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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단 Oct 23. 2024

원념의 상징은 붉음

怨念

처음의 붉음은 집안 곳곳에 붙은 빨간딱지로부터 시작된다. 5살도 되기 전, 도시의 한 아파트에서 살던 때였다. 빨간딱지를 보고서 든 생각은 '빨간색이 아닌데.'였다. 건들지 말라는 주변의 가라앉은 목소리를 뒤로 하고 말이다. 그 붉음은 항상 팔에 달고 살았던 울룩불룩하게 올라온 아토피와도 닮았고, 예민한 성격 탓에 작은 소음에도 울음을 터트리던 붉게 상기된 얼굴과도 닮은 색이었다.


쫓겨나다시피 떠나 도시 외곽의 시골로 이사했다. 대나무로 사방이 둘러싸인 한옥집은 마치 궁전 같았고 나를 동화 속 공주님으로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자연에 둘러싸여 항상 시달리던 아토피도 사라졌고, 예민한 나를 고요함으로 달래줬다. 풀벌레와 새소리는 전혀 소음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부모님에게는 벼랑에서 뒷걸음치다 마주한 끝자락이었다. 벌레가 득실거리고, 따뜻한 물 하나 나오지 않고, 마땅한 화장실조차 없는, 문명과 떨어진 비문명의 공간.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다 우연히 만난 마을의 문화재 옆 폐가였다. 그럼에도 예상치 못한 우연은 희망을 만들어냈나 보다. 문을 달고 먼지를 치웠다. 숲에 파묻혀 밤이 되면 가로등 빛 하나조차 안 보이는 곳이었으니 현실에서 도망치기엔 완벽했을 것이다. 집을 보여주길 창피해했으니 패배자의 삶이라는 증표이자 굴욕의 장소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다음 붉음은 기름냄새로부터 맡았다.


문이 벌컥 열리고 내 귀에 무언가가 뿌려졌다. 집에 기름냄새가 한가득 났다. 부모님의 싸움 소리가 유난히 귀를 울리던 8살의 어느 날이었다. 나는 내복을 입고 방에 오빠와 전기장판 위에 이불을 덮고 앉아있었다. 나는 문을 등지고 앉아있었는데 문고리가 나무문에 부딪히는 소리가 울리며 문이 닫히고 열리기를 반복했다.


오빠에게 '나 귀에 뭐 들어갔어.'라며 칭얼거렸다. 사실 그때는 냄새가 독해서 락스인 줄 알았는데 '신나'라는 기름이었다. 하지만 오빠는 내 귀를 봐주지 않고, 내 뒤 요란스러운 모습을 눈에 담고 있었다. 나는 그런 오빠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뒤가 튀어나온 TV와 물건을 부수고 집 곳곳에 기름을 뿌려대는 아빠와 몸싸움을 하는 엄마. 집에 기름 냄새가 가득 퍼졌다.


오빠는 서랍장에서 하나를 빼고는 나에게 쥐어줬다. 그리고 자기도 하나 들었다. 우리의 옷들이었다.


"나가자. 다신 여기 오지 말자."


우리의 집은 마을 깊숙이, 그리고 높이 있었기에 내 몸만 한 서랍장 하나를 들고 낑낑 거리며 걷는 것은 힘들었다. 내복에 겉옷 하나만 입었기에 추웠다. 오빠한테 힘들다고 했지만 오빠는 가야 한다고만 했다. 그리고 이제 엄마아빠랑은 다시는 보지 말자고. 나는 그 상황을 전혀 이해를 못 했지만 더 이상 묻지 않고 오빠를 따라갔다.


옆 마을에 있는 민우 오빠 집으로 갔다. 민우 오빠는 3학년이었는데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누나와 둘이 있었다. 밀려오는 따뜻함에 나는 꾸벅꾸벅 졸았지만 오빠는 TV를 보지도, 잠을 자려 눕지도 않았다. 그 뒤로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엄마가 자던 나를 들어 안았고, 어깨너머로 경찰차 위 돌아가는 빨간 불빛이 눈을 찔렀다.


그 뒤로 불을 지르거나 동반자살 시도는 더 일어나지 않았고, 엄마의 일방적인 소리지름은 있었으나 부모님이 싸우지는 않았다.




