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nnah Mar 09. 2024

어머님이 차를 바꾸시는데, 왜 내가 피곤하지

시어머니는 15년 된 매뉴얼 스포츠카를 운전하신다. 평소 왼쪽 무릎이 안 좋아 보행이 불편하셨는데, 사오 개월 전부터는 클러치를 밟는 게 어려울 정도로 상태가 나빠져 운전하기 더욱 힘들어지셨다.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 수영을 가시고, 사교적이라 친구분들과의 약속도 많으신 분인데, 갑자기 발이 묶이자 매우 답답해하시더니, 결국 석 달 전 가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차를 바꾸겠다는 폭탄선언을 하셨다. 다행히 작년에, 그간 아버님과 공동명의로 갖고 계시던 집을 한 채 팔면서 목돈을 손에 쥐신 어머니는 아버님 눈치를 보지 않고 새 오토매틱카를 구매하기로 결심하셨다.


그 결정을 가장 반가워한 건 어머니의 아들, 내 남편이었다.


집안의 구두쇠들(시아버님, 남편) 이 큰 소비를 앞두고 하는 일은 정해져 있다. 리스트 작성과 장단점 비교, 모든  리뷰 읽기, 제자리걸음을 하는 듯한 브레인스토밍과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토론. 남편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 유모차를  때도, 주변사람들로부터 '지금 차 사?'란 조롱을 들을 정도로 신중했다. 그리고 진짜 차를 사는 데는 6개월이 넘게 걸렸다. 그런 남편이 어머니의 차 구입에 개입한다고 생각하자, 내가 차를 바꾸는 것도 아닌데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시아버님은 도요타의 하이브리드를 타시는데, 당신 차에 매우 만족하고 계셔서 그런지 어머님께도 하이브리드를 추천하셨다. 아버님이 돈을 주실게 아니므로 꽤 여유롭게, 심리적 거리를 두고 어머니께 이런저런 조언을 해 주고 계신다. 하지만 남편은 흑심을 품고, 더구나 그 마음숨기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은 채 어머님께 테슬라를 추천하고 있다.


현대에서 나온 전기차를 타는 우리는 차 구입과 동시에 집에 충전기를 설치했고, 옥토퍼스 에너지(영국의 재생에너지 회사)와의 계약으로 밤 11시 30분부터 새벽 5시 30분까지 낮 시간보다 80퍼센트가량 싼 전기를 쓰고 있다. 밤사이 (모든 전기활동, 예를 들어 식기세척기, 세탁기, 제습기, 무선 청소기와 보조배터리 충전 등 을 포함해) 차를 충전하기 때문에 운행비가 거의 안 들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편은, 어머님이 테슬라를 구입하시면 충전은 우리 집에서 할 수 있으니 거의 공짜로 차를 운행하실 수 있다고 그녀를 설득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본심은, 어머님의 테슬라를 빌려 타고 싶은 것이다.


남편은 돈을 모으기 위해서라면 구질구질하게 사는 모습을 마다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사람이다. 허영과 허세로 자존심을 지키는 부모 밑에서 자란 내게는 익숙해지기 힘든 삶의 자세였다. 지금은 완전히 적응했고, 자기 분수에 맞는 삶을 사는 게 마음의 평온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안분지족의 삶을 살고 있는 , 그런데 나를 그런 삶으로 이끈 남편에게 테슬라를 향한 망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당황스럽다.


최근 남편에게 충격적인 사건이 있긴 했다. 남편의 코 찔찔 초등학교 동창이자 우리 스몰웨딩의 몇 안 되는 하객 중 한 명이었던 친구 스튜어트가 십 년 만에 자수성가 후 테슬라를 끌고 금의환향한 것이다. 2015년 런던을 떠나 서울로 거처를 옮기며, 남편은 자신의 차를 스튜어트에게 팔았다. 팔면 안 될 것 같은 차를 판 남편이나 사면 안 될 것 같은 차를 산 스튜어트 모두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난 그들의 비즈니스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똥차를 이어받아 5년을 더 타다가 스튜어트는 2020년 영국 대형 회계법인의  매니저가 되었고, 작년 겨울 파트너로 승진했다. 그렇게 법인 차를 타고 멋지게 고향으로 돌아온 스튜어트.


체면보다는 현실을, 허례허식보다는 실용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영국인들은 자신의 재정 수준에 알맞은 차를 탄다. 예외가 없진 않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리해서 차를 구매하지 않고 정해진 버짓 안에서 유지 가능한 차를 선택한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안정된 노인들이나 연봉이 높은 중년들이 멋지고 비싼 차를 많이 탄다. 그런 이유로 스튜어트의 테슬라는 너무나 확실한 성공의 상징으로 보여 남편이 많이 부러워했다. 친구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과는 별개의, 어떤 복잡하고도 원초적인 감정이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남편도 알고 있다. 우린 테슬라를 탈 형편은 된다. 그리고 어머니의 테슬라를 빌려 탄다고 한들 그것은 자신이 이룬 성공의 보상이 아니므로 결국 무의미한 경험일 것이다. 아직은 포기하지 않고 어머니를 설득하는 남편이지만, 그 자신도 알고 있으리라.


