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눌러준 하차벨

압축과 해방사이

by 박노아


출근길 관찰하기


아침 공기가 차갑고 청명하다. 햇빛은 비치지만, 온기가 뺨에 닿지는 않는다. 버스 뒷자리에 앉아 찬찬히 사람들의 출근길을 바라본다.


앞자리에 앉은 남자는 머리를 손질한 지 얼마 안 되었나 보다. 귀밑 옆머리가 마치 손이 베일 듯 날이 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그 옆좌석 여자는 차분한 긴 생머리다. 하지만 정수리 쪽이 아침 안개를 맞은 듯 살짝 곱슬거리는 걸 보니, 주기적으로 매직 스트레이트를 해야 유지되는 머릿결 같다. 문득, 누군가도 지금 나를 이렇게 관찰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압축되는 패딩


버스 안은 두터운 겨울 패딩들로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 있다. 환승역을 향해 가는 버스는 정거장마다 서지만, 내리는 사람은 없고 승차하는 사람만 늘어난다. 그들의 두툼한 패딩은 서로의 몸에 밀려 점점 얇게 압축되고 있다.



사람들의 귀에는 저마다 이어폰이 꽂혀 있다. 음악을 듣고, 강의를 수강하고, 드라마를 시청하며, 스포츠 중계를 들으며... 이 좁은 버스 안에서 다들 각자의 세상과 소통 중이다.






누구도 누르지 않는 벨


어느새 환승역이 가까워온다. 하나둘씩 단말기에 하차 태그를 하기 시작한다.



"하차입니다." "하차입니다." 십여 명은 족히 태그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이상하다. 정작 아무도 하차 벨을 누르지 않는다. 다들 누군가가 눌러주겠거니, 생각하는 걸까.

그때, 내 뒷좌석에서 누군가 벨을 눌렀다.







딩동, 그리고 땡



딩동― 빨간불이 들어오며 "이번 정류장은..." 하는 안내 멘트가 울려 퍼졌다.



'얼음'속에 갇혀 있다가 '땡'을 맞이한 해방감이라고 할까? 서로 패딩의 부딪힘이 부산하다.



나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조용히 기도를 시작했다.

이 복잡한 버스 속, 벨 하나 누르는 것도 미루며 바쁘게 사는 이들의 삶이 안녕하기를.

각자의 자리에서 오늘도 무탈하고 행복하기를.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가 눌러준 벨 덕분에 오늘 하루 더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압축이 풀려 다시 빵빵해진 패딩 덕분일까.

한겨울의 칼바람 속이지만, 상쾌한 바람이 되어

출근길을 재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