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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h Oct 03. 2023

예민함과 수치심이 영어실력에 미치는 영향

지금의 나는 영어를 말하며 15년 전보다 훨씬 많은 문법적 실수를 한다. 말하면서 실수임을 깨달으면 다시 고쳐 말하기도 하지만, 맥락상 문제가 되지 않으면 대부분의 경우 그냥 넘어간다. 과거에 비해 더 많은 실수를 하면서 훨씬 유창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2000년, 나는 여대를 다니고 있었는데, 우리 학교엔 세계 각국에서 외국인 남학생들이 교환학생으로 와 있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성문기본 같은 책들로 대학을 가기 위한 문법이나 독해위주의 영어만 하던 내게, 교내에서 마주치는 그들은 그저 두려움의 대상과도 같았다. 멀리서 걸어오던 그들이 혹시나 길을 물어볼까 가던 길이 아닌 곳으로 돌아가기도 고, 친구를 통해 피할 수 없는 자리가 생기면 그들의 대화를 듣기만 하다가 극도로 내성적인 사람으로 낙인찍히기도 하였다. 어쩌다 한 마디씩 하면, 영어를 할 줄 알면서 왜 말을 안 해?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그건, 그 몇 문장을 내뱉기까지 수백 번 문법 체크를 하고 머릿속으로 실수가 없는 완벽한 문장을 만든 후에야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화가 자주 끊겼고, 무엇보다, '소통'을 전혀 할 수 없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내가 다니던 대학의 1교시는 아침 8시에 시작했고 '대학영어' 같은 교양 필수과목들이 주로 그 시간에 배정되어 있었다. 야행성인 나는 천근만근인 몸을 이끌고 첫 영어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로 들어섰다. 내겐 새벽과도 같은 시간인데, 교실 내에서는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왠지 모를 활기참마저 느껴졌다. 곧이어 들어오신 회색 단발머리의 캐나다인 교수님이, '너희 중 외국에서 살았거나 연수를 받아본 적이 있는 학생?'이라는 질문을 던지셨는데, 열다섯 명가량 모인 그 작은 집단에서 명이 넘는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 아, 망했다, 이번 교양영어는 이렇게 C이하를 보장받는구나. 시작도 해보기 전에 좌절하며 포기해 버렸다. 


그 시절 스스로의 발전을 막고 끊임없이 나를 주저앉힌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나를 평가하는 기준이 내 안에 있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나'를 지나치게 신경 쓰다 보니 한 번 넘어지면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은 걱정과 불안이 몰려왔다. 상대와 의미 있는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보다, 내 말에 시시각각 변하는 것 같은 상대방의 표정과 태도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그래서 많은 것들을 놓쳤다.




한국과 일본을 흔히 'Shame culture'*라고 한다.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국화와 칼'에서 언급한 개념으로, 그는 일본 문화를 수치문화로 분류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 역시 남(집단)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타인의 '눈치'를 많이 보는(눈치껏 알아서 집단의 기준에 맞게 처신해야 하는) 사회이다. 수치문화에서 자라면 사회적 민감도가 높아진다. 아무도 뱉지 않은 말을 기어이 사람들의 표정을 통해 읽어내려고 한다거나, 행간에 숨겨진 의미가 있지 않을까 계속 의심을 한다거나, 그렇게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련의 활동을 통해 극단적으로는 발생하지도 않은 일로 관계를 청산해 버리기까지 한다.


이렇게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 문화는 좁게 말해 나의 영어공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토로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외국인들만 있으면 어떻게든 커뮤니케이션이 되는데, 한국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말을 잘 못하겠어'라고 했다. 우린, 이상하리만치 엄격하게, 그것도 같은 한국인들끼리,  '네가 영어를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라는 식의 judgemental(비판적인)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외국 생활은 힘들다. 이상하게 외롭고 춥고 서럽다. 그래서 난생처음 어학연수를 위해 영국 브라이튼에 머물렀던 시절, 나는 한국인 친구들과 주로 어울려 지냈다. 그들의 시선 속에 갇힌 채, 한정적인 문장들만 말하며, 한국에 있었다면 어울릴 엄두도 못 냈을 반대 성향의 친구들과 붙어 다녔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곧 내 주변엔 카자흐스탄과 아랍에미레이트에서 온 친구 둘만 남게 되었다. 그중 카자흐스탄에서 온 아이는 국가 장학금을 받고 영어연수를 거쳐 런던 임페리얼컬리지에서 공부한 뒤 다시 귀국하여 나라를 위해 일하기로 계약(?)이 되어 있던 친구였다. 본인의 실수를 그 자리에서 인정하고 바로잡는 쿨한 성격의 그 친구는, 모든 선생님들이 입모아 칭찬했던 '짧은 시간 안에 가장 많이 발전한 학생'이었다. 처음 그 아이를 봤을 때 그녀의 영어는 문법 없이 단어를 던지는 수준에 불과했다. 네이티브들아, 너네가 알아서 주워듣고 이해해라,식의 저돌적인 스피킹. 수치문화에 길들여진 내게 너무나 쇼킹했던 참담한 실수투성이의 문장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묵묵히 배워나갔다. 8개월이 지났을 무렵 우린 Advanced class에서 함께 공부했는데, 월반한 그녀의 유창해진 영어를 듣고 충격을 받아 그 여운 한동안 가시지 않았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잊고 있었던 진리, 아,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발전할 수 있는 거였지.


그 친구를 통해 배움의 자세를 다시 배워나갔다. 그녀 곁에서 실수하는 내 모습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았고, 오히려 발전의 기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3년 후 입학한 대학원에서는 한국인은커녕 아시아에서 온 사람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매일 세미나와 발표가 이어졌고, 당시 나는 지금의 남편과 연애도 하고 있던 시절이라 아침에 눈떠서 잠들기까지 온통 영어에 노출되어 있었다. 학업에서연애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의사소통'이었다. 문법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심지어 에세이 쓰기조차도, 아이디어와 논리,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정확히 전달되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문법적 결함은 제출 전 마지막 단계에서 proofreading(교정)으로 보완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영어가 늘었다. 스피킹에 자신이 생기니 영어가 더 재밌어졌고 소심한 내가 누군가와 말을 섞고 싶어 졌고, 대화중 네이티브가 표현을 정정해 주면 그저 고마웠다.


영어를 잘하고 싶은 사람에게, 한국에서처럼 학창 시절 내내 공부를 하고도 이미 알고 있는 영어를 제대로 써보지 못하는 건 너무 억울한 일이다. 더듬거리며 단어를 나열하고 있는 사람을 보며 '저렇게 말하느니 차라리 입을 다물겠다'라는 생각을 했던 나 자신이 우습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아질 기대를 했다니.


지금도 물론, 내가 영어를 할 때 저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들이 바뀐 것이 아니라 그들을 대하는 나의 시선과 태도가 바뀌었을 뿐이다. 어차피 모국어가 아닌 말을 하는데 실수를 하지 않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교포가 아닌 이상 내가 어떻게 완벽한 영어를 구사할 수 있나. 무엇보다 내가 소통하려고 하는 상대는 나의 실수를 개의치 않으니 대화를 이어가기 위한 노력만 하면 된다. 비판적 시선이나 실수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그 의지이다.



사진 출처, 구글




*shame culture: 집단의 가치관에 의해 개인이 크게 영향을 받고, 수치를 당하지 않기 위해 혹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죽음까지 불사하는 일본인들의 특수한 집단주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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