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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h Nov 27. 2023

엄마, 그냥 내가 하면 안 돼?

인에이블러, 사랑의 탈을 쓴 조장자


억제하지 못할 때면
나는
네 신발을 집어주고
네 배낭을 져 나르고
네 교통위반 벌금을 납부하고
네 상사에게 거짓말로 핑계대거나
네 숙제를 해주고
네 앞길에서 돌멩이를 치우고
"내가 직접 했어!"
라고 말하는 기쁨을 네게서 뺏겠지.

엔절린 밀러의 'The Enabler, when helping hurts the ones you love(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 중에서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일은 아이로부터 즐거움을 빼앗는 것이다. 아이를 슬프게 하는 도 내가 경계하는 일 중 하나이지만, 실수로라도 절대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아이가 기쁜 순간을 온전히 만끽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어린 시절 내내 즐거움, 흥분, 기쁨과 같은 긍정적인 정서를 경험할 때면 죄책감과 수치심이 반드시 따르도록 훈련받은 '감정 불구자'인 내가, 내 아이를 위해서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배려이자 목표였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아이가 성장하며 느껴야 마땅한 뿌듯함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아이와 남편은 내 눈에 항상 굼떴고 그래서 마땅치 않았다. 인내하고 기다려도 결과는 성에 차지 않았다. 기다렸다 실망하느니 차라리 내가 해버리자, 다짐하며 그들에게 주었던 기회조차 다시 회수했다.


올해 들어 신발끈 매는 법을 겨우 배운 아이가, 등교 전 무릎을 꿇고 자신의 신발끈을 대신 묶고 있는 나를 내려다보며 한마디 했다.

"엄마, 엄마가 해주면 빠르긴 한데, 내 기분이 안 좋아. 그냥 내가 하면 안 돼?"

아침이라 시간이 없으니 엄마가 해줄게, 란 말을 꿀꺽 삼키고, 

"아들 기분이 안 좋았구나, 몰랐어. 그럼! 당연히 네가 하면 좋지. 앞으론 엄마가 기다릴게."

라고 대답한다.


이렇게 나는, 매 순간 배워 나가야 한다.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지만 자존감이 높은 남편은 인에이블러인 나를 잘 멈춰 세워주는 사람이다. 지금 못하는 것들이 많은 이유는 단지 배울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확신하며, 내게 자신을 리드하고 코치해 줄 것을 당당하게 요구하는 남편. 매일 스무 개의 계획을 세웠다가 열개를 실천하고 자괴감에 빠지는 나와는 반대로, 그는 하루에 하나의 계획만을 세우고 그 하나를 실천한 자신을 뿌듯해하며 스스로를 안아준다. 내가 이런저런 조언을 해도 어차피 본인의 의지나 취향에 따라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남편에게,

"코치 말을 안 들을 거면서 왜 나보고 코칭을 하래?"

라고 묻자,

"코치는 독재자가 아니야. 가이드는 해 줄 수 있지만, 결국 선택과 결정은 내가 하는 거고 책임도 내가 지는 거야. 코치는 내가 목표를 이루도록 격려하는 사람이지, 내 목표를 대신 이뤄주는 사람이 아니야."

라고 그가 답한다.


런던에서 어울려 지냈던 사람들 중 유럽에서 영국으로 건너와 심리학을 공부하고 현재는 라이프코치로 이름을 널리 알리고 활동 중인 친구가 있다. 그와 나눈 대화들을 곱씹고, 그가 추천해 준 책들을 읽으며 앞으로 내가 나의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사랑하기 때문에 해줘야 할 것들이 많다,는 생각을 접고

사랑하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할 것,에 초점을 맞춰본다.


두 달 전, 제부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평생 신경외과 전문의로 수천 명의 생명을 살리신 그분은 정작 자신의 몸은 돌보지 못해 재발한 폐암을 치료받으시다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뜨셨다. 간호사로 은퇴하신 제부의 어머님은 그런 남편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며 살고 계셨는데, 돌아가시기 전날까지도 아내의 복용약을 챙겨 주시던 그분의 배려와 친절함은, 그가 세상에 없자 큰 두려움으로 바뀌어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철저히 의존적으로 살아온 그녀에게 닥친 감정적 공허와 실제적 무력감은 한순간에 그녀를 집어삼켰고, 그런 그녀를 위해 주변 사람들이 해 줄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나를 위해 모든 걸 다 해주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면, 남은 이는, 앞으로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


내가 없어도 남편과 아들이 독립적으로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내 몫이지 않을까. 남편을 너무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에, 얼마 전 함께 드라마를 보던 그에게,

"여보(darling), 내가 먼저 죽으면 꼭 다시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아. 진심이야."

라고 했더니,

"(슬프고 감격한 눈으로)응, 정말 고마워..."

라는 남편. ... 끝?... 이게 아닌데...? 이 악물고라도 오래 살아야겠군... 조용히 다짐했다. 갑자기 생의 의지와 활력이 샘솟는다.


아이가 우리 커플로부터 독립할 때까지, 부모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최대한 많은 시행착오를 겪도록 도와주고 싶다. 참고 기다려주는 부모, 그렇게 이용되는 엄마 자리라면 얼마의 인내가 필요하든 결코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내 아이가 감정의 소모 없이 편안하고 즐거운 인생을 살아갈 수만 있다면.


작은 다짐 하나로 하루아침에 더 나은 부모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내가 대견하다. 이 다짐과 노력들이 쌓이면, 적어도 난, 사랑의 이름으로 아이에게 해가 되는 행동들을 하는 엄마가 되지는 않을 테니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자립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미셸 에켐 드 몽테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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