어머님의 돈을 눈먼 돈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겉으로는, '엄마가 최고의 차를 탔으면 해서'라고 이야기하며, 속으로는 '가끔 나도 빌려 타면 좋고'를 기대하는 남편. 너무 티 나게 흑심을 보이는 아들에게,

"나를 걱정해 주고 내가 좋은 차를 타길 바라는 네 마음은 정말 고맙지만, 테슬라는 옵션에 없어."

라고 선을 긋는 어머니.


내 기준엔 시부모님이 남편이든 운전을 너무 못하기 때문에, 그들이 어떤 차를 타느냐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시댁 식구들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있으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 숨고 싶은 순간들이 한두 번이 아닌데, 주차 역시 부끄럽긴 마찬가지다('주차 못하는 남편'  https://brunch.co.kr/@hannahwood/54  참고). 인도로부터 족히 1미터는 떨어진 채 평행주차를 해놓고, 넓디넓은 대형마트의 주차장에서도 십중팔구 주차선을 벗어나며, 심지어 어머니는 어찌어찌 차를 대긴 했는데 빠져나가질 못해 수영장 매니저에게 출차를 부탁하신 적도 여러 번이다. 아버님은 차 전후방 좌우버스가 들어갈 만한 공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주차 시도조차 하지 않으신다. 이렇게 가족 구성원이 단체로(?) 운전을 못하는 게 실화인가 싶은 마음에,

"부모님이 연세가 많아지시니 운전도 주차도 점점 힘드신가 봐."

라고 내가 조심스럽게 언급하자,

"아니, 우리 아빠 엄마, 젊었을 때부터도 그랬는데?(마치 본인은 부모님과 다르다는 ) 특히 엄마는 평생 주차를 잘한 적이 없었어."

라고 남편이 부모님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한다. 아... 연세가 드셔서 그런 게 아니라고...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만약 자율주행에 오토파킹 모드가 있어서 그녀의 운전 실력을 완벽히 커버할 수 있는 차가 있다고 해도, 사람보다 양(sheep)이 많은 넓은 땅 웨일스에서 그런 기능을 가진 차는 오버스펙이다. 한국에서 제네시스 GV80이 좁은 아파트단지 주차장에서 오토파킹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그건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에 사는 사람이 사이즈 큰 차를 몰 때나 필요한 기능이 아닐까 싶다. 시댁 식구들이 모는 차를 타는 게 부끄러울 뿐이지, 그들에게 고사양의 차가 있어야 되는 건 아니니까. 어차피 대형 슈퍼의 야외 주차장은 붐비지 않고 주차선을 가로질러 차를 대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이곳엔 널린 게 주차 자리다.


어머님이 차를 바꾼다고 공표하신 지  달이 넘었다. 이제 겨우  종류의 차로 범위가 좁혀졌다. 남편은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엄마에게 '4, 테슬라!'를 외치고 있다. 테슬라를 제외한 나머지는 시승까지 하고 오셨는데, 왜 아직도 아무 결론이 나지 않은 채 시간이 흘러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차를 사기로 마음먹고 다음날 대리점으로 가서 계약을 하고 나오는 친정 식구들도 극단적이지만, 그 반대의 극단에 있는 시댁 식구들 또한 이해가 안 되긴 마찬가지다. 과정이야 어떻든, 어머님의 생의 마지막 차가 될지도 모르는 선택이니 신중해야겠지만, 모든 옵션을 검토하셨다면 이젠 결단을 내리시길 바란다. 그래야 남편도 미련을 접고 더 이상 테슬라를 검색하며 시간 낭비를 하지 않을 테니.


이번주에 Mother's Day(영국은 어버이날 대신 Mother's day와 Father's day가 따로 있음)를 지내러 시누네가 오는데, 저번에 그들이 다녀간 이후 3주가 흘러서 그간 업데이트 된 차 관련 정보를 풀어놓고 모두가 모여 토의를 할 게 뻔하다. 주말이 하나도 안 기다려진다. 벌써 피곤하다. 난 이미, '어머니껜, 주차를 위해 적당히 작고 에너지 효율이 좋은 차가 필요하다'는 최후 의견을 전달했다. 새로운 정보에 따라 마음이 널을 뛰는 시댁 식구들과는 달리, 한 번 마음이 정해지면 쉽게 바뀌지 않는 내게 더 이상 짜낼 이견 같은 건 없다. 그들도 하루빨리 결정 후 마음의 평온을 찾게 되길, 기대는 없지만 간절히 바라본다.




*사진 출처, Autoweek



이전 18화 어머니, 사과 안 하셔도 돼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