엄마가 학교 앞으로 데리러 온 적이 있다. 피아노 학원에 가야 하는데 괜찮다며 나를 끌었고 손 너무 꽉 부여잡아서 아프다고 했다. 집에 도착하니 마루를 막은 유리문이 다 깨져있었다. 엄마는 오빠가 공으로 놀다가 깬 거라고 했다. 오빠는 자기가 그랬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날의 사실을 들었는데, 아빠의 옛날 사업과 관련된 아줌마가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을 데리고 찾아왔다고 했다. 집의 유리문을 깨면서 돈을 내놓으라고 했다고.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 걸 보고 돌아갔다고. 이제 안 찾아올 거라고. 나는 아줌마가 빨간 립스틱에 빨간 구두를 신었을 거라고 멋대로 상상했다.


그리고 울면서 엄마를 안아줬다.

"엄마, 내가 얼른 커서 지켜줄게. 내가 엄마 괴롭히지 못하게 해 줄게."


가족을 위협하는 단 하나의 적이 누구인지를 처음 깨달은 순간이다. 그건 바로 붉은색이다.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처음으로 타인의 감정을 이해했고, 위로했던 순간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분노를 느낀 순간이다. 내가 원하는 토끼 인형을 선물로 못 받아서 울었던 것과는 다른, 가슴으로부터 치열하게 끓어오르는 분노. 우리를 괴롭게 하는 그 무언가를 향한 증오, 자꾸만 세상 끝으로 밀어대는 그것에 대한 원한.


최근에 오빠와 이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오빠는 깨진 유리문보다, 소리 지르는 빚쟁이 아줌마보다, 그 앞에서 봐달라고 무릎 꿇고 비는 엄마보다, 울지도 못한 채 겁먹은 자신을 지켜보는 아저씨의 눈빛이 가장 안 잊힌다고 한다. 가혹한 말을 내뱉는 사람 뒤에서 유리문을 힘껏 부숴놓고서는 동정 어린 눈빛을 보내는 검은 양복의 아저씨. 나는 울던 엄마를 안았는데, 울지 않던 오빠는 누가 안아줬을까?




나의 상징은 줄곧 붉은색이라고 생각해 왔다. 볼에 홍조가 있어서일 수도 있고, 내가 화(火)요일에 태어나서일지도 모른다.


나는 크면서 점점 도시로 돌아갔다. 정확히 말하면 시골은 도시가 되어갔다. 도시의 아이들과 경쟁하고, 서울 낯선 타지에서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조기졸업 후 판교 어느 회사에 취업하고, 점차 스스로 자리를 잡았다. 장학금이나 정부지원 등 얻을 수 있는 혜택은 다 찾아먹었기에 빌빌 거리며 살지도 않았다.


밤하늘 대신 서울의 붉은 야경과, 대나무 숲 아래 대신 7평짜리 오피스텔 천장 밑을 택했고, 심리학이나 소설도 바닥 내던졌다. 좋아하는 사람보다 이익이 되는 사람을 찾고, 날카로운 혀 끝으로 쓸모없는 관계는 잘라내고, 연애를 했음에도 사랑한 적이 없다. '누가 밑바닥에서 나만큼 올라오겠냐'며 빨간 깃발을 보면 뻘게진 눈으로 뛰어가는 "투우"처럼 얼마나 기세등등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아득바득 이뤘다. 한 번씩 가지는 외식, 기분 전환을 위한 여행, 평범한 빌라에 자리한 본가... 또 뭐더라. 빚이 생기지 않을 거라는 안도? 싸우지 않는 가족? 내가 가진 배경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는 나?


겨우 이룬 '생존'이 내가 마주한 이들에겐 태어날 때부터 당연하게 주어졌다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서글프긴 했지만 말이다.




겨울이 되면 마당에 빨간 동백꽃이 폈었다. 다른 때에는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쨍한 녹색만 띠다가 겨울이 되어 다른 꽃이 다 졌을 때 혼자 늦은 꽃을 피우며 엇나간다. 그것도 그 추운 겨울에 피는 독한 것. 독해봤자, 어떻게든 의미를 두어봤자, 꽃은 그저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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