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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h Feb 17. 2024

잘하려고 하지 마

잘하는 게 없는 아들을 위한 변명

뭐든 잘 해내야만 살아남는다고 생각한 시절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래야 버려지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초등학교 6년 동안 여섯 번의 전학을 다녔지만, 단 한 번도 부모에게  학교를 옮기는지 묻지 못했다. 어떤 학교는 이틀만 나가고 다시 전학을 갔기 때문에 학교 이름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자주 학교를 옮기면서도 난, 학업이 뒤쳐지거나 학교 생활에 문제 한 번 일으키는 일 없이, 모범생의 삶을 살아냈다.


삶의 중심이 오롯이 자기 자신이었던 엄마의 눈에 들기 위해서는, 남들 보기에 떳떳한, 자랑스러운 딸이 되어야 했다. 실제로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나는 학급 반장이나 부반장과 같은 타이틀을 따와 엄마를 기쁘게 했다. 있는 그대로는 사랑받을 수 없다고 느꼈던, 눈에 보이는 결과만이 내 존재 가치를 증명해 준다고 믿었던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점점 더 각박하게 스스로를 내몰았다.


실수하면 안 돼. 무조건 잘 해내야 돼.


그 믿음이 나를 집어삼키고 급기야 숨 막히게 한 시절이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나는 어쩌다 새로 전학 간 학교에서 실시된 회장 선거에서 뉴페이스에 호기심을 느낀 아이들의 지지를 받아 덜컥 전교 부회장이 되었다. 담임 선생님은 교대를 갓 졸업하신 20대 초반의 여자분이셨는데, 그녀의 완벽주의와 타인의 눈치를 보고 실수하기 두려워하는 나의 성향이 만나, 지옥 같은 일 년이 펼쳐졌다. 선생님은 글짓기, 산수 경시, 동시, 미술 같은 온갖 대회에 나를 보내셨는데, 직접 대회장까지 동행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으시며 열성을 보이셨다.

"이번에도 상 받아서 선생님 기쁘게 해 줘야 돼."

그 말이 주는 압박감이 나를 움츠러들게 했지만, 상을 못 받으면 지금까지의 관심이 모두 철회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커, 매 순간 긴장을 이겨내며 최선을 다했다. 어떤 경쟁에서든 이겨야 했다.


과정을 즐기지 못했으므로 모든 결과물은 고통을 동반한 기억으로 남았다.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던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저, 다행이다, 이번에도 살아남았다, 는 안도뿐이었다.


그 어린 나를 자신의 분신처럼 대했던 선생님은, 학교에서 있었던 모든 행사나 필요에 나를 앞세웠다. 교단에서 지휘하기, 운동회 사회 보기, 학교 신문과 대자보 만들기, 지적장애 학우 하교시키기, 교장선생님과 행사 참석하기 등 몸이 열개라도 모자란 강행군이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긴장과 압박의 일상 속에서 녹초가 된 나는, 힘들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하루하루를 견뎠다. 일 년간 내가 가진 모든 역량과 에너지를 하얗게 불태우고, 겨울방학이 되자마자 몸져누웠다. 또다시 이사를 앞두고 매일 부부싸움을 하며 잔뜩 예민해져 있는 부모에게는 털어놓을 수 없었던, 어린아이의 번아웃. 부모를 포함해 주변의 어떤 어른도 나의 고난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리고, 누구도 안전하지 않아 보였다.


졸업식에서 선생님은 나보다 많이 우셨다. 졸업생 대표 답사를 하고 있는 나를 보며 계속해서 울고 계셨다. 내 부모님의 손을 잡으시고는, '제가 많이 예뻐했어요. 자랑스러운 따님 두셔서 행복하시죠?'라며 그들이 듣고 싶었던 말씀을 해 주셨다. 그녀의 노력으로 난 더욱더 실패를 두려워하는 완벽주의자가 되었고, 이후의 삶은 대부분 조마조마하거나 불행했다.


노력에 의미를 두고 살아본 적이 없으므로, 엄마가 된 이후, 아이가 내놓는 결과보다 과정을 알아주는 일이 너무나 어려웠다. 아이의 퍼포먼스는 실망스러워 차마 두 눈을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잘하는 게 없는 아이였다. 그저 사랑스럽고 다정하며 눈치가 지독히도 없는 아이.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알던 나는, 열개를 가르쳐 주면 하나를 해 내는 남편을 만나, 그를  닮은 아이를 낳아 키우며 바다와 같은 이해심과 사리 백개를 품은 듯한 인내를 갖게 되었다.


