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마다 손톱 두발 실내화 검사를 했어요다 손톱 두발 실내화 검사를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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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월요일은 용의 검사하는 날이다. 원래의 의미인 “몸을 가지는 태도나 차린 모습”을 검사하는 것이 아니라 얼굴을 비롯한 학생 몸에 때가 얼마나 끼어 있는지를 검사하는 것이었다. 조회가 끝나고 교실에 들어오면 우리는 의자에 앉아서 책상에 두 손을 손등이 보이게 올려놓는다. 담임 선생님은 매의 눈으로 우리의 손을 내려 보신다. 보이지는 않지만, 레이저가 나왔음이 분명하다.
선생님은 책상 사이를 천천히 걷는다. 그러자 잠시 멈춰 한 아이의 손을 들어본다. 제때 자르지 않은 손톱 아래에 때가 껴있다. 미처 손톱을 못 깎은 모양이다. 목도 검사를 하고 실내화도 검사한다.
가슴에 손수건을 달고 다닐 때이니 코밑엔 코가 말라 하얀 아이도 있다. 강호동이랑 서경석이 하얀 콧물을 그리고 나온 모습 그대로이다. 휴지가 흔하지 않은 시절 학교에 올 땐 깨끗했던 손수건이 집에 갈 때가 되면 군데군데 누런 코딱지가 말라붙어있다. 코딱지가 묻어 손수건끼리 딱 붙어 있기도 하다. 남자애들은 손수건보다는 소매를 애용했다. 콧물이 나오면 훌쩍 도로 마시고는 손목으로 쓱 문지르면 그뿐이다.
겨울엔 베이지색 내복 소매가 반질반질하다. 종종 여자아이들의 소매 끝도 그랬다.
70명의 용의 검사가 끝난 날엔 쉬는 시간에 선생님께선 바쁘시다. 서랍에서 손톱 깎기를 꺼내 아이들의 손톱을 잘라주신다. 똑똑 소리에 얇은 아이들이 손톱이 잘려 나간다. 손톱 깎기에 있는 줄로 손톱도 다듬어주신다. 다음 쉬는 시간에도 선생님은 쉴 틈이 없으시다. 떨어진 단추도 달아주시고 고장난 지퍼도 고쳐주신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화를 내지 않으셨다. 천사셨다. 손톱도 깎아주시고 옷도 고쳐주셨지만, 실내화는 집에서 꼭 빨아와야 했다. 월요일 아침 신발주머니에서 하얀 실내화를 꺼내 신으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깜빡 잊고 빨지 않은 때가 묻은 실내화는 감추고 차라리 깜빡 잊고 안 가져왔다 말하고 싶다. 일부러는 아니지만 깜박하고 실내화 주머니를 못 챙긴 날은 하루 내내 맨발로 다녀야 했다. 돌아와 벗어놓은 양말은 당연히 까맸다.
사실 엄청 덜렁이라서 아침에 학교 갈 때면 일주일에 두세 번은 다시 집에 돌아와 준비물을 챙겨 갔다.
“오늘은 어째 그냥 가나 했다.”
엄마한테 늘 듣는 말이었다.
우리 담임 선생님은 얼굴이 곰보셨다. 얼굴이 희셨는데 본래 피부가 하얀 것인지 곰보 자국을 가리기 위해 분을 많이 칠하신 것인지 모르겠다. 나에게 선생님이란 직업을 꿈꾸게 해주신 분이다. 소리를 크게 지르시지도 않았고 늘 상냥하셨다.
1학년 때 가장 신기했던 그것 중 하나가 선생님은 칠판에 판서를 하시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누가 떠드는지 누가 장난치는지 다 아시는 것이었다.
“선생님 머리엔 눈이 달려있다.”
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머리카락 속에 숨어있을 제 삼의 눈이 늘 궁금했다. 선생님들은 다 눈이 세 개인 줄 알았다.
두 명씩 앉게 되어있는 책상에 앉아서 공부했다. 짝꿍과 사이가 안 좋은 친구들은 책상에 줄을 긋고 넘어오는 지우개와 연필을 빼앗았다. 받아쓰기 시험을 볼 때 가운데 책가방으로 벽을 만들어 시험을 봤다. 행여나 볼까 몸을 숙여 가렸다.
오랫동안 일요일 아침엔 엄마와 목욕탕에 갔다. 엄마는 우리 세 남매를 데리고 목욕을 시켜주셨다. 따뜻한 탕에서 때를 불리면 차례로 씻겨주셨다.
주말은 바쁜 날이다. 실내화도 빨아야 하고 목욕도 해야 하고 필통 속 연필도 잘 깎아서 넣어야 한다. 하지만 어릴 땐 다 엄마의 몫이었다. 학교 다녀오면 동생들과 뒷산이나 동네 놀이터에서 놀기도 바빴다. 그네나 미끄럼틀을 타려면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했다.
요즘도 학교에서 용의 검사를 할까?
요새는 집에서 샤워할 수 있어서 내가 어릴 때보단 위상 상태가 좋을 것이다.
톡톡 손톱을 깎아 시던 국민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이 보고 싶다. 교육청에서 옛 스승 찾아 주기를 할 때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 없었다. 아마 퇴직 후라서 그랬나 보다.
선생님 건강히 잘 계시죠? 이젠 손톱을 혼자서 잘 깎는답니다. 앞으론 안경을 끼고 자를 날이 오겠죠. 보고 싶습니다.