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앞에는 은행나무가 있었다. 60년도 넘은 은행나무는 눈에 가득 담길 정도로 혼자 크게 우뚝 서있었다. 가을마다 열리는 은행들은 도시의 은행나무와 다르게 냄새가 독하지 않았고, 은행을 구워 매일 먹었다. 하늘에 넘실거리도록 넓게 뻗은 나무줄기와 잎을 가진 은행나무의 거대함 아래에서 벅차오르기도 했다.
어느 날, 시끄러운 전기톱 소리에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잠에서 깼다. 마당 밖으로 나가보니 은행나무의 줄기들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왜 은행나무를 베냐고 물었다. 은행나무가 너무 커서 집을 가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소리쳤다. 무슨 짓이냐고, 당장 말리라고. 엄마는 마을 이장 할아버지의 결정이고, 우리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말릴 수 없다고 했다. 은행나무는 은행나무인지도 모를 정도로 잎 하나 남기지 않고 앙상해졌다. 그 과정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무력함에 점철되어 갔다.
나무 너머로 옆 도시에서 지어지고 있는 아파트가 보였다. 시내와의 통로가 뚫리고 넓은 아스팔트로 지나다니는 차소리가 들어왔다. 해가 지면 가로등과 아파트의 불빛이 켜졌다. 조용해야 하는 밤에 조용하지 못했고, 어두워야 하는 밤에 어둡지 못했다.
신목이 된 나무를 베면 저주를 받는다. 나무를 벤 할아버지는 그날 이후 얼마 못 가 병에 걸렸다. 병명은 없고 늙어서 걸리는 병이었다. 그냥 아프다고 했다. 나는 은행나무의 저주라고 생각했다. 자연 속에 있을 때는 독기 하나 없는 나무지만 도시의 매연을 맡은 은행나무는 얼마나 독하고 냄새가 고약할까.
해가 뜨기 전 새벽, 이장님네 할머니가 나무 앞에 물을 떠놓고 기도를 하고 갔다. 1년 채 넘기지 못하고, 할아버지는 죽었다. 나는 나무를 벤 사람의 죽음을 기리지 않았다.
여름에는 밭으로 올라가는 산길에 반딧불이가 찾아오곤 했다. 밤이 너무 어두워서 별들이 밝은 곳이기에 반딧불이들도 좋아했던 것 같다. 엄마가 반딧불이를 잡아서 보여줬는데 조금 징그러워서 멀리서 봐야 예쁜 친구들이라고 생각했다. 민감한 친구들이라는 말에 소리도 내지 않고 다음에 또 오라며 마음속으로 인사했다.
장마철에 매년 대문 앞에서 소리를 내는 두꺼비도 있었다. 소리가 들릴 때마다 "대감님, 또 왔다!"라며 강아지보다 집을 잘 지킨다고 농담하기도 했다. 대감님이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생각해서 뭔가 대하기 어려워했지만 장마철마다 매년 놀러 오는 게 반가웠다. 어쩌면 사실 우리 집은 두꺼비집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우리가 옆에 지나가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년 찾아왔고 혼자 우렁차게 소리쳤다.
어떤 날은, 엄마가 오빠와 나를 양 옆에 손을 잡고 걸어가는 중 멧돼지와 마주쳤다. 하필 멧돼지도 새끼가 두 마리를 데리고 걷는 중이었다. 어머니끼리는 통하는 게 있었던 걸까. 두 엄마는 서로 놀라 아이를 뒤로 감추고 눈으로 묵언의 합의를 나눴다. 멧돼지가 물러서고 엄마는 우리의 손을 꼭 잡은 채 멧돼지가 지나가길 기다려줬다.
우리가 집을 떠날 즈음, 이들도 함께 떠났다. 반딧불이가 오기에는 너무 밝고, 두꺼비가 울기에는 너무 시끄럽다. 더 이상 농사짓는 사람은 없는데 멧돼지는 아직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왜 우리 집의 울타리는 모두 베여야 했을까.
대나무 숲이 베인 날도 있었다. 벌레가 많이 나온다는 이유다. 어느 날, 살구나무와 매화나무와 매실나무가 있는 곳의 땅이 모조리 사라졌다. 주차장을 만들기 위해서다. 여름에 반딧불이가 종종 찾아오던 산길에는 밤에 어둡다는 이유로 가로등이 놓였다. 그 누구도 오지 않는 곳이었는데도 말이다.
우리는 쫓겨났다. 서원의 대문은 굳게 닫혀있고, 모든 걸 베어버린 할아버지들은 모두 죽었고, 식감을 이유로 살아있는 돼지를 뜨거운 물로 서서히 잡던 사람들도 더 이상 제사를 지내러 오지 않는다. 왜 밤조차도 밝고 시끄러워야만 할까? 왜 그렇지 않음을 두고 볼 수 없을까?
사춘기 시절, 소나무 밑 바위에서 앉아 사춘기 시절 눈물을 훌쩍거리곤 했다. 나의 가출은 집이 아닌 집의 공간에 있는 것이었고, 얼마 있지 않아 눈물을 닦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한밤 중의 무덤조차도 나를 지켜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더 이상 내가 숨죽여 울기에는 나의 삐쩍 마른 치부가 모두에게 훤히 보이는 곳이 되었다.
이제는 집 밖을 나갈 때 옷을 갖춰 입고, 모자를 쓰고 나간다. 한 층에 10채가 있는 닭장 같은 집이다. 낯선 눈들과 마주치면 껄끄러운 표정을 짓고 고개를 피한다. 마을 깊숙히 파묻힌 한옥집보다 더단절된 공간으로 와버렸다.
은행나무. 8년 정도 지났나? 옛날에 비해 여전히 앙상하지만 다행히도 지금은 많이 복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