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남편이 그랬다.
"장모님은 사랑 표현에 서투신데, 요리로 그걸 대신하시는 것 같아."
엄마가 나를 진짜 사랑할까, 평생 궁금했다. 나르시시스트의 조건을 모두 가지고 있는 엄마는, 딸을 자기 인생의 들러리쯤으로 생각하며 나의 행복이나 슬픔보다 당신의 것들을 늘 우선했다. 내가 아프다고 하면, '너보다 내가 더 아파'라는 말로 내 입을 막았고, 내가 행복하다고 하면 '나는 이렇게 불행한데 너 혼자 행복하면 좋니?'라는 말로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엄마보다는 내가 항상 더 아파야 했고, 덜 행복해야 했다.
그런 엄마가 요리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것 같다고?
생각해 보면 엄마는, 아빠가 시장하시다고 하면, 한밤중이던 새벽이던, 자신이 아팠던 아빠와 싸웠던 늘 그를 위해 밥을 차렸다. 돌아서면 딸들에게 무섭도록 남편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으면서, 그의 식사를 그토록 정성껏 챙긴다니... 그 모순적 태도에 의아했었다.
요리에 관련된 자격증은 모두 갖고 있는 데다, 양쪽 부모 모두로부터 물려받은 손맛 덕분에 인생의 대부분을 요리 잘하는 사람으로 살아낸 엄마. 서른다섯의 나이에는 큰 갈빗집을 운영하기도 했고 엄마가 손수 잰 양념갈비는 동네에 소문이 자자해,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의 교사 전체 회식도 여러 번 치르실 정도였다. 입이 짧고 까다로운 아빠는 외식을 싫어하시는데, 엄마의 요리를 맛본 아빠의 친구분들은 '와이프가 요리사니까 네가 바깥 음식을 못 먹는구나'하셨다.
아무리 바빠도 가족 중 누군가가 뭔가를 먹고 싶다고 하면 새벽 한 시에도 그걸 만들어 가져다주는 사람. 그래, 어쩌면 나는 이렇게라도 엄마를 이해해 보려고, 엄마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닌 것 같은 증거들이 너무나 많고 많았지만,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단 하나의 명백한 사실만 있어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녀는, 결국, 우리를 사랑하는 거라고.
눈치가 없는 남편이 장모님에게 가장 인정을 받는 순간은, 엄마가 해 온 6인분의 요리를 혼자 3인분 넘게 먹어치울 때이다. 그녀 역시 자신의 음식을 맛있게 먹는 사람을 보며 사랑을 느끼는 게 아닐지. 꼭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뿌듯함, 쓰임이 되는 유용함, 상대로부터 느껴지는 고마움 등의 긍정적인 정서를 경험하기 때문에 피곤을 무릅쓰고라도 굳이 가족을 위한 요리를 하는 게 아닐지.
엄마가 해 주는 음식을 통해 사랑을 느끼는 건, 제일 많이 먹는 남편만이 아니다. 둘째 사위는 입이 짧고 친정아빠만큼 까다로운데, 장모의 음식은 한 그릇씩 쓱싹 비워낸다. 열세 살에 보딩스쿨로 보내지기까지 외식은 일절 하지 않으며 집밥만 먹었던 제부는, 엄마의 음식이 너무 먹기 싫어 한 입 넣고 물을 함께 마셔 꿀꺽 넘겼다는 고백을 했었다. 세상의 모든 음식을 약처럼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제부는, 집을 떠나고서야 자신이 평생 엄마 음식에 속아왔던 걸 깨달았다. 내 동생을 자신의 부모님께 처음 인사시키러 가면서, 그는 자신의 어머니 요리에 대한 무자비한 경고를 동생에게 늘어놓았다고 했다. '맛이 반드시(?) 없을 거니까, 절대, 억지로 먹지 마, 약속해' 동생에게 그 말을 전해 들으며 깔깔대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아니, 음식솜씨가 아무리 없어도 손님에게 못 먹을 정도의 음식을 대접할 리는 없잖아, 나 같으면 그냥 어머니 기분 생각해서 어느 정도는 먹었을 것 같은데?'라고 말하는 내게 코웃음을 치던 동생.
"언니, 내가 처음 인사 드리는 거고, 웬만하면 먹을 수 있을 줄 알았거든. 근데, 안돼, 못 먹는 음식이야."
다행히 시아버님과 남편, 요리를 하신 장본인인 시어머니까지 극구 말리는 바람에, 동생은 고기 몇 점만 먹고 식사를 끝낼 수 있었다. 외가 쪽 모든 사람(엄마 포함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큰 이모, 작은 이모)이 요리사에 버금가는 실력을 갖고 있는 나와 동생으로서는 상상이 안 가는 삶이다. 맛있는 음식을 못 먹고 자랐다니.
자라면서 많이 외로웠고 슬펐고 화가 나 있었지만, 항상 엄마의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엄마는 집에 없었지만, 엄마가 만들어 놓은 음식은 늘 냄비나 냉장고 안에 있었다. 마음의 공허가 음식으로 채워지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다양하고 맛 좋은 음식들을 먹으며 건강하게 자랐다. 마음이 아픈데 몸까지 아픈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나, 이제와 그런 위안을 해 본다.
내가 해 주는 음식들을 먹으며 사랑을 느낀다는 남편, 그건 그가 전적으로 옳다. 재료를 골라 손질하고 요리를 하는 내내 나는, 마치 가장 중요한 재료를 다루듯 가족에 대한 사랑을 듬뿍 추가한다. 그러니, 그는 잘 맛본 것이고 잘 느낀 것이다. 엄마도 우리를 위해 요리할 때 그런 생각들을 한 번쯤은 했을까? 남편의 말처럼 괜히 그렇게 믿고 싶어 진다. 그녀의 진심이 무엇이었건, 나는, 나를 위해 그렇게 믿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