 자신의 결혼식인데도 사람들의 관심과 신경은 약물 중독인 동생 킴에게만 몰려 있는 상황 가운데, 레이첼은 동생을 미워하기에 이르는 자신의 마음을 다잡으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반면에 킴은 자기만 ‘관심사병’이 돼서 온 가족들의 과도한 친절에 시달리고 있다는 피해의식에 빠져 있다. 9개월만에 만난 이 두 자매의 충돌은 예상된 수순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충돌의 폭발력은 상당히 컸다. 


# <걸어도 걸어도> 역시 같은 의미에서 영화 내내 ‘섬찟’한 느낌을 자아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자신의 가족이 어땠는지야 알 도리 없지만, 그는 네 식구에 불과한 한 가족 안에도 수많은 비밀한 감정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던 듯 싶다. 그리고 언젠가 그가 한 인터뷰를 봤다. 이 영화를 만들기 얼마 전, 부모님이 모두 세상을 떠났다는. 


이 영화에서도 가족이란 존재는 ‘가족이라서’ 서로 상처를 주고 받는 존재다. 내가 평소에 가장 많은 상처를 입히는 사람은 고작 몇 명 되지 않는 내 가족들이다. 주인공 료타 역시 되도록이면 고향의 부모님 집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보통 연례 행사로 얼굴만 비치면 그의 할 일은 다 한 셈이 되곤 하는데, 1년에 한 번 있는 그 방문에서도 상처의 파편들은 곳곳에서 불쑥 날아든다. 예컨대 전 남편과 사별하고 료타와 결혼한 새 며느리를 두고 순진한 얼굴로 ‘중고’라 표현하는 어머니, 본인이 듣기에 거북한 이야기가 펼쳐지면 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가부장적인 아버지, 어머니 속도 모르고 친정에 얹혀 살 궁리만 하는 딸. 이들 사이에서 상처 파편들은 기척도 없이 집 안을 유영한다. 


특히 어머니(키키 키린)는 이 가족 안에 오래도록 묵힌 감정을 가장 잘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인자하고 헌신적으로 식구들을 위해 밥을 짓고 간식을 만들지만, 내면 깊은 곳에 수십년 간 고통을 쌓아왔다. 큰아들의 죽음, 남편의 외도...세월이 다 흐른 지금, 평온하고 평범해 보이는 한 가족의 ‘어머니’는 오늘의 이 표정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오랜 기간 그 고통을 삼키고 소화해 냈을까. 또 어떻게 해냈을까. 사실 이것은 공포영화보다도 무서운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정적인 카메라가 잡아내는 집 안 풍경에는 이따금 탁하고 무거운 공기의 질감까지 담겨있다.


# 두 영화의 가족들은 모두 묵은 오해나 원망을 풀고 ‘보다 더 화목한’ 가족이 될 수 있을까? ‘전혀’다. 그건 현실이 아닐 것이다. 이들 가족은 이후에도 끊임없이 냉탕과 온탕을 오고갈 것이다. 가족이란 그런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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