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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h Oct 07. 2023

돈에 예민한 남편 1

팝콘 전쟁

친정 엄마는 아빠와 처음 데이트를 한 날, 그가 자신에게 지갑을 던지는 걸 보고 사귈 결심을 했다고 한다. 크는 내내 엄마로부터, '네게 돈을 안 쓰는 남자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 거야'라는 세뇌를 듣고 자랐다.


남편과 애할 당시, 사랑받는다는 확신이 있었지만 엄마가 내 머릿속에 심어놓은 '사랑한다면'의 기준에 그가 전혀 들어맞지 않아 혼란스러웠다. 나에게도, 가족에게도, 심지어 그 자신에게 조차도 돈을 쓰기 힘들어하는 내 남편은' 구두쇠'다.


남편이 남자친구였던 시절, 크리스마스를 지내기 위해 예비시댁으로 일주일간 여행을 갔었다. 그의 가족들과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연휴를 보내고, 런던으로 돌아가기까지 며칠을 더 지내며 한가로운 연말을 보내고 있었다.

Cineworld Llandudno

마침 보고 싶었던 영화가 있어 저녁을 먹은 후 남편과 가까운 시네마를 찾았다. 영화 표를 구매하고 군것질거리를 사려고 매점 앞을 서성이는데 남편이,

"저녁 먹고 왔는데  먹게?"

(이때부터 이미 기분 상함)

라고 묻는다.

"응, 시네마 오면 항상 팝콘이 먹고 싶어."

(꾹 참고 감정에 호소)

그러자 진열되어 있던 팝콘 가격표를 확인한 남편이 말했다.

"에~~~?? 팝콘이 4파운드? 너무 비싼데?"

(폭발 직전이 됨)

영화표도 내가 샀는데, 이 사람 너무한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면서 불현듯 엄마의 경고가 떠올랐다.


그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 거야~~~~~


영화 보는 내내 엄마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극장을 나설 때 이미 나는, '이 참에 그의 사랑을 확인하고 말겠어'라는 결심과 함께 스스로 파 놓은 무덤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차마 팝콘이란 단어는 입에 못 올림)

"팝콘이 비싸니까 비싸다고 한 것뿐인데, 네가 정말 먹고 싶었다면 사줄 거였어."

"아, 결국 내가 '비싸도 사달라, 팝콘 없인 절대 영화 못 본다'는 말은 안 해서 팝콘을 안 산 거였구나..."


기분 좋게 영화를 보러 나간 아들과 여자친구가 냉전 중인 상태로 귀가하자 어머니는 눈치를 보며 우리가 먼저 어떤 이야기라도 꺼내주길 기다리셨다. 도저히 팝콘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던 나는, 그대로 쌩 2층으로 올라가 버렸고 너무 슬프고 화가 나 울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팝콘하나 때문에 우는 건가, 인정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서럽게 울다가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속상할 수 있지. 그깟 팝콘하나 안 사주다니. 근데, 솔직히, 너 지금 되게 진상이야. 하루만 지나도 엄청 후회할걸?"

역시 베스트프렌드다. 마음이 진정된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갈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곳으로 남자 친구하나 보고 와 있는 내가 그와 싸웠으니 정서적으로 고립되어 있지는 않을까 걱정되어 어머님이 나를 체크하러 오셨다.


울었던 나를 보고 눈시울이 붉어진 어머님이 따뜻하게 안아주셨다. 긴장이 풀리자 고삐마저 풀린 나는 그녀 품에서 목놓아 울며,

"그가 팝콘이 비싸대요~~~ 엉엉~~~"

이라는, 초등학생도 하지 않을, 결혼 후 10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유치뽕짝 대사를 날리게 된다.

공감능력이 만렙이신 어머님은 내가 내뱉는 어처구니없는 말들을 전부 들어주시다가, 

"걔가 우리 중에 쓰는 걸 제일 힘들어해. 작년까지는 가족들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면서 포장지 사기가 아까워 키친타월로 포장해 왔단다. 가 그래서 내가 미안하구나."

라며 난데없는 사과를 하셨다.


친구의 조언과 어머님의 위로 덕분에 결과적으로 '사랑한다면'이란 '조건 함정'에 빠지지 않은 나는 더 이상 남편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고 결혼에 골인했다.


공무원인 아버지 슬하에서 절대로 돈을 허투루 쓰는 일 없이 허리띠를 졸라 매고 살아온 남편은, 나이 40에 시댁 가까운 곳에 대출 없이 집을 한 채 살 수 있었다. 그렇게 그의 땀과 노력이 고스란히 들어간 그 집은, 작년 겨울 영국으로 건너온 우리 가족에게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어 주었고 이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사업을 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나는,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저축으로 삶을 일구는 사람들과 비교해 돈을 쓰는 용기 또한 달랐다. 지금 안 쓰면 나중엔 없다,는 미래불지향적인 소비에 익숙해 있던 내게 남편의 소심한 소비는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한 푼 두 푼 모은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었지만, 모든 게 달라졌다.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안정된 미래가 보이기 시작했다.


돈을 펑펑 쓰는 친정 부모님 눈에 남편은 쪼잔하고 소심하고 야박한 사람처럼 비쳤다. 그들이 사랑을 판단하는 기준이 '그가 얼마나 돈을 잘 쓰는가, 그럴 의지가 있는가'에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친정아버지는 '그는 너를 사랑해서 결혼한 게 아니다'라며 딸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까지 하게 된다. 속상했지만, 내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므로 괜찮았다. 사실, 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자유 의지가 전혀 없었던 삶에서 벗어나, 내 의지로, 내 판단으로, 내 미래만 생각하고 고른 구두쇠 남자. 그에겐, 아직도 적응하기 힘든 답답한 소비 습관들이 있지만, 계획된 소비를 해 본 적 없는 내가 만날 수 있는 최선의 남자를 만났다고 생각한다. 잊을만하면 떠오르는 시어머님의 말씀,

"그 앤, 어떻게 하면 너와 아들에게 편안하고 안정된 미래를 제공해 줄 수 있을까 늘 고민하고 있어. 그것만 알아주면 돼. 너희를 사랑하는 그만의 방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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