아이가 모나리자를 보고 그려낸 그림은 머리카락이 다섯 가닥인 볼품없는 졸라맨이었고, 참가하면 누구에게나 상을 주는 태권도 품새대회에 나간 아이는 꼴찌에게 주는 동상(참가상의 다른 이름)을 받아왔으며, 일 년 넘게 배우고 있는 바이올린 수업에선 두 달째 같은 곡을 연습 중이지만 완곡은커녕 선율이 아닌 흡사 스타카토기법과 같은 연주만이 가능하다. 아이의 그림을 보고, '졸라맨인데?' 했더니 나보다 크게 깔깔거리며 웃는 아이, 동상을 받고 나와서 금상을 받은 듯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아이, 자신의 형편없는 바이올린 연주를 들어주는 우리 부부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도 더 잘하기 위한 연습은 하지 않는 아들을 보며 생각했다. '아, 이 아인 뭔가를 잘 해내지 못해도 불안하지 않구나. 존재 자체로 인정받고 사랑받는 경험을 하고 있구나.'


친한 친구나 사촌이 우수한 성적을 내거나 대회에 나가 입상을 하면,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I am so happy for you(네가 잘 돼서 정말 기뻐)'라고 말하는 아이. 그래, 너는 누군가를 이기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하구나.


지난주 아들의 주짓수 승급심사가 있었다. 심사라곤 했지만, 12세 이하 아이들이다 보니 훈련 일수를 채우고 기술 시범을 보여줄 수 있으면 대부분 업그레이드되었다. 참관한 학부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대련 시범도 있었는데, 제일 처음 호명된 아들은 자신과 레벨이 같고 신체적 조건이 비슷한  살 많은 여자 아이와 대련하게 되었다. 나이에 비해 키가 크고 힘이 센 아들은 초반에 우세를 보였다. 주짓수라는 스포츠의 특성상 일단 상대를 바닥에 눕히는데, 그렇게 넘어간 여자아이가 힘을 쓰다 바닥에 머리를 찧을 뻔한 상황이 왔다. 그러자 갑자기 대결이나 경쟁의 기운은 온데간데없이, 아들이 여자아이의 머리를 자신의 손으로 받쳐주는 아름다운 광경이 연출되었다. 모든 학부모들이 일제히 나와 남편 쪽을 쳐다보며 웃었다. 여기저기서 'Oh, bless him' 하는 소리가 들렸다. 복화술로 '쟤 뭐 하는 거지?'라고 말하며 남편을 보니 , 웃느라 얼굴이 벌겋다. 그래, 우리 아들, 아주 사랑이 넘치는구나! 그러는 사이 여자아이는 순식간에 자세를 바꿔 아이의 팔에 암바를 걸었다. 하지만 힘이 약해 기술을 걸고도 탭을 받아내지는 못했다. 1분의 대련 시간이 끝나자 의기양양 일어나 씩 웃어 보이는 아들, 나중에 물어보니 기술을 힘으로 버텨 막아낸 자신이 대단해서였다나. 공정한 대결을 하는 상황에서도 경쟁하기보단 상대가 다칠까 걱정돼 힘을 빼는 아이라니. 잘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못할 것까지야.


자라는 내내 어느 누구도 내게,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해준 적이 없다. 그래도 너는 사랑받고 있다고, 그러니 즐기고 배우면 된다. 노력하는데 더 큰 의의가 있고, 과정이 결과보다 중요한 거라고. 그 '괜찮다'는 말이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임을, 다 자란 후에야 깨달았다. 내겐 없었던, 넘어져도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는 그 힘. 뭐든 다 못하면서도 이미 충분히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은 아들에겐 필요 없을지도 모르는 말이지만, (나를 포함해) 자라고 있는 누구에게든 가 닿기를 바라며, 허공에라도 대고 외쳐본다.

"잘하려고 하지 않아도 돼. 못해도 괜찮아. 배우고, 즐기고, 노력하는 게 더 중요해. 그 과정에서 넌 성장하는 거고. 성공이 아닌 성장이 네가 해야 하는 일이야."




잘하려고 하지 않으면 진짜 못하는게 함정이긴 하지만ㅠㅠ




*사진 출처